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1993년에서 1996년까지 농구는 믿을 수 없는 인기를 누렸다.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1990년대 초 마이클 조던의 NBA(미국 프로농구협회), 드라마 〈마지막 승부〉, 만화 〈슬램덩크〉, 실업 농구 잡는 대학 농구를 볼 수 있었던 ‘농구대잔치’, 그 선수를 따르는 열성적인 오빠 부대, 농구 유니폼과 농구화를 패션 아이템으로 삼았던 풍경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농구는 누구나 친근하고 쉽게 접근하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스포츠였다.

농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코트에서 적은 인원으로 경기가 펼쳐진다. 그러다 보니 선수 개인의 역량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한 명 한 명의 기량이 경기 판도를 바꾼다. 지금이야 외국인 선수들이 주로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하지만, 전성기 때에는 국내 선수 한 명 한 명이 코트의 ‘아이돌 스타’였다.

무엇보다 농구대잔치가 인기였는데, 그 기저에는 나름 긴 역사를 만들어온 한국 농구가 있었다. 1930년대부터 한국에는 이미 볼만한 ‘더비 전’이 펼쳐졌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연고전(연세대-고려대)의 전신인 연보전(연희전문-보성전문)이다. 스포츠 부흥에 빠질 수 없는 민족주의도 한몫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 일본 농구선수권대회에서 보성과 연희가 일본 대학들을 누르고 나란히 결승에 진출해 번갈아 우승을 따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농구 대표팀이 8강에 진출하기까지 했다. 이후 여자 농구에 대한 인기도 높아졌다. 1978년에 나란히 남자 농구팀을 창단한 삼성과 현대 덕에, 1980년대에는 이미 대학과 실업팀에서 양강 체제가 만들어져 팬들을 끌어모았다.

ⓒ이우일 그림
이렇게 차려진 밥상의 주인공은 그 유명한 농구 대통령 허재다. 허재는 양강 체제를 부수며 등장한 선수였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아닌 중앙대를 택했고, 삼성과 현대가 아닌 기아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허재는 그간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가는 곳마다 새로운 역사를 썼다. 그런 허재가 군림하고 있던 농구계에 다시 대학 팀들이 도전하며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승부를 펼친 무대가 바로 농구대잔치다. 1988년부터 5년간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던 기아를 물리치고 1993~ 1994년 시즌에 연세대가 우승을 차지했다. 농구 전성기의 개막이었다. 문경은·이상민·서장훈·우지원의 연세대와 전희철·신기성·김병철·양희승·현주엽의 고려대는 대학 돌풍을 일으키며 실업 팀을 연파했다. 하지만 이듬해 우승은 다시 허재가 있는 기아에 돌아갔다. 농구 전성기는 도전과 응전, 새로운 신인과 강한 영웅들의 이야기로 쓰였다. 팬들의 열광과 환호는 당연했다.

‘제2의 농구 전성기’를 기다리며

지금이야 야구가 대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농구 팬들은 지치지도 않고 ‘제2의 전성기’를 기다린다. 2002년 김주성과 정훈, 2004년 양동근, 2007년엔 황금 세대라 불린 양희종과 김태술이 있었다. 지난해 허웅은 역대 올스타 최다 득표를 받으며 농구의 인기를 견인할 새로운 스타로 주목받았다. 위안 삼아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하지만 승부 조작 등 팬들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KBL(한국프로농구연맹) 20주년인 올 시즌은 좀 다른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까?

농구 저변 확대를 위해 구단들은 연고지 위주로 노력을 기울인다. 선수들은 지역 내 학교를 기습적으로 찾아가서 학생들과 농구를 하거나, 외국인 선수를 ‘원어민 교사’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팬들의 사연을 받아 치킨을 직접 배달하는 선수도 있다. 숨바꼭질 팬미팅을 열기도 하고, 선수단과 함께 글램핑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황금 세대로 꼽히는 이종현(모비스)·최준용(SK)·강상재(전자랜드) 선수가 제2의 전성기를 이끌 신인 기대주들이다. 좁은 코트에 꽉 들어찬 장신 선수들과, 그 사이에서 던져지고 튕겨지는 공을 따라가다 보면 잠시도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첫 번째 호각이 울리고 바닥에 찢기는 농구화 소리가 멈추는 고작 10분 동안, 한겨울 속 여름이 펼쳐진다. 이 자극적인 스포츠에 매료되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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