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선수들끼리 통하는 법칙이 있다. ‘일도이부삼빽’. 범죄를 저질렀으면 일단 도주가 최선이다. 그다음은 부인한다. 마지막으로 ‘빽’을 동원한다. 최순실, 그녀는 선수였다. 9월 초 언론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국외로 출국했다.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관련한 혐의를 부인했다. 어리숙해 보였지만 정교했다. 한 변호사는 “법률 조언을 받은 인터뷰 같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선수도 오판했다. 그녀가 믿었던 빽이 무너지고 있다.

최순실 사단과 관련한 의혹은 ‘연기’ 같았다. 연기는 무성했고 타는 냄새도 간혹 났다. 그러나 잡으려고 하면 잡히는 게 없었다. 잡을 뻔한 적도 있었다. 정윤회 문건, 곧바로 되치기를 당했다. 정윤회 문건을 직접 작성하고 경고음을 울렸던 공직자들은 덫에 걸렸다. 문건 유출 당사자들로 지목된 ‘7인회’ 프레임을 만든 장본인이 우병우 수석이라는 말도 돌았다. 이 사건으로 한 경찰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연기는 피어나기 마련이고 소문은 청와대 담장을 넘는다. 최순실 사단의 일원인 윤전추씨 이야기다. 유명 헬스클럽 트레이너였던 그녀를 청와대 제2부속실의 3급 행정관으로 임용하는 데 최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건 정설이다. 제2부속실은 원래 영부인 수행업무를 관장하는 곳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 제2부속실 폐지 논란이 일자, “소외된 계층을 살피는 민원 창구로 활용하겠다”라며 존속시켰다. 알고 보니 ‘소외된 계층’은 최순실씨였고, 그녀의 민원 창구가 윤 행정관이었다. 윤 행정관은 최순실씨가 만든 의상을 들고 순방 때마다 전용기를 탔다. 순방 중 대통령 숙소를 드나드는 윤 행정관도 검문용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한다. 한번은 경호실 직원들이 통과하라고 하자, 그녀가 어느 분과 꼭 닮은 레이저 눈빛을 쏘았다고 한다. ‘내가 누군데 이런 걸 통과해야 하느냐.’ 무사통과. 호가호위는 전이된다.

지금까지 드러난 최순실 사단 관련 의혹을 보면, 그들은 청와대를 접수했다. 나랏일을 농락한 게 아니라, 직접 국정을 했다. 민심은 대통령이 사교(邪敎)에 홀렸다고 의심한다. 2007년 미국 대사관이 본국에 최태민 목사를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보고했다는 위키리크스 폭로도 다시 회자된다. 라스푸틴은 제정 러시아의 몰락을 이끈 요승이다. 이 보고서에는 “최태민이 인격 형성기의 박 후보의 심신을 완전히 지배했다”라는 구절도 나온다. 민간인에게 자신의 권한을 떼어준 ‘창조 국정’을 전하는 해외 언론의 반응은 더 민망해 소개하지 못할 지경이다.

이 글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최순실 사단의 동맹은 튼튼한 것 같다. 동맹은 깨지기 마련이다. 사냥이 끝난 개가 쓸모없어지면 잡아먹힌다. 누가 누구를 토사구팽할까, 주인이 누구이고 개가 누구일까? 주어는 밝히지 않았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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