최도원·최상훈·최봉수·최퇴운·공해남·방민 그리고 최태민. 모두 같은 사람이다. 국정 농단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 아버지다. 1912년생인 최태민은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꿨다고 중앙정보부 기록에 남아 있다. 최씨 일가에서 개명은 흔하다. 최태민은 공식적으로 여섯 번 결혼해 3남6녀를 두었다. 최씨의 다섯 번째 딸 순실씨도 2014년 ‘서원’으로 개명했다. 지난해 최순실씨의 딸 정유연씨도 ‘유라’, 최순실씨의 조카 장유진씨도 ‘시호’로 이름을 바꿨다(아래 가계도 참고).

 

 

 

 


최씨 일가가 2016년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 최씨 일가 3대의 이름이 모두 거론된다. 민간인인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앞세워 국정과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문화나 체육 분야 사업의 이권을 챙기고 민간 기업의 인사까지 개입했다는 의혹이 줄을 잇고 있다. 최순실씨 개인 비리나 일탈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 의혹의 ‘몸통’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독일로 출국했던 최순실씨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 10월30일 홀로 전격 귀국했다. 그녀는 다음 날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다. 최씨는 울먹이며 “죽을죄를 지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포토라인을 벗어난 뒤 검찰 수사에서는 혐의 일체를 부인했다. 비선 실세도 아니며 청와대 문건이 담긴 태블릿 PC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도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사 당일 긴급체포된 최씨는 사흘 뒤 구속 수감됐다.

최씨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다른 혐의자들의 신병 확보에 나섰다. 검찰에 소환되면서 최순실 게이트 혐의자들은 말을 바꿨다. 검찰청 포토라인 앞에 서기 전까지만 해도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에 관여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던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이 말을 바꿨다.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이 지시했다”라고 검찰 조사 때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폭식 돈 뜯기’를 연상케 하는 안 전 수석의 뒤에는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다. 뇌물죄나 제3자 뇌물죄에 해당하는 혐의가 확인되었지만, 검찰은 최순실씨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직권남용과 사기미수 혐의만 적용했다(이러려고 수사를 했나, 자괴감 들지? 기사 참조). 게다가 K스포츠재단이 롯데그룹에 돈을 요구했던 시점은 공교롭게도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 직전이었다. 민간 기업 처지에서는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때였다. K스포츠재단은 최순실씨의 페이퍼컴퍼니인 비덱을 내세워 투자를 가장한 ‘수금’에 나선 것이다. 

 

ⓒ시사IN 이명익10월31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최순실씨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혐의 일체를 부인했다.

 


최순실씨 일가는 동계올림픽을 비롯해 체육계에서 광범위하게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을 샀다. 예를 들면, 비덱은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가 100% 소유한 페이퍼컴퍼니다. 삼성은 이런 비덱(당시 코레스포츠)에 280만 유로(당시 환율 기준 약 35억원)를 준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삼성은 왜 정유라에 올인했나 기사 참조). 최씨가 독일과 한국에 세운 더블루K도 K스포츠재단에서 연구용역비 명목으로 7억원을 빼내려 했다.

정부 입김이 작용하는 각종 공기업은 ‘알아서’ 최씨 쪽 편의를 봐줬다. 최씨 회사 더블루K는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외국인 전용 카지노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장애인 휠체어 펜싱팀 에이전트 계약을 따냈다. 더블루K는 1000억원대 평창동계올림픽 시설 공사 수주를 노리기도 했다. 더블루K는 스위스 누슬리 사와 MOU를 맺고 개·폐막식장 건설 사업을 따려 했다.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대신 조 위원장은 지난 5월 위원장직에서 쫓겨났다. 정부 발주 사업과 민간 기업 자금을 최씨 일가의 사금고처럼 운용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장면은 한둘이 아니다.

최씨 일가의 ‘돈 뜯기’는 체계적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산하 공공기관인 체육인재양성센터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이 기관은 지난해 12월에 문을 닫았다. 체육인재양성센터는 은퇴 선수 재교육·취업, 체육인 양성 등을 주 업무로 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체육계 인사는 “체육인재양성센터는 문체부 공공기관 내 기관평가 1위였다. 1위 기관이 문을 닫으니 의아했고 반발도 심했다”라고 말했다.

 

 

 

 

체육인재양성센터 폐쇄는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씨의 ‘신사업’과 관련 있었다. 지난해 7월 은퇴 선수를 활용해 체육 영재를 키운다며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만들어졌다. 장시호씨가 주도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올해까지 문체부 예산 6억7000만원을 배정받았다(〈시사IN〉 제477호 ‘공주 뒤에 있던 그녀는?’ 기사 참조). 내년에도 17억원이 배정될 계획이었다. 삼성 또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5억원을 후원했다. 같은 목적으로 같은 기능을 하는 체육인재양성센터를 없앤 이유라는 의심을 샀다.

최씨 이권 위해 체육인재양성센터 폐지 의혹

체육선수 양성이라는 목적의 K스포츠재단도 2016년 1월 만들어졌다. 사실상 체육인재양성센터의 업무를 쪼개 일부러 새로운 두 개 재단법인(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K스포츠재단)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앞서 문체부는 체육인재양성센터의 해산에 대해 예산 절감 효과를 위해 소규모 기관을 통폐합하는 차원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말이 되지 않는다”라는 비판은 체육계 내부에서 나왔다. 굳이 재단을 두 개로 나눈 배경에 최순실·장시호씨가 있다는 주장이다. 최씨가 K스포츠재단을, 장씨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각각 맡아 운영하기 위한 분할로 이해되었다.

익명을 요구한 국가대표 출신의 한 체육계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체육인재양성센터가 있으면 목적이 같은 두 재단을 만들기도 힘들고 기업에게 돈을 뜯기도 애매하다. 이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건 최순실 인맥으로 통하는 김종 전 차관이다. 김 전 차관은 아버지가 최태민씨와 잘 아는 사이여서 최순실씨 일가와 가까워 실세가 됐고 또 그쪽 일을 잘해주면서 더욱 자리를 잡았다. 실세 차관으로 3년간 자리를 지키면서 체육계 인사들만 만나면 ‘나 쫓겨날 줄 알았지? 난 이 정부 끝까지 차관 할 거다, 장관 말고’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또 다른 동계스포츠계 고위 관계자도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장시호, K스포츠재단은 최순실을 위한 것이었다. 장시호는 자신과 가까웠던 은퇴한 동계스포츠 쪽 인사를, 최순실은 딸 정유라를 염두에 두고 재단을 만들었고 여기에 정부가 적극 도왔다는 말이 파다했다. 그래도 막상 이렇게 상황이 드러나는 걸 확인하고 있으니 허탈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종 전 차관은 〈시사IN〉 기자와 통화하면서 “아버지가 최태민씨와 안다는 말은 사실무근이고, 최순실씨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11월4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관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최순실씨 일가가 이권에 관여한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박 대통령은 11월4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두 번째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최씨와 가까웠다는 사실을 또다시 인정했다.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서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고, 왕래하게 되었다.”

최순실 태블릿 PC처럼 결정적 물증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은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 ‘난무하는 비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증이 언론에 계속해서 보도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말을 바꿨다. 드러난 거짓말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 지지율 5%를 기록한 11월4일, 박 대통령은 특검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 대통령의 혐의가 잇달아 드러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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