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륜 전 고검장은 ‘국민의 검사’로 불렸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아 축소한 사건 재수사를 맡아 해결한 전력 때문이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때 검찰은 당초 고문 경찰관을 2명만 기소했다. 고문 경찰이 더 있다는 폭로가 나온 뒤 그가 재수사를 맡아 경찰관 3명을 추가로 구속 기소했다. 1992년 구원파 사건 때도 그가 재수사에 나서 유병언씨를 전격 구속했다.

심재륜 전 고검장이 국민검사로 불린 결정적 계기는 한보 사건 재수사다. 1997년 초 대검 중수부장 시절 그는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전격 구속했다. 김현철씨 사건과 최근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는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이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일파만파로 번지자 여야는 특검제 도입에 합의했다. 검찰은 뒤늦게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뒷북 수사, 눈치 보기 수사, 가이드라인 수사 등 비판이 쏟아졌다. 심지어 특검이 수사를 미적댄 검찰 수뇌부를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심재륜 전 고검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노하우와 현재 검찰의 한계를 물었다.
 

ⓒ시사IN 신선영심재륜 전 고검장

검찰이 뒤늦게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나섰다.

지금까지 뭐 하고 있다가 검찰이 뒷북치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 사건에 손 놓고 있던 공백을 메우겠다는 심산일 텐데, 이래도 저래도 욕먹을 수밖에 없다. 검찰이 불신받은 시점에서 대안은 여야가 합의한 특검뿐이다.

특검이 성공하려면?

특검이 수사를 하더라도 유능한 검사들을 차출해 (특검에) 파견해야 한다. 과거 특검 때 내가 관여한 전례도 있다. 특검이 수사 방향과 의지는 확고해도 수사 실무와 절차, 판사가 신뢰할 만한 수사 내용까지 생각한다면 특검보 밑에 능력 있고 깨끗한 검사들을 파견받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어떤 특검에 관여했나.

1999년 옷 로비 사건 특검 당시 최병모 특검이 나에게 자문했다. 특검보 밑에 유능한 검사들을 파견받아 수사 역량과 신뢰성을 보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결과 양인석 검사가 특검보로 들어가 검찰의 협조를 적극 끌어내 성공적으로 수사했다.

김현철 구속 사건과 최순실 게이트를 비교한다면?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만 보아도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김현철 사건을 능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현철도 압수수색을 하니 청와대 인사 대상자 명단까지 다 나왔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방해한 것도 비슷하다.

당시 한보 사건 수사를 맡게 된 배경은?

한보 사건이 터지자 김현철은 거꾸로 의혹을 제기한 국회의원을 고소했다. 김현철은 고소인 신분으로 소환되어 검찰에 나와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갔다. 그러자 검찰이 정권 마피아라며 오물 투척, 규탄대회 등 민심이 들끓었다. 야당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경질하라고 요구했다. 요즘 청와대가 우병우 민정수석을 경질하지 못하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처럼 당시에도 권력 핵심에서는 검찰총장은 못 내보낸다고 버텼다. 대선 때문이었다. 대신 첫 수사에서 김현철에게 면죄부를 준 대검 중수부장을 교체했다. 그 뒤 내가 중수부장을 맡았다. 당시 검찰 수사 전력상 내가 한보 사건을 수사하면 누구도 트집 잡지 못하고 넘어갈 것이니 ‘심재륜을 기용해 현철의 무고함을 털고 나가자’는 심산이었다.

중수부장 기용 의도를 거스른 셈인데?

김현철씨를 상대로 철저히 수사하니까 검찰 안에서부터 견제가 들어왔다. 검찰 수뇌부가 나를 불러 “당신 뭣 때문에 여기(중수부장) 온 줄 아냐. 이것 다 쇼다. 눈치 없이 김현철을 왜 그렇게 파헤치느냐”라고 질책했다. 나는 “억지춘향식 중수부장으로 임명해 나를 바보 만들겠다는 것이냐”라며 대판 싸웠다. 안기부도 청와대도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나는 수사 보고를 딱 끊었다. 조사 대상이 청와대인데 내가 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수사 보고를 해야 하느냐고 버티니까 난리가 났다.

