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게스트는 (어떤 청취자의 표현을 빌려) ‘목소리는 여신급’이라 불리는 신혜림 작가다. 내가 친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 친구의 목소리는 ‘크게 라디오를 켜고’ 꼭 한번 들어보길 추천한다. 뒤를 이어 내가 얘기할 땐 볼륨을 줄였다가 음악만 들어도 괜찮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영 사정이 좋지 못했다. 책 마감에 이런저런 일이 겹치며 일요일 오후가 되었는데도 어떤 곡을 가져갈지 결정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머리나 식힐 겸 봤던 영화 한 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는 〈어 롱 웨이 다운〉. 저 유명한 소설가 닉 혼비의 작품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를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를 보다가, 정말이지 몇 년 전에 감명 깊게 들었던 노래 ‘유스(Youth)’를 다시 만난 것이다.
참혹한 심정을 위로하는 가사
2013년 도터의 곡 ‘유스’에 매료된 후 자료를 찾아보면서 나는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제프 버클리의 저 위대한 앨범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며,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시절을 보냈다. 이 기억을 환기하는 일은 마흔 살이 된 지금도 참혹하다. 이 참혹한 심정을 이 곡의 몽환적인 멜로디와 다음의 가사로부터 위로받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여전히 피 흘리고 있다면 당신은 운 좋은 사람이지/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이라는 건 다 죽고 없어져버린 거니까/ 우리는 내면에 재미로 불을 지르고 있어/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실패했던 사랑의 이름들.”
이 곡이 지닌 아름다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영국의 작가 조지 맥도널드가 말했듯이 “아름다움은 슬픔과 언제나 붙어다니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예시로 이 곡을 들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슬픔이 있는 곳에 성지(聖地)가 있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격언에 이 노래만큼 잘 어울리는 곡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곡을 방송에서 소개한 뒤의 반응은 이랬다. “어이없는 영어 발음과 까불이 캐릭터와는 달리 음악은 정말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