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3일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로 ‘믹스라이스’를 선정했다. 믹스라이스는 조지은과 양철모로 구성된 듀오 그룹이다. 이들은 10년 넘게 이주노동자 문제에 천착하면서 사진·영상·만화·벽화·페스티벌 등을 기획하거나 진행해왔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믹스라이스는 정착하지 못하고 이주해야 하는 현실에 주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1970년대 아파트 개발 현장을 모티브로 한 설치 작품, 도시개발 과정에서 어디론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 나무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담아내 호평받았다. 믹스라이스의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17년 1월15일까지 열린다.
우리는 한동안 나무를 찾아다녔다. 주로 개발로 옮겨질 예정이거나, 임시로 심겨 있거나, 이식된 나무들, 그리고 마을의 오래된 나무들이었다. 그런 나무를 만나면 언제나 그 배경에는 개발이라는 상황이 있었다. 그것은 매번 무지막지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개발이란 행위는 땅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갈아치웠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는, 늘 오늘만 있는 현재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런 곳에서 우리가 정착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개발 현장에는 늘 나무가 있었다. 3년 전 경북 영주댐 금광마을 수몰 지역에서 만난 오래된 나무들은 또 다른 곳으로 이식되거나 고사(枯死)했다. 개발 앞에서 나무는 파내어지고 시간이 삭제된 채 다른 곳으로 이식된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는 〈덩굴연대기〉라는 제목으로 식물의 이주와 정착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부동산 가격에 따라 터전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개발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이주를 해야 하는 공동체들이 나무와 함께 어떻게 이주하는지를 추적했다. 특히 제주도 신당의 나무들을 찾아다녔는데 이 신목들이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보여주면서 나무가 연결했던 마을과 마을, 공동체와 우주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
제주 곶자왈 난개발의 풍경, 덩굴에 방치된 신당의 신목, 조경업자에게 훔쳐졌다 되돌아온 나무, 재개발에 버려질 나무들까지 많은 풍경과 나무가 우리와 함께 있음을 알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 공사 현장에 남아 있는 나무군락의 처지도 비슷하다. 이 나무들은 잠시 심어진 조경수에 불과하다. 아파트가 지어지면 어딘가로 옮겨질 것이다. 조경수로 바뀔 나무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이야기는 잊히고 원래의 자리와 상관없는 다른 장소에 심어질 것이다.
서울 개포동과 고덕동 주공아파트의 버려진 나무와 집들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에게 어떤 풍경으로 바뀌어 다가올지 궁금하다. 식물은 시간이 있어야만 존재하기에 우리는 그것에서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연결 지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식물의 이주를 통해 정착하지 못한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서 왜 우리는 외부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지, 왜 우리에게는 내부만 있는지 스스로 질문한다. 이 외부는 자연이나 식물일 수도, 이주노동자 같은 다른 타자일 수도 있다. 내부는 우리 자신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시간을 좇다
‘이주’라는 상황이 만들어낸 여러 흔적과 과정, 경로, 결과, 기억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2002년 부천외국인노동자센터와 성동구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다문화축제에서 각 나라의 문양으로 만든 깃발을 애드벌룬으로 띄우거나, 소소하게 강제추방 핫케이크 따위를 만들어 나눠 먹었다. 2006년에는 〈리턴〉이라는 작품을 기획했다.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를 만나 사진과 만화 등으로 표현한 일종의 여행 프로젝트였다. 〈리턴〉은 믹스라이스로서는 전환점이었는데, 그룹으로서의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개개인의 욕망과 움직임이 ‘이주’ 안에서 어떻게 부유하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작업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초대하는 것, 서로가 서로를 청하는 것,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 쓰레기장 같은 마석가구단지에서 스스로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믹스라이스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명명되지 않은 시간과 타자, 불가해한 개발과 시스템의 구축으로 평평해진 공간, 그리고 어디에든 속하지 못하는 개인, 그런 부재의 순간들을 상기하는 이야기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