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반응은 이랬다. “노무현 정부에게서 배워라(10월15일).” 하지만 곧 이렇게 바뀐다. “새누리당은 북한 때문에 존속하는 정당이다(10월17일).” “군대도 제대로 갔다 오지 않은 사람들이 종북 타령(10월18일).” “선거만 다가오면 색깔론을 펴는 못된 버릇을 꼭 고쳐놓겠다(10월19일).” “정말 찌질한 정당(10월20일).”

새누리당이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을 빌미로 이른바 ‘문재인 대북 결재사건’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 10월14일 이후, 타깃이 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쓰거나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방식으로 대응 메시지를 냈다. 그런데 10월15일 메시지와, 10월17일 이후 메시지의 결이 꽤 다르다. 10월15일에는 사실관계를 따지고 노무현 정부를 변호했다. 10월17일 이후에는 두 요소가 모두 사라진다.

문재인 전 대표가 ‘메시지가 좋은 정치인’이라고 평가받지는 않는다. 정치권의 관찰자들은 문재인발 메시지의 약점이 특히 두드러지는 장면이 있다고 말한다. 북한 이슈, 그리고 노무현 이슈가 등장할 때다. 2012년 대선 막바지 ‘NLL 포기’ 논란과, 2013년 6월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회의록 무단 공개 논란 등, ‘북한+노무현’인 장면에서 문 전 대표는 여러 번 헛발질을 했다.

ⓒ연합뉴스송민순 전 장관 회고록을 빌미로 새누리당이 ‘문재인 대북 결재사건’ 공세를 펴자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군대도 제대로 갔다 오지 않은 사람들이 종북 타령”이라며 역공을 폈다.
이번에도 익숙한 패턴이 돌아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 출간이 발단이었다.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2007년 11월, 유엔은 북한인권결의안을 상정했다. 노무현 정부는 찬성 투표와 기권 투표로 갈려 논쟁을 벌이다가 기권으로 방침을 정리했다. 그런데 논의 과정에서 “북한에 물어보자”라는 의견이 나왔고, 북한의 반대 의견을 확인한 후 기권을 확정했다고 회고록은 주장한다. 찬성 투표를 주장했던 송 전 장관은 이것이 잘못이었다고 본다.

논의 참석자 중에 문재인 전 대표가 있었다. 그는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새누리당은 이 대목을 뽑아내 ‘문재인 대북결재 요청사건’이라고 이름 붙였다. 새누리당의 전략은 2012·2013년과 판박이다. 문재인 전 대표에게 가장 잘 통하는 북한과 노무현 카드를 엮는 것이다.

북한 카드는 한국 보수 정당이 선거 때마다 반대파에 휘둘러온 무기다. 노무현 카드는 더 미묘한 방식으로 효과를 낸다. 노무현 이슈가 등장할 때 문 전 대표는 거의 본능적으로 ‘대선 주자 문재인’이 아니라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으로 돌아가는데, 이렇게 해서 내놓는 대응이란 노무현 정부를 방어하는 메시지다. 정치인을 판단하는 유권자는 그가 차세대 지도자로 적격인지를 살피는데, 정작 본인은 과거 지도자의 참모로 돌아가버린다. 이러면 방어에 성공하더라도 본인의 ‘체급’은 떨어진다.

2013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정국은 문재인발 메시지 실패를 보여주는 표본으로 간주된다. 대선 개입 의혹으로 궁지에 몰렸던 국가정보원은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회의록을 무단 공개했다. 그 자체로 무리한 도박이었지만, 틀림없이 있다던 “NLL 포기 발언”이 없다는 사실이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확인되었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거꾸로 큰 위기에 몰렸다. 이 국면에서 국회의원 문재인은 한 달 동안 성명서 5개를 쏟아내는데, 성명서는 나오는 족족 논란의 지형을 기묘하게 꼬아버렸다.

ⓒ연합뉴스2013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논란 당시 김경수 당시 봉화사업본부장이 반박자료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 문 의원은 6월21일 성명서에서 회의록 원문 공개를 제안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NLL 수호 전략을 제대로 세웠다’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탓에 ‘회의록 무단 공개’와 ‘포기 발언 없음’이라는 주 전선이 흐려졌다. 이후 국가기록원에 회의록이 없다는 뜻밖의 사실이 확인된다. 이 의외의 상황에서 나온 4차 성명서는 “이제 NLL 논란은 끝내야 합니다!”였다. 정상회담 회의록이 아니더라도 정상회담 준비 과정과 사후 보고 기록만으로 NLL 진위 논란을 끝낼 수 있다는 제안을 담았지만, 정작 제목이 엉뚱하게 달려버려 꼴사나운 발빼기 느낌을 주었다.

이 성명서를 계기로 사건의 본질은 ‘정상회담 회의록 무단 공개’가 아니라 ‘국가기록원 회의록 실종 사건’으로 바뀌어버렸다. ‘실종’의 책임은 고스란히 문 의원에게 쏠렸다. 이때 나온 5차 성명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 NLL 논란을 끝내야 합니다’라는 글을 이상하게 해석하고 황당하게 비난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글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취지를 거듭 분명하게 강조하고자 합니다.” 정치인이 자기 메시지를 해설하는 메시지를 또 냈다. 이 장면만큼 메시지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도 흔치 않다. 물론 5차 성명서도 길고 복잡했다.

