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싸우면서 큰다. 그냥 동네 아이들이나 학교 친구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서로 경쟁자인 숙명을 피할 수 없는 형제자매 사이가 그렇다. 그건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찾고 사회에서 자리를 정하는 데 필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나도 어린 시절 동생이랑 꽤나 싸웠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삼 남매는 제법 사이좋게 지낸다. 그 부단한 싸움으로 얻은 정신의 근육과 맷집이 남매 사이를 탄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 덕분이 아닐까.

싸우면서 크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병아리 싸움〉을 보면 병아리도 마찬가지란다.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들이 엄마 닭 뒤를 졸래졸래 따라가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중 세 자매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데, 막내는 둘레둘레 한눈파느라 정신없고 언니 둘은 사사건건 서로 부딪친다. ‘눈을 부라리고 깃털을 곧추세우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지렁이 한 마리에 달려들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가 하면, 물 한 모금도 먼저 먹겠다고 나서다가 엎어버리기 일쑤다. 글을 쓴 작가의 시어는 군더더기 없고 활기 넘쳐서, 병아리들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어쭈 해보겠다는 거야!” “그래 한번 붙어보자 이거지?” 같은 통통 튀는 대화도 재미있다(자매가 티격태격하는 게 아니라 형제가 툭탁거리는 듯한 말투지만).

〈병아리 싸움〉 도종환 지음, 홍순미 그림, 바우솔 펴냄
그림을 그린 작가는 그 생기에 부드러움과 사랑스러움을 얹어 편안한 균형감을 만들어낸다. 많은 장면에서 노랑·연두·초록·갈색·빨강 등 다채로운 색깔이 사용되지만 과하거나 어지러운 자극은 없다. 무엇보다도 이 작가 특유의 한지 활용법이 감탄스럽다. 병아리 모양을 오리고 그 끝을 한 올 한 올 풀어내서 보송보송한 털의 질감을 제대로 살려낸 것이다. 그림이 시각만이 아니라 촉각도 일깨운다. 병아리며 오리 같은 캐릭터들뿐 아니라 풀밭과 땅과 나뭇잎 같은 배경도 그런 기법으로 채웠으니, 손가락 끝이 얼마나 닳았을까. 그 정성스럽고 따뜻한 그림은 아이들의 싸움을 다독다독 다독여준다. ‘붙었다고 꼭 싸우는 건 아니다/ 그냥 한번 기 싸움 해보는 거다’처럼 슬그머니 눙치는 글에 맞춤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글과 그림의 어울림은 이야기에 풍성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 싸움이 병아리들의 하루 삶을 살았다 싶게 만드는 일이구나, 여기게 한다.

병아리 세 자매가 ‘몸 찰싹 붙이고 같이’ 자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음이 그득해진다. 아이들은 하루를 살아낸 만큼, 서로 싸운 만큼 컸을 테고 내일도 또 그렇게 자랄 것이다. 그런데 살짝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게 뭘까. 신비로운 보라색 하늘과 그윽한 녹갈색 땅이 너무 아름답고, 그 사이의 노랑 병아리 셋이 너무 사랑스럽고 평화로워 보여서일까. 이런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안타까운 마음인 모양이다. ‘아픈 데 서로 비비며’ 함께 지낼 이 없는 사람, 혼자인 병아리 같은 외톨이들은 어쩌나. 아무리 싸워도 도무지 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쩌나. 내가 원래 이렇게 착한 걱정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병아리 싸움〉의 후유증일까. 삐악!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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