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를 위하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양진호 옮김, 책세상 펴냄전기 작가로 유명한 슈테판 츠바이크가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평전을 썼다는 사실 자체로 주목할 만한 책이다.좌파든 우파든 인간의 이성(理性)으로 세계를 개선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시대에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는 암흑대륙에 두려운 첫발을 내디딘 탐험가이자 혁명가였다.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의 이런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인류가 자신에 관해 더 명백하게(‘더 행복하게’가 아니라) 알게 해주었고, 한 세대 전체의 세계상을 심화했다(‘미화했다’가 아니라).” 프로이트는 츠바이크에게 “우리가 도무지 말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세상의) 관계와 특성들을 (당신의 작품을 통해) 파악했다”라고 답했다.

학생운동, 1980김창수 외 지음, 오월의봄 펴냄이른바 ‘386 세대’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한마디로 ‘개저씨’인 듯하다. 술자리에서 민주화투쟁 무용담이나 늘어놓으며 옛날만 회상하는 꼰대랄까. 그러나 이들 역시 한때 정의를 위해 한 몸 바칠 각오를 했던 청년이었다.  ‘그때 그 사람들’이 30여 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당대를 성찰적으로 조망하고 고민한다. 독자들은 1980년대의 학생운동이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인 동시에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전망 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화려했지만 실속 없었던 정파 간 이념 논쟁 같은 이른바 운동권 문화에 대해서도 짧은 시간 내에 훑어볼 수 있다. 그토록 뜨거운 ‘80년대’가 어떻게 파산해서 ‘개저씨’들만 남았는지도 통찰해내게 될 것이다.

노터리어스 RBG아이린 카먼 외 지음, 정태영 옮김, 글항아리 펴냄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BG) 미국 연방 대법관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자 24년째 현역인 최고령(83세) 대법관이다. 사람들은 종종 그녀에게 묻는다. 여성 대법관 수가 몇 명이면 충분하겠느냐고. 긴즈버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9명 전부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충격 받아요. 남자만 9명일 때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잖아요?” 긴즈버그의 삶은 여성이 권력자들의 세계에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는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온 삶이라 해도 무방하다. 은퇴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긴즈버그는 낙태권이나 동성결혼 같은 이슈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왔으며, 동성결혼식의 주례를 맡기도 했다.

편의점 인간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살림 펴냄사회가 말하는 ‘보통’이란 무엇일까. ‘정상’은 또 어떤 모습일까.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서른여섯 살 여성 후루쿠라 게이코는 어느 순간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부딪힌다. 30대 중반에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연애를 하지 않는가…. “보통 사람들은 보통이 아닌 인간을 재판하는 게 취미”라도 되는 것처럼 거리낌이 없다. ‘그럴듯한 변명’을 위해 시작한 이상한 동거는 가지런히 진열된 편의점 매대와 같던 후루쿠라의 일상을 어지럽힌다.저자인 무라타 사야카 역시 실제 18년째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소설을 써왔다. 작가는 시상식 당일에도 편의점에서 일했고, 자신이 일하는 편의점에서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오찬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4000명을 뽑는 9급 공무원 시험에 22만명이 응시하는 사회. 시험 당일이면 임시열차가 운영되고, 시험에 떨어진 누군가가 목숨을 끊으면 “다음 생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라”는 댓글에 ‘좋아요’를 줄줄이 누르며 공감하는 사회. 말 그대로 ‘믿을 건 9급 공무원뿐인 헬조선의 슬픈 자화상’이다.〈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 이어 우리 안의 치부에 또다시 메스를 들이댄 저자가 겨냥하는 것은 “아니꼬우면 공무원 시험 치든가”라고 비아냥대는 ‘갑’, 그리고 속절없이 항복한 ‘을’ 모두다. 공익 추구를 하찮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결국 사익 또한 무참하게 짓밟혀버릴 수밖에 없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공시족’ 42명의 인터뷰가 실렸다.

산소닉 레인 지음, 양은주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최전선의 진화생화학자이자 놀라운 이야기꾼 닉 레인의 책. 1770년대에 발견된 아주 단순한 분자이면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낸 주인공 ‘산소’. 바로 이 산소라는 프리즘으로 생명의 역사를 일주한다.산소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면, 생명과 삶과 노화와 죽음에 대해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야를 갖게 된다. 거의 모든 생명은 산소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산소가 없었다면 생명은 바다 밑바닥 진흙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지구는 화성이나 금성처럼 황량한 별이 되었을 것이다. 산소는 생명의 다양성을 폭발시킨 주인공이다. 그러나 바로 그 산소 때문에 우리는 늙고 병든다. 이 매혹적인 역설과 긴장이 책을 힘 있게 끌고 간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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