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반정부 무장조직’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상징 ‘부사령관 마르코스(59·Subcomandante Marcos)’가 오랜만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0월 중순,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에서 열린 ‘원주민 의회’에 검은색 스키 마스크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문 특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회의에서 합의된 결정은, 2018년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 원주민 여성을 후보로 출마시킨다는 것이었다. 멕시코 사회가 경악했다. 사파티스타는 무장조직이지만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할 생각이 없다. 선거로 집권하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일체의 권력을 악(惡)으로 간주하는 낭만주의 아나키스트들이다.

사파티스타의 대선 참여 선언에 가장 크게 반발한 쪽은 제도권 좌파 진영이었다. 좌파를 분열시켜 우파에게 다시 정권을 넘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르코스는 10월 말, 인터넷에 올린 ‘편지’를 통해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다”라는 사파티스타의 방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멕시코의 부호이자 세습 정치 가문 출신인 펠리페 칼데론 전 대통령과 그 부인 마르가리타 사발라(변호사 출신 정치인이며 우아하고 사치스러운 복장으로 유명하다)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당신들은 유명 브랜드의 우아한 옷을 걸친 상류층 여성과 고유한 문화·언어·역사를 가진 빈곤층 원주민 여성 간의 토론을 듣고 싶지 않은가? 두 세계의 충돌을 보고 싶지 않은가?” 사파티스타의 대선 참여 목적은 멕시코 사회·정치 시스템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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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는 멕시코 자치대학교(UNAM)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따고 여러 해에 걸친 강의 경력을 가진 좌익 엘리트 출신이다. 1984년 치아파스 주로 들어가 사파티스타에 참여했다. 사파티스타가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1994년 1월1일 봉기해서 6개 도시를 점령했을 때 대변인을 맡았다. 유려한 문체와 카리스마, 마르크스주의에 아나키즘, 남미 마야 원주민들의 전통 사상 등을 칵테일로 만든 것 같은 독특한 사상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이후 멕시코 정부와의 평화협상을 주도해 원주민 지역의 자치를 인정받았다. 2014년 5월, 마르코스는 자신의 강렬한 이미지가 사파티스타 운동을 덮어버렸다며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죽었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한 뒤 공식 활동을 거의 중단했다. 명칭까지 ‘부사령관 갈레아노(Subcomandante Galeano)’로 바꿨다. 여기서 ‘부사령관’은 군사조직의 서열 2위가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 사령관인 원주민들의 다음 서열’이라는 의미다. ‘갈레아노’란 이름은 교사 출신의 사파티스타 활동가로 2014년 5월 우익 군사조직에게 살해당한 루이스 로페즈 갈레아노로부터 따왔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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