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의 역사이언 게이틀리 지음 박중서 옮김, 책세상 펴냄‘출근은 왜 우천 취소가 없을까.’ 매일 투덜대며 집을 나선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출퇴근은 괴롭다. 나만 겪는 일은 아니다. 전 세계 5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만원버스와 지옥철과 러시아워를 통과하는 대가로 돈을 번다.출퇴근의 불합리를 고발하는 책이라 생각하고 펼쳤다면 다소간의 배신감을 경험하게 된다. “집에 불을 피울 땔감을 구해오는 여정에 쓰는 시간을 결코 낭비나 헛수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며 통근이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 않다고 진단할 때는 괜히 화도 난다. 하지만 일터와 집 사이에 놓인 수많은 역사를 톺아내는 실력만은 탁월하다. 통근길에 얽힌 소소한 일화를 읽는 즐거움은 덤이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기시 마사히코 지음김경원 옮김, 이마 펴냄길 위의 돌멩이 중 아무거나 주워 몇십 분 동안 지그시 바라보는 이상한 버릇을 가진 소년이 있었다. 드넓은 지구에서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나에게 주워 올려진 이 돌. 소년은 그 무의미에 전율하고 감동했다. 그 소년은 자라서 사회학자가 된다. 역사적 자료를 뒤적이거나 사회학 이론으로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 그중에서도 그는 개인의 생활사를 듣는 방식(구술 조사)을 선호하는 학자다. 주로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다.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이야기를 모아 언어화한 것이다. 아무도 숨겨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던 부스러기 같은 삶의 이야기들이 그를 통해 생명을 얻었다.

중국을 보다마궈찬 지음, 강영희 옮김세종서적 펴냄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책의 저자 마궈찬과 인터뷰하면서 한 말이다. ‘미·중 양국이 각각 자국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면서 상호 보완해줄 이익을 찾고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이다. 이 책은 중국 최대 경제지 〈차이징(財經)〉의 주필 마궈찬이 국제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을 대상으로 중국의 앞날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대담집이다. 헨리 키신저, 무함마드 유누스,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인사들이 국제 관계, 정부의 역할, 중국 개혁, 정치 전환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펼쳐 보인다. 또 문화대혁명 등 지난 사건뿐 아니라 부정부패, 정치 민주화, 사회적 불평등, 교육 개혁 등 최근의 이슈와 문제점까지 다루고 있다.

좌파의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나로베르트 미지크 지음오공훈 옮김, 그러나 펴냄마르크스에서 푸코에 이르는 좌파의 무시무시했던 사상이 어떻게 ‘지금 여기’의 상식(공통 감각)이 되어버렸는지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예컨대 노동자의 임금을 쥐어짜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도 타격을 준다는 관점이 좌파만의 것인가? 혹은 좌파 교양인들만이 ‘타인과 나는 다르며 차이를 없애려는 시도는 사악하다’라는 주제로 지성을 과시하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좌파의 상식화로 세상은 그만큼 붉어졌고, ‘우리는 모두 마르크스주의자’인 것이다.“좌파 사상의 여전한 유용성을 설파”하는 책이지만, 살펴보면 ‘이데올로기 편집증’의 허무함을 토로하는 것에 가깝다. 오직 적합한 태도는 “의문을 품으며 전진하는 것”뿐이다.

마르셀 모스마르셀 푸르니에 지음변광배 옮김, 그린비 펴냄프랑스 인류학의 거두 마르셀 모스. 그는 철저한 실증주의자다. 수많은 사례 분석으로 인류 사회의 어떤 장면에서 희생과 이기심이 만나고, 증여와 교환이 겹치며, 종교적 의례와 경제적 선택이 교차하는지 서술했다. 이를 발전시켜 한 사회의 경제·종교·도덕·관습·법·예술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총체성’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하기도 했다.이 책은 1104쪽(주석 포함)에 걸쳐 학자이자 교육자·기자·사회주의 활동가로 숨 가쁘게 살아온 마르셀 모스의 삶을 그린다. 그림의 재료는 철저한 ‘팩트’다. 모스 개인의 생애를 통해 프랑스에서 사회학과 인류학이 태동하던 시대의 정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밀수 이야기사이먼 하비 지음, 김후 옮김예담아카이브 펴냄역사의 재미는 역설에 있다. 밀수는 엄연히 불법이지만, 시간이 지나 이 불법이 위대한 여정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16세기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악명 높은 해적이었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그의 밀수를 독려했다. 레이건 정부 당시 CIA와 미국 군부는 무기와 마약 밀수에 관여하기도 했다. 이율배반적인 밀수의 역사를 다루기 위해 저자는 15세기 대항해 시대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곳곳의 무역 현장을 조명한다. 금지된 무역품이 등장하니,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어두운 모습을 들춰보는 재미가 있다. 밀수가 좋든 나쁘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변화시켰고, 지금도 그 변화의 큰 축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책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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