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떡잎’ 같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른바 ‘천부적 재능’이라는 신화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일종의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음악을 듣다 보면, 뭐랄까 ‘얘들은 왠지 곧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이름을 볼 것 같은데’ 싶은 친구들을 발견하고는 한다. 최근에도 이런 나만의 촉을 아주 강력하게 느낀 경우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출신 남자 2명으로 구성된 밴드 ‘디스 와일드 라이프(This Wild Lif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일단 이 글 읽기를 잠깐 멈추고 그들의 곡 ‘렛 고(Let Go)’를 찾아서 들어보기 바란다. 어쿠스틱 포크의 서정 미학에 몽롱한 전기 기타 아르페지오 연주, 여기에 묘하게 다이내믹한 구성까지, 이런 노래를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친숙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구성을 들려준다. 그중에서도 피처링을 맡은 여가수 마야 터틀의 목소리가 스며 들어오는 타이밍은 예술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디스 와일드 라이프는 이름과 꼭 닮은 음악을 하던 5인조 밴드였다. 결성 당시 팝 펑크 음악으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지만, 케빈 조던과 앤서니 델 그로소의 듀오 형태로 전환한 뒤 어쿠스틱 포크 팝으로 방향타를 바꾼 것이다. 그런데 음악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듯 음악적인 스타일의 변환을 통해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인기를 얻은 경우가 제법 있다.

ⓒGoogle 갈무리밴드 ‘디스 와일드 라이프’는 음악 스타일을 바꿨다.
저 유명한 엘리엇 스미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소란스러운 펑크 밴드 ‘히트마이저’의 멤버로 시작했지만 솔로로 독립하고 나서는 그와는 대조적이라 할 음악으로 성공을 거머쥐었다. ‘비트윈 더 바스(Between the Bars)’ ‘에인절 인 더 스노(Angel in the Snow)’ ‘하이 타임스(High Times)’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굿 윌 헌팅〉(1997)의 엔딩곡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까지 오른 ‘미스 미저리(Miss Misery)’ 등이 변화한 엘리엇 스미스의 세계를 상징하는 곡으로 손꼽힌다.

다시 디스 와일드 라이프로 돌아와본다. ‘렛 고’ 외에도 그들의 2집 〈로 타이즈(Low Tides)〉에는 좋은 곡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첫 싱글이자 은은하면서도 아름다운 사운드의 확장감을 느낄 수 있는 ‘풀 미 아웃(Pull Me Out)’을 필두로 깊으면서도 넓은 사운드 스펙트럼을 지닌 ‘힛 더 레스트(Hit the Rest)’, 많은 팬들이 음반의 베스트로 꼽는 ‘저스트 예스터데이(Just Yesterday)’ 등이 바로 그 주역 트랙이다. 그냥 음반 전체가 고르게 준수하다고 보면 된다.

펑크 팝 밴드가 대세인 캘리포니아 출신이지만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의 고향인 캘리포니아는 실제로도 시원하게 말 달리는 펑크 팝 밴드들이 대세인 지역이다. 자연스레 그런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을 것이고, 전기 기타를 잡은 후에는 힘차게 파워 코드를 치면서 무대 위를 방방 뛰어다니는 게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본래의 마스터플랜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컬이었다. 아무래도 샤우팅 위주의 창법이 요구되는 펑크 팝이 케빈 조던의 가녀린 목소리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어쿠스틱 포크 팝으로의 변신이 신의 한 수였던 가장 큰 근거다.

물론 디스 와일드 라이프가 빌보드 차트에 진입할 수 있을지를 내가 장담할 순 없다. 지금까지 내 역사를 돌이켜보면, 내가 느낀 ‘우주의 기운’이 맞아떨어진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역시 많았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심각하게 생각해본다. 옳다구나! 이게 다 빨간 펜 선생님을 따로 두지 않아서 생긴 결과였구나. 이렇듯 돈오(頓悟)에 비견할 만한 깨달음과 함께 듣는 디스 와일드 라이프의 음악은 정말이지 끝내주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이 거친 (대한민국에서의) 삶이여!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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