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요즘 많이 부실해~.” 아침 밥상에서 첫 숟가락을 뜨던 윤희가 볼멘소리를 한다. 내가 봐도 요사이 반찬에 통 신경을 쓰지 못했다. 주부 노릇을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매일 반찬을 새롭게 만든다는 게 여간 귀찮고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저절로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자라면서 어머니께 쏟아냈던 반찬 투정에 대해 말이다. 엄마! 미안해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재료가 있다. 삼치다. 가을이 되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생선들이 일제히 기름기가 돌고 살이 오른다. 등 푸른 생선은 그 맛이 다른 계절과 비교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삼치는 맛이 순하고 담백해서 아이들도 잘 먹는다.

오랜만에 대형 마트에 갔다. 웬만한 장보기는 인터넷 쇼핑으로 해결하지만 생물 생선은 직접 장을 본다. 내가 삼치를 고르는 요령은 간단하다. 되도록 큰 녀석으로 고른다. 30~40㎝ 크기의 삼치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80㎝는 되어야 한다. 작은 삼치보다 크기는 두 배 정도지만, 맛은 서너 배 더 좋다. 양념이 가미되는 조림용으로는 크고 작음이 별 상관없지만 구이용은 되도록 커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큰 녀석은 마리째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개 여러 토막을 내서 팩에 담아 판다. 한 토막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 하다. 대형 마트에서 두 토막 든 팩이 7000원 내외다. 3500원이면 한 끼를 맛나게 먹을 수 있다.

ⓒ김진영 제공

삼치는 바로 구워 먹어도 맛있다. 나는 삼치를 사다가 소금을 치고 한나절 정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말린다. 말리는 사이 소금간이 배면서 수분이 빠져나와 살의 탄력이 좋아진다. 소금간 덕에 쉽게 상하지도 않는다.

온도와 습도가 높은 초가을에 말리면 파리가 꼬이거니와 집안에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지만, 찬바람이 휙휙 부는 늦가을은 괜찮다. 삼치뿐만 아니라 생물 고등어나 갈치도 한나절 말려두면 좋다. 말린 삼치에 후추를 조금 뿌리고 올리브오일을 듬뿍 뿌린 다음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하나씩 꺼내 조리하면 된다.

삼치와 함께 현미를 섞은 밥을 준비한다. 요즘 부쩍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는 중학생 윤희를 위한 식단이다. 현미는 특유의 까끌까끌한 식감이 문제다. 밥을 짓기 전 매번 현미를 불리는 게 일이다. 그럴 땐 현미를 물과 함께 밀폐용기에 채워 냉장 보관해두자. 매일 불리지 않아도 되니 간편하다. 밥 지을 때마다 쓰고 다시 채워두면 된다. 물에 담갔다 빼기를 반복하는 발아현미 제조 공정을 보면서 생각해낸 아이디어인데, 꽤 괜찮다.

기온이 낮아질수록 삼치 맛은 더 깊어진다

밥이 얼추 된 뒤 뜸을 들일 즈음에 생선을 굽는다. 프라이팬에 삼치를 올리고 불은 가장 약하게 한다. 말린 삼치에 올리브오일을 듬뿍 뿌려두었기 때문에 따로 식용유를 넣지 않아도 된다. 생선 굽는 냄새가 주방에 가득 차면 삼치를 한 번 뒤집어준다. 회색빛 살이 하얗게 변하고 표면이 노릇노릇해지면 삼치구이가 완성된다.

짭조름하게 간이 밴 삼치는 가을 별미다. 가을에는 모든 게 맛나다. 바깥 기온이 1℃ 낮아질 때마다 맛은 서너 배 깊어진다. 가을에 전어·대하·낙지 따위에만 목숨을 거는 미식가가 많지만 삼치도 맛나다. 가을 전어가 맛있으면 가을 삼치도, 고등어도 맛있다. 다만 대중에게 삼치가 덜 알려졌을 뿐이다.

상을 차리고 윤희를 부른다. “윤, 밥 먹자” “삼치네? 오호~ 오늘은 좀 신경 썼네.” 삼치 한 덩어리를 뚝 떼어 현미밥하고 먹는다. 오늘도 한 끼를 맛나게 먹었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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