어떤 난리가 났나?

그때나 지금이나 현행법상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검찰 내 충성분자들 중 몰래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그걸 다 통제해놓으니까 청와대에서는 나를 성토했다. 수사 보고 요구를 끝까지 거절했더니 민정수석이 리츠칼튼 호텔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나 셋을 호출했다. 나는 안 나가고 대신 대검 수사기획관을 보냈다. 나를 경질할 것처럼 나왔다. 그때 문서 유출 메모지 사건이 터졌다(당시 중앙수사부 간부의 방에서 수사 축소를 요구하는 노골적인 내용이 담긴 외압 메모지가 발견되었다). 방송사가 ‘김현철은 절대 구속해선 안 된다’는 메모지 내용을 보도하면서 나를 경질하려는 기도가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청와대를 상대로도 수사했나?

내가 버티니 청와대에서도 지쳐서 결국 조금 양보했다. 김현철이 한보 돈 1억~2억원 받은 사건으로 축소해 불구속 처리하자고 했다. 나는 그 요구에 응하지 않고 김현철과 가까운 청와대 비서진을 줄줄이 소환했다. 그러자 기세등등하던 청와대 비서들은 거꾸로 자기가 검찰 조사받았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렇게 외압을 물리치고 김현철씨가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뒷돈을 받은 사실을 찾아내 구속 기소할 수 있었다.

당시 경험에 비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를 평가하면?

법을 어긴 청와대가 수사 대상이므로 구애받지 말고 철저히 조사했어야 한다. 요즘 검찰은 뭘 그렇게 고려하고 생각할 게 많은지 답답하다.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 식물정부라서 더 이상 잘 보일 일도 없잖은가. 우병우 민정수석이 그만두기 전에 검찰이 그를 상대로 수사했어야 옳다. 이석수 특별감찰관도 외압 때문에 박 대통령 측근 비리를 조사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비겁한 변명이다. 외압에 맞서 청와대를 조사했어야 한다. 쫓겨나더라도 그 과정에서 쫓겨나야 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검찰을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 그렇다면 월권행위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에게만 보고를 하는 것이 맞지, 청와대에 일일이 보고하게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전화상으로 청와대에 일일이 보고하는 검사들이 옛날부터 있긴 했다. 모든 것이 명쾌하지 않으니 검찰이 권력과 짝짜꿍이 되어서 우물쭈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연합뉴스심재륜 전 중앙수사부장은 김현철 사건 당시 청와대 비서진을 줄줄이 소환해 수사했다. 위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2년 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했는데?

구원파 유병언에 대한 비호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였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대양 사건은 내가 자부심을 갖는 수사였다. 당초 검찰 수사에서 신도 26명이 집단 자살했다고 결론 내린 사건을 4년 만인 1991년 내가 재수사했다. 구원파 핵심 인물 유병언을 전격 구속했다. 유병언을 구속하자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이 나를 포함한 구원파 수사팀을 인사 조처했다는 점을 근거로, 김 실장이 세월호 사건 뒤 무관심으로 방치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랬더니 나를 고소하더라.

오대양 사건 재수사 내용은?

1991년 오대양 사건 관련자 6명이 신도를 암매장했다면서 충남지방경찰청에 자수했다. 대전지검 차장검사로 있었던 내가 사건을 수사했다. 그 결과 그 배경에 유병언이란 실체가 나왔다. 유병언은 당시 권력과 밀착한 실세였고, 검찰총장이나 법무부 장관은 사건의 중대성을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비호 세력을 두고 있던 유병언을 갖은 방법을 동원해 구속했다(당시 검찰은 유씨를 신도들로부터 헌금 명목으로 금전을 갈취한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유병언은 이미 윗선에 로비를 해서 풀려날 것이라고 호언했고, 검찰에 들어올 때도 호위무사들을 거느리고 당당히 들어와 검사들을 호통쳤다. 내가 그해 7월29일 유병언을 덜컥 구속시키자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은 나를 포함해 수사팀을 이례적으로 8월1일 갑자기 인사 발령했다. 유병언이 분노해 로비한 윗선에 항의했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세월호 사건 때 구원파가 김기춘 실장을 겨냥해 “우리가 남이냐”라고 플래카드에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나도 그런 느낌이나 추론이 들어 세월호 참사 이후 김기춘 비서실장의 무관심과 방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던 것이다.

