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0월1일 국군의 날 연설 이후로 전례 없는 대북 강경 발언을 연달아 쏟아냈다. 국군의 날 연설에서는 “북한 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놓겠다.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라”고 탈북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냈다.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10월13일에는 “북한 정권은 가혹한 공포정치로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총선 패배 이후 눈에 띄게 정국 주도권을 잃은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이슈로 여론 반전을 노린다는 관측이 많다. 대북 공세와는 별개로 ‘국내용’의 성격도 있다는 해석이다. 내년 대선을 안보 이슈로 치러야 지지 기반을 재결집할 수 있다는 셈법도 읽힌다.

전국 선거를 앞두고 북한 이슈를 꺼내드는 전략을 한국 보수 세력이 자주 보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북한 이슈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침몰 사건이 터졌지만, 선거 결과는 집권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패배였다. 그렇다고 여론이 대북 화해·협력을 온전히 지지하지도 않는다. 북한에 대한 여론 지형은 협력이냐 대결이냐의 양자택일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은 10월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북한 주민에게 탈북을 독려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서는 마치 여론이 양자택일을 한다고 가정하듯 선택지가 제한된다. 새누리당의 대북정책은 ‘대결 노선-북한 핵과 인권 중시-국제 압박 추구’ 패키지로 구성된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의 대북정책은 ‘협력 노선-대북 지원과 경제 교류 중시-한반도 긴장 완화 추구’라는 패키지로 꾸려진다. ‘북한 인권을 중시하는 협력론자’나 ‘한반도 긴장 완화를 원하는 압박론자’의 선택지는 없다. 여론은 복잡한데 정치 세력이 제안하는 대안은 단순하다. 이 격차가 북한 이슈에 대한 여론 반응을 예측하기 힘들게 만든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은 2007년부터 시작해서 올해로 10년째 상세한 통일 의식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통일평화연구원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매년 국민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다. 지난 9월29일에 2016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아래 〈표〉 참조). 이 결과를 보면, 북한 이슈를 보는 여론의 복잡성이 잘 드러난다.

여론은 북한 정권을 싫어한다. 추세도 명확하다. 가장 친밀하게 느끼는 국가로 북한을 꼽은 응답자는 2007년 24%에서 2016년 10.8%로 폭락했다. 반대로 가장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로 북한을 꼽은 응답자는 2007년 36.1%에서 2016년 66.7%로 폭증했다. 남북관계 악화에 북한 책임이 크다는 데 동의한 비율도 87.7%로 사실상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다.

북한에 대한 정서적 애착도 묽어지고 있다. 북한 축구대표팀과 미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에서 맞붙는다면 북한을 응원하겠다는 응답은 2007년 81%에서 2016년 46.9%로 떨어졌다. 이 수치가 절반 이하로 내려앉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북한 정권을 대화와 협력의 파트너로 보지도 않는다. “북한 정권이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상대인가?”라는 질문에 “불가능하다”라고 답한 응답자가 69.5%였다. 2007년 59.1%에 비해 10.4%포인트 오른 수치다.

여기까지 보면 여론은 압박과 봉쇄 강화를 일관되게 지지할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대상인가?”라는 질문에는, “협력 대상”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43.7%로 가장 많다. “지원 대상” 11.6%를 합치면, 북한을 긍정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절반을 넘는다. 부정적 대응에 해당하는 “경계 대상”은 21.6%, “적대 대상”은 14.8%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대북정책 만족도는 4년 내리 하락세다. 임기 첫해인 2013년 57.6%를 정점으로, 이후 2014년 53.7%, 2015년 50.4%, 2016년 45.1%로 꾸준히 떨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붕괴론’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을 고려하면, 이 역시 해석하기 까다로운 결과다. 북한을 싫어하고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여론 다수의 취향대로 정책을 펼쳤는데, 정책 만족도는 떨어졌다.

보수층도 상황 관리 필요성을 제기해

세부 데이터를 보면 해석은 더 까다로워진다. ‘대북정책 만족+보수층’에서, 최우선 대북정책으로 “교류 협력 및 대북 지원”을 꼽은 응답자가 2015년 대비 4.2%포인트 늘어난 18.2%였다. ‘대북정책 불만족+보수층’에서는 “평화협정 체결”이 2015년 대비 13.3%포인트 증가해서 25.6%로 나타났다. 보수층에서 교류와 평화 진작 노력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이다. 이 데이터를 발표한 장용석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보수층에서 최소한의 상황 관리 필요성을 제기하는” 흐름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한 온정주의를 승인하는 태도는 또 아니다.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 제기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응답자의 63.5%가 찬성했다. 이 주장은 10년치 조사에서 매년 찬성 응답 60%대를 유지하는 안정적 지지를 받는다.

여론의 결은 복잡하고 얼핏 모순적으로까지 보인다. 여론은 북한 정권을 싫어하며, 거듭된 ‘반칙’을 응징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와 동시에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을 협력 대상으로 보라고 요구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진보와 보수가 제안하는 정책 패키지가 둘 다 불안하다. 보수는 북한을 응징하지만 지나치게 긴장을 조성하고, 진보는 긴장을 완화하는 대신 북한 정권에 지나치게 유약하게 군다.

당파성이 강해서 각 정당의 패키지 전체에 동의하는 유권자는 자기 세력의 대북정책이 전면 관철될수록 환호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수파의 안정적 지지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10월14일 공개된 한국갤럽 주간 정례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한다고 답한 응답자 중 가장 많은 22%가 ‘대북 안보 정책’을 잘해서라고 답했다. 연이은 강경 발언에 핵심 지지층이 반응했다. 하지만 정작 국정 수행 지지도는 26%로 임기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북한 카드를 국내 정치용으로 쓰려면 과거보다 훨씬 더 섬세한 전략이 필요한 여론 지형이 구축됐다. 북한 문제가 여론에 끼치는 영향을 오래 추적해온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단기 현안에서는 강경한 응징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은 반면, 장기적 지향은 긴장 완화와 협력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여론이 진보와 보수 모두 기존 이분법에서 벗어나 더 업그레이드된 패키지를 제시할 것을 요구한다고도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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