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글 없는 그림책을 두려워합니다. 혹시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렵고, 누군가 물어볼까 봐 두렵습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에는 정답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작품에 하나의 주제만 있어야 합니다. 정답을 결정하는 주체는 내가 아닌 교과서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입니다. 내가 본 예술 작품의 의미도 내 마음대로 느끼고 즐기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림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편안히 보면 됩니다. 그냥 눈이 가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그림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시각언어를 해석할 능력과 그림으로 표현할 능력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시각언어가 문자언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다만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볼 뿐입니다.

〈거리에 핀 꽃〉은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빨간 후드티를 입은 소녀가 아빠의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배경과 사람들 모두 흑백인데 소녀의 후드티만 빨간색입니다. 아빠는 다른 손에 빵 봉지를 들고 있습니다. 때마침 전화가 걸려오고 아빠는 통화를 하느라 잠시 소녀의 손을 놓습니다. 그때 소녀의 눈에 자전거를 묶어놓은 쇠기둥 아래 핀 민들레꽃이 들어옵니다. 소녀는 노란 민들레꽃을 땁니다.

다채로운 색깔의 과일가게 앞에서 소녀는 민들레꽃 향기를 맡습니다. 아빠 곁에 서서 걷습니다. 아빠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소녀의 손을 잡습니다. 이번에는 갈라진 벽 틈에 핀 보랏빛 꽃이 소녀의 눈에 들어옵니다. 소녀는 보랏빛 꽃 몇 송이를 따서 향기를 맡습니다. 전차 정류장 근처에서, 잡화점 앞에서 아빠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소녀는 보도블록 틈 사이로 핀 꽃들을 따서 손안에 담습니다.

죽은 새의 가슴에 남겨진 소녀의 꽃

공원을 걷던 소녀가 잠시 아빠의 손을 놓습니다. 공원길에 새 한 마리가 죽어 있습니다. 소녀는 주저앉아 죽은 새를 내려다봅니다. 이윽고 소녀는 다시 일어나 아빠에게 달려갑니다. 아빠는 소녀를 향해 손을 뻗고 있습니다. 길 위에 남겨진 죽은 새의 가슴에는 소녀가 나누어준 꽃들이 있습니다.

〈거리에 핀 꽃〉 존아노 로슨 기획, 시드니 스미스 그림, 국민서관 펴냄
소녀는 아빠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계속해서 거리에 핀 꽃을 따고 또 그 꽃들을 나눠줍니다. 죽은 새에게도 주고, 공원 벤치에서 자고 있는 아저씨에게도 줍니다. 길에서 만난 개에게도 줍니다. 소녀는 왜 자꾸 거리에 핀 꽃을 딸까요? 소녀는 왜 그 꽃들을 자꾸 나눠줄까요? 도대체 소녀는 누구일까요?

혹시 거리에 핀 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보도블록 틈 사이로 자라나는 이름 모를 식물과 그 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도 아름다운 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 아름다운 꽃들은 길 위에서 죽기도 하고 벤치 위에 버려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입양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나눌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거리에 핀 꽃〉처럼 아름다운 아이들과 동물이 있습니다. 〈거리에 핀 꽃〉처럼 아름다운 아이들과 동물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인생이 글 없는 그림책입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