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8일 임영진 성심당 대표(62)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 옛 충남지사 공관에서 열린 〈나의 도시, 나의 성심당〉 전시회 자리에서였다. 창업 60년을 기념해 성심당의 역사와 대전의 근대 풍경을 함께 엮어 전시하는 행사였다. 임 대표가 눈물을 흘린 건 ‘깜짝 선물’ 때문이었다. 보낸 이는 놀랍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빵을 나눈 성심당의 60년을 축하하는 메시지와 교황의 친필 사인을 담은 ‘표창장’을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가 임 대표에게 전달했다.

교황이 선물을 보내온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성심당이 문을 연 것은 1956년 10월. 임 대표의 아버지 고 임길순씨가 대전역 앞에 천막 노점을 열었다. 임길순씨는 6·25 전쟁 때 월남했다. 진해에서 냉면 장사를 하다가 대전에 정착했다. 대전 대흥동성당의 오기선 신부로부터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아 빵을 만들어 판 게 그 시작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임길순씨는 하루 생산량 3분의 1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웃과 나누는 빵집. 그게 임씨가 생각한 성심당의 ‘본질’이었다. 대전역 앞 노점 빵집은 60년이 지나 직원 400여 명이 일하는 제빵 기업으로 성장했다.

ⓒ시사IN 신선영임영진·김미진(왼쪽부터) 부부는 가톨릭교회의 사회운동인 포콜라레 방식으로 성심당을 경영한다.
임영진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빵 배달을 하며 부친의 일을 도왔다. 20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제빵 기술을 익혔다. 이런 경험이 쌓여 그는 한 드라마 제목에 빗대 ‘제빵왕 임탁구’로 불린다. 1980년 5월에는 성심당의 히트 상품 튀김소보로를 만들어냈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 김미진 이사(57)가 주도한 마케팅 이벤트도 빵집이 커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전에서 점점 성심당의 이름이 알려졌다.

성심당에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1987년 6월항쟁 때였다. 임씨 가족은 성당 종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하고 싶어서 성심당을 대흥동성당 앞으로 이전했는데 성당 앞에서는 그해 연일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 여파로 장사가 안 되었다. 기왕 남은 빵으로 청년들 배를 채워주자 싶어 시위대와 전경에게 물과 함께 나누어주었는데 경찰이 이를 문제 삼았다. 갖은 이유를 달아 임 대표를 구속하려 했다. 6·29 선언 이후 무혐의로 풀려났다. 뜻하지 않게 성심당 문을 닫을 뻔한 순간이었다.

더 큰 위기는 2005년 1월22일에 찾아왔다. 성심당에 화재가 났다. 가뜩이나 경영 상황이 좋지 않은 시기였다. 거미줄처럼 퍼져가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세가 커졌고, 성심당이 위치한 대전 원도심이 쇠락해갔다. 매출이 줄어 직원 월급마저 걱정할 즈음 불까지 난 것이다. 임영진 대표는 ‘접어야 하나’ 싶었다. 그때 임 대표는 직원들이 화재 현장에 내건 현수막을 보고 놀랐다. ‘잿더미 속의 우리 회사, 우리가 일으켜 세우자!’ 직원들이 나서서 중고 제빵 기계를 구해왔고, 화재가 난 지 6일 만에 다시 빵을 구워낼 수 있었다.

임영진 대표는 화재가 난 2005년 1월22일을 ‘제2의 창업일’이라고 부른다. 성심당은 2008년부터 매주 〈한가족 신문〉이라는 사내 소식지(50쪽 분량)를 발간하는데, ‘한가족’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도 화재 이후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회사 경영 방식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다. 임영진·김미진 부부는 진작부터 새로운 경영 방식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가톨릭교회의 사회운동인 포콜라레 운동도 그중 하나였다. 포콜라레는 경제 불평등과 사회의 소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자신의 일터와 직업 안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운동이다(〈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김태훈 지음, 남해의봄날 펴냄). 두 사람은 예전에 필리핀의 포콜라레 학교에서 EoC(Economy of Communion·모두를 위한 경제)를 알게 되었다. 기업이 경영을 통해 공동선을 실현하고 이를 실천하는 경제 개념이다. 2000년대 초, 부부는 포콜라레 운동을 처음 시작한 이탈리아인 키아라 루빅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들의 빵집을 어떻게 경영을 하면 좋겠느냐고 조언을 구했다. 그는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라고 답을 보내왔다. 이 구절은 성심당의 사훈이 되었다.

ⓒ시사IN 신선영성심당은 대전에만 있다. 다른 지역에도 매장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임 대표는 거절했다.
성심당의 회사 정관에는 이 기업이 EoC 기업임을 명시하고 있다. 올바른 생산 활동으로 돈을 벌고 동시에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걸 목표로 세웠다. 성심당은 ‘100% 정직한 납세’를 철저히 실천했다. 또 매출을 전 직원에게 공개했다. 회사에 수익이 나면 분기마다 정산해 그중 15%를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했다. 회사는 인센티브의 20%에 해당하는 돈을 따로 EoC 기금으로 냈다. 이 돈은 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인다. 매달 3000만원 이상의 빵을 80~100개 복지기관에 기부하기도 한다.

성심당의 인사 원칙도 남다르다. 인사고과의 40%가 ‘동료 간의 사랑과 배려’다. 매주 직원들이 소식지에 쓰는 글 등을 참고한다. ‘사랑의 강도’를 평가하는 기준도 마련했다. 다른 직원에게 박카스 같은 물품을 사 돌리는 일은 1점, 서로 사이 나쁜 직원끼리 화해하면 5점이라는 식이다. 성직자 등 외부 인사에게 평가를 부탁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할까. 임영진 대표는 “매출 증대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게 회사의 방향과 비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빵을 만들 때 레시피가 전부가 아니다. 직원 간 관계가 사랑·배려의 관계가 되면 품질도 좋아진다”라고 말했다.

사이 나쁜 직원끼리 화해하면 5점 추가

대전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대전 지역 대학생들은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 1위로 성심당을 꼽았다. 2위는 대전 연고 야구단인 한화이글스였다. 임영진·김미진 부부는 대전 밖에 매장을 내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그때마다 거절했다. 임영진 대표는 “한 도시 안에서 기업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성심당 빵을 먹기 위해 대전을 찾고 그렇게 한 사람이라도 와서 대전 경제에 보탬이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성심당 빵이 시민들의 자랑이 되는 게 우리에게는 훨씬 더 소중한 가치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성심당 60년 기념 도서를 내자는 출판사의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다. 제안을 한 출판사 가운데 ‘남해의봄날’을 선택했다. 이 출판사가 통영에 사무실을 둔 로컬 출판사라는 이유가 컸다. 김미진 이사는 “지역에서 소신 있는 책을 펴내는 모습이 성심당과 어울리고 함께 작업하는 게 의미 있어 보였다”라고 말했다. 빵을 중심에 두고 지역에 기여하고, 빵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기업, 성심당 이야기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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