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론 하워드는 아홉 살이었다. 1964년 2월9일, 영국에서 온 네 젊은이가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역사적 순간,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은 미국인 7400만명 중 한 사람이었다. 거침없이 당당하게 노래하는 이 멋진 ‘형아’들에게 꼬마는 첫눈에 반했다. 3주 뒤 자신의 열 번째 생일 파티에 버섯 머리를 하고 나타난 론 하워드. 몇 날 며칠 부모님을 졸라 겨우 선물받은 ‘비틀스 가발’이었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꼬마는 커서 영화감독이 되었다. 히트작도 제법 많았다. 〈분노의 역류〉(1991), 〈아폴로 13〉 (1995) 등으로 주목받더니 마침내 〈뷰티풀 마인드〉(2001)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았다. 2013년 〈러시:더 라이벌〉로 또 한 번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서 박수받던 그에게 프로듀서 나이절 싱클레어가 물었다. “자네, 이번엔 비틀스 다큐를 만들어보는 건 어때?”


2003년에 처음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지겹도록 보고 또 본 공식 기록 영상 말고 팬들이 갖고 있는 영상을 모아 비틀스의 전성기를 재구성하자는 것. 8㎜ 필름 카메라로 홈무비를 찍는 유행이 막 시작되던 무렵에 전 세계를 돌며 공연했으니, 집집마다 꽤 많은 자료가 남아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제작진의 부름에 팬들이 응답했다. SNS로 보내온 개인 소장 영상에다 크고 작은 언론사 아카이브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미공개 희귀 영상을 합친 분량이 총 100시간 남짓. 10년에 걸쳐 어렵게 모은 이 ‘구슬 서 말’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줄 적임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비틀스의 버섯 머리 가발을 쓰고 열 번째 생일을 맞았던 론 하워드다. 그 말고 다른 적임자를 굳이 더 찾을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완성된 다큐멘터리 〈비틀스:에잇 데이즈 어 위크-투어링 이어즈〉에는 1966년까지의 비틀스가 담겨 있다. 1집 〈플리즈 플리즈 미(Please Please Me)〉(1963)에서 7집 〈리볼버(Revolver)〉(1966)에 이르는 4년 동안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부제가 말해주듯, 15개국 90개 도시를 돌며 ‘일주일이 8일(Eight Days A Week)’이라도 되는 양 정신없이 공연하던 비틀스의 ‘투어링 이어즈(touring years)’가 중심이다.

“나중엔 결국 복잡해졌지만 처음엔 모든 게 단순했어요.” 이제 노년에 접어든 폴 매카트니가 카메라 앞에서 회고하는 대로, 그저 ‘모든 게 단순’해서 아름다웠던 ‘처음’의 설레는 기록들로 가득하다. ‘아티스트’로 추앙받기 이전, ‘아이돌’로 사랑받던 비틀스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들이 생생하다. 팬들이 직접 기록한 영상마다 열광과 환희로 울부짖는 청춘들뿐이다. ‘비틀스의 미소’가 아니라 ‘비틀스로 인해 미소 짓는 청중’이 이 작품을 더욱 근사하고 특별하게 만들었다.

아홉 살의 론 하워드와 열네 살의 시고니 위버가

누군가의 카메라에 우연히 잡힌 청중 가운데 당시 열네 살 소녀였던 영화배우 시고니 위버도 있다. 왜 그렇게 다들 비틀스에 미쳐 날뛰었는지, 자기 또래에게 비틀스는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 현재의 시고니 위버가 회상한다. 배우 우피 골드버그가, 작가 겸 감독 리처드 커티스가, 가수 엘비스 코스텔로가 또한 저마다 비틀스를 증언한다.

이 작품은 뻔한 음악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즐거운 버디무비이면서 동시에 뭉클한 성장영화다. “1950년대 ‘이유 없는 반항’을 했던 청년들이 1960년대 (비틀스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반항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라던 〈레논 평전〉(신현준, 리더스하우스)의 문장을,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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