“DNA가 변호사라서 그래.” 당시를 회상하자 문재인 전 대표의 한 참모가 이렇게 말했다. “사실과 다른 공격이 들어오면 그걸 바로잡지 않고는 못 견딘다. 일일이 팩트 싸움 디테일 싸움을 하다 보니, 축구로 치면 공이 자꾸 우리 진영에서만 논다.” 정치적인 논란에서 복잡한 디테일을 따지는 해명이 성공하기도 쉽지 않지만, 성공한다 해도 얻는 것이 크지 않다. ‘노무현의 변호사’를 자처할 때마다 문재인은 종속변수로 내려앉는다. 이번엔 어떨까. 앞서의 참모가 말했다. “박근혜 대 노무현 싸움이 되면 안 된다. 그건 이겨도 손해다. 박근혜 대 문재인 싸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건 기회다.”

“‘노무현 변호사’로 팩트 싸움에만 연연했다”

이 관점으로 보면, 10월15일 페이스북 메시지 “노무현 정부에게서 배워라”는 2013년 정상회담 회의록 정국의 재방송이나 다름없었다. 메시지의 절반 이상을 복잡한 사실관계를 따지는 데 할애하며 자기 진영에서만 공을 돌렸다. 새누리당이 가장 원하는 구도다. 제대로 먹혀봐야 돋보이는 것은 노무현이었고, 문재인은 종속변수로 비칠 참이었다. 유권자가 차기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분명 아니다.

이틀 후인 10월17일부터 메시지가 급변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할 분담이다. 문 전 대표는 그토록 집착하던 사실관계 논의를 통째로 외주를 주었다. 문 전 대표의 측근인 김경수 의원이 이 역할을 맡았다. 김 의원은 2007년 당시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으로 비공식 회의에도 참석해 메모했다.

ⓒ연합뉴스10월17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회고록 내용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실관계 논란의 핵심은 북한 의견이 우리 정부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쳤느냐 여부다. 2007년 당시에 이 문제로 안보정책조정회의가 열린 것은 11월15일, 대통령이 주재한 비공식 토론은 11월16일이었다.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북한 의사를 타진하자고 한 것은 11월18일, 유엔 인권결의안 투표는 11월20일이었다. 송민순 회고록은 기권 결정이 북한의 반응을 받아든 후인 11월20일에 이루어졌다고 쓴다. 당시에는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도 기권 결정이 11월20일에 났다고 기자들에게 브리핑한다. 새누리당은 이 대목을 근거로 ‘북한 결재’라는 표현을 쓴다(송민순 회고록에도 11월16일부터 이미 기권 투표 의견이 다수였으므로, 시점 문제가 반드시 ‘결재’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11월16일 대통령 주재 비공식 회의에서 자신이 배석해 쓴 메모가 남아 있다며, 대통령이 기권 방침을 11월16일에 확정했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사후 통보’다. 천호선 정의당 전 대표도 “당시 브리핑은 김경수 의원의 현재 설명과 일치한다”라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권 방침을 사실상 결정하고도 주무부처인 외교부 장관이 강력하게 반대하니 형식상 최종 결정은 11월20일까지 미뤘다는 의미가 된다.

공을 상대 진영으로 넘기는 전략으로 선회

이 복잡한 사실관계 싸움을 외주 주면서 문 전 대표는 역공에 메시지를 집중한다. 그게 10월17일 이후다. 새누리당은 “북한 때문에 존속하고” “군대도 안 갔으면서 종북 타령을 하며” “선거만 다가오면 색깔론을 펴는” “찌질한 정당”이라는 메시지를 쏟아내었다. ‘공을 상대 진영으로 넘기는’ 것으로 메시지의 목표가 이동했다. 한 참모는 “우리가 2012년 NLL 논란과 2013년 정상회담 회의록 논란에서 아무것도 안 배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3년의 ‘변호사 DNA 문재인’은 한 달이나 사실관계를 붙잡고 씨름하다가 전선을 엉망으로 헝클어버렸다. 대여 전략을 총괄해야 했던 김한길 당시 당 대표 주변 인사들은 문재인발 성명서가 나올 때마다 거의 진저리를 내다시피 했다. 송민순 회고록 정국이 시작되고, 2013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10월15일 첫 메시지가 나간 이후, 위기감을 느낀 주변 인사들이 메시지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는 조언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조 변경이 완전히 몸에 맞는 옷은 아니었다. 이번 논란이 불거진 직후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비서실장은 오히려 인권결의안 찬성 의견이었다”라고 엄호사격을 했다. 그런데 10월17일 기자들에게 이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은 문 전 대표는 “저는 솔직히 그 사실조차 기억이 잘 안 난다”라고 답했다. 문답의 맥락으로 보면,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까지도 확인하지 않으면서(그래서 “그 사실조차”라고 말한다) 사실관계 다툼에 최선을 다해 거리를 둔 셈이다.

하지만 이 “기억이 안 난다” 발언은 공격받을 최적의 타깃이 되었다.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이 발언을 질타했다. “기억이 안 난다”는, 듣는 이들이 ‘무언가 켕기는 자의 책임회피’를 떠올리는 말로, 정치인에게는 어떤 맥락에서든 금기나 다름없다. 사실관계를 외주 준다는 노선은 일종의 전략 기조다. 하지만 사실관계 이슈를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는 정치인의 역량 문제다.

바뀐 전략이 제대로 먹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작지 않은 헛발질도 나왔다. 하지만 적어도 기존 문재인발 메시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접근법이 시도된 것만은 분명하다. 문 전 대표는 2012년 대선 평가를 담은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민주 세력은 재집권을 위해서도 종북 프레임 극복 방법을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썼다. 본인이 제시한 숙제를 스스로 얼마나 열심히 풀었는지, 송민순 회고록 정국이 그를 시험대에 올렸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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