김 실장이 그 뒤 고소를 취하했는데?

김기춘 비서실장의 고소는 확산 방지용이었다. 사건을 진행해봐야 자기만 더 우스워지는 꼴이라서 정치검찰을 통해 나를 한껏 괴롭힌 뒤 취하했다. 김 실장이 고소하니 검찰이 나를 소환해 망신주려고 했다. 나가서 적극 대응할지, 안 나가고 투쟁할지 잠시 저울질하던 중 소를 취하했다. 검찰에 불려갔으면 김 실장을 상대로 폭탄발언을 하려 했다.

요즘 검찰이 불신받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 때는 검찰이 정치 중립화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기세라도 살아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이후 그마저도 사라졌다. 검찰이 대우조선해양 비리 수사 때도, 성완종 회장 리스트 수사에서도 제대로 처리한 게 없다. 헤아릴 수 없는 사건에서 검찰은 불신을 받았다. 이것을 보면 검찰은 이미 무너졌고, 오히려 강단 있는 판사가 나와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최근 검찰이 친박 의원을 뺀 여야 선거사범 기소를 두고 이중 잣대 논란도 일고 있다.

검찰 전반도 문제지만, 지금 검찰의 정치 중립성에 문제가 되는 것은 공안검사들도 한몫을 한다. 비슷한 사안을 놓고도 누구는 풀어주고 누구는 기소하면 당연히 논란이 인다. 물론 역대 선거를 보면 여당보다 야당 후보가 선거운동으로 고발당하는 경우가 더 많기는 했다. 결국 이런 사안은 법원이 재판을 제대로 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전형적인 정치검찰 사례를 든다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그렇다. 그런 분도 높이 평가할 만한 면이 있기는 하더라. 검사 때 법무부 장관 눈에 띄려고 날마다 장관 집 앞 언덕에 올랐던 노력, 남들 잠자는 시간에 일어나 하염없이 벌인 그 노력이 놀라웠다. 그런 사람 눈에 나 같은 검사는 수사 마치고 폭탄주나 마시는 주정뱅이로 보였겠지만…(웃음).

재벌 비리 수사도 용두사미로 끝났다.

요즘 재벌 수사를 보면 검찰은 수사 의지와 자부심 이런 것 외에 능력도 부족하다. 가령 롯데그룹 수사를 하려면 롯데 경영진 머리 위에 있어야 한다. 비자금 흐름, 외환 관계, 지주회사, 증권 계통 흐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나마 중수부 같은 기존 조직이 있으면 활용할 수 있는데 해체했다. 갑자기 모병제하듯이 수사팀을 뽑으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다. 뭘 알아야 하지. 그러다 보니 롯데 비리 사건은 신영자씨 구속 선에서 끝냈다. 신씨가 롯데 비리의 주범인가. 그런 사람은 구속하고 주범은 불구속 기소하니 검찰이 욕을 먹는 것이다.

 

 

 

 

ⓒ연합뉴스2002년 1월 심 전 고검장이 퇴임식을 마치고 검찰청사를 떠나고 있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직을 제의받았으나 고사했다.

검찰이 정치권력 못지않게 재벌 권력에 약하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재벌에 대한 검찰의 구속 수사는 수사 방법 중 하나다. 풀어놓으면 증거인멸하고 도주하니까. 남기춘 검사가 한화그룹 수사할 때 핵심 인물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다 기각됐다. 수사받는 이들이 볼 때는 검찰의 힘보다 재벌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니 수사에 협조했다가 나중에 배신자 소리 들을까 봐 범죄 혐의를 감추기에 급급해한다. 그렇더라도 문제는 검사다. 검찰이 밉다고 검찰을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니 제도보다는 사람을 확 바꿔야 한다. 지금 검찰에 특히 미흡한 것은 집단 대량 경제 대응 사건(재벌 경제 비리 사건)이다. 검사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조직화가 필요하다. 검찰 수사는 전쟁과 마찬가지로 장수도, 무기도, 기초훈련도 모두 필요한 법인데 요즘 검찰은 기초훈련조차 없어졌다.

진경준 검사장 비리 등 고위 간부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데?

이왕 욕 얻어먹는 검찰이니 해먹는 거나 맘껏 해먹자는 심보가 아니고서야 그게 말이 되는가. 검사가 검사의 길을 갈 수 없을 때는 과감히 옷을 벗어야지 생계 수단으로 검찰권을 이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엄벌에 처해야 한다.

스폰서·수사 무마 청탁 의혹을 받는 김형준 부장검사는 수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과거에도 검찰에 스폰서 문화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때는 죄의식이라도 가졌다. 지금은 김 부장검사처럼 핸드폰으로 대놓고 낯 뜨거운 스폰서질을 하는 검사가 나온다. 검찰 사명감과 자신감 결여가 이유라고 본다. 온갖 드라마가 검찰을 도둑놈 집단으로 몰고, 정치권력과 결탁해서 나쁜 짓이나 벌이는 집단으로 보는데 모든 검사가 그렇지는 않다. 몇 사람만 솎아내도 검찰이 제대로 설 텐데 그 몇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니 맑은 검찰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강단 있고 유능한 검사였지만 관운은 없다는 평이 있더라.

하고자 했으면 국회의원도 장관도 할 수 있었지만 나하고 맞지 않아서 거부했다. 한길만 파면 된다. 전형적인 정치검사처럼 검찰도 하고, 정치도 하고, 관직에도 오르는 삶은 추구하지 않았다. 검찰에서 은퇴한 뒤 한보 사건 수사팀 현직 후배 검사들과 10여 년간 만났다. 내 국회의원 출마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을 때 그 후배들이 투표를 해서 다수결로 “출마하지 마십시오”라고 해서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법무부 장관도 고사했다고 아는데?

2004년 문재인 민정수석이 주선해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문재인 수석, 나 이렇게 넷이서 청와대에서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심 선배님이 법무부 장관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정중히 고사했다. 2002년 대선 때 내가 이회창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했는데 참여정부 법무부 장관을 맡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느냐고 이유를 말했다.

끝으로 최순실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를 대하는 후배 검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검찰 개개인이 검찰 독립, 정치 중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사명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외롭고 남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성취감과 사명감과 실천 의지를 갖고 수사 자질과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나도 수사할 때 외압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외압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해버렸다. 수사는 지략이다. 수사 착수할 때 혐의자의 배경까지 다 내사해놓고 어느 단계에서 어떤 선까지 외압이 들어올 것이라고 예측해 예봉을 꺾었다. 돈키호테처럼 무조건 달려나가 칼부터 뽑고 외압 때문에 수사를 못 했다고 변명하는 것은 비겁하다. 수사 제대로 했다고 목을 칠 건가. 정당하게 수사하다 목이 날아가면 또 어떤가. 검사 그만두면 먹고살 길이 없나.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고 유병언 전 회장측은 심재륜 변호사의 ‘1991년 7월 29일 유병언을 구속시키자 이례적으로 갑자기 8월 1일 인사발령했다’라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려왔습니다. 

유병언 전 회장은 1991년 당시 참고인 신분으로 알고 검찰에 출석하였습니다(이에 대해서 심변호사가 2014년 모 언론과 인터뷰한 바 있습니다). 구속될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기에, 로비를 해서 풀려날 것이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1991년 7월 27일에 유 전 회장이 구속되기 전에 이미 다수의 신문에서 심 변호사를 포함한 검찰 정기인사 보도가 있었습니다. 유 전 회장에 대해서는 1987년, 1989년, 1991년 세 차례나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그 어떤 권력의 비호를 받은 바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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