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해 음악을 한 곡 소개한다. 과거에는 나 혼자 출연해 가요든, 팝이든, 월드 뮤직이든 가리지 않고 음악을 두 곡이나 선택했다. 함께하는 게스트가 있다 보니, 일단 한 곡으로 줄었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팝송으로만 카테고리를 한정해, 오늘도 나는 머리를 감싸며 과연 어떤 팝송을 틀어야 “이 친구가 방송에서 그저 시끄럽기만 한 건 아니구나”라는 독후감이 줄을 이을지 궁리한다. 이를테면 나름의 반전 매력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셈이다.

참고로 게스트는 (어떤 청취자의 표현을 빌려) ‘목소리는 여신급’이라 불리는 신혜림 작가다. 내가 친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 친구의 목소리는 ‘크게 라디오를 켜고’ 꼭 한번 들어보길 추천한다. 뒤를 이어 내가 얘기할 땐 볼륨을 줄였다가 음악만 들어도 괜찮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영 사정이 좋지 못했다. 책 마감에 이런저런 일이 겹치며 일요일 오후가 되었는데도 어떤 곡을 가져갈지 결정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머리나 식힐 겸 봤던 영화 한 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는 〈어 롱 웨이 다운〉. 저 유명한 소설가 닉 혼비의 작품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를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를 보다가, 정말이지 몇 년 전에 감명 깊게 들었던 노래 ‘유스(Youth)’를 다시 만난 것이다.

ⓒGoogle 갈무리영국 밴드 ‘도터’의 엘레나 톤라(가운데)에게 작곡이란 ‘삶을 감성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엘레나 톤라는 소녀 시절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천성적으로 소심한 성격은 학창 시절의 교우 관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집단 따돌림까지 당했던 소녀에게 위안이 되어준 건 음악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제프 버클리의 〈그레이스(Grace)〉 (1994)라는 걸작을 만나며 조금씩 뮤지션으로서의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도터(Daughter)라는 밴드를 결성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 소녀는 자신에게 작곡은 “삶을 감성적으로 다루는 것(deal emotionally with life)”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참혹한 심정을 위로하는 가사

2013년 도터의 곡 ‘유스’에 매료된 후 자료를 찾아보면서 나는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제프 버클리의 저 위대한 앨범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며,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시절을 보냈다. 이 기억을 환기하는 일은 마흔 살이 된 지금도 참혹하다. 이 참혹한 심정을 이 곡의 몽환적인 멜로디와 다음의 가사로부터 위로받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여전히 피 흘리고 있다면 당신은 운 좋은 사람이지/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이라는 건 다 죽고 없어져버린 거니까/ 우리는 내면에 재미로 불을 지르고 있어/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실패했던 사랑의 이름들.”

이 곡이 지닌 아름다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영국의 작가 조지 맥도널드가 말했듯이 “아름다움은 슬픔과 언제나 붙어다니는 것”이라면 그에 대한 예시로 이 곡을 들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슬픔이 있는 곳에 성지(聖地)가 있다”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격언에 이 노래만큼 잘 어울리는 곡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곡을 방송에서 소개한 뒤의 반응은 이랬다. “어이없는 영어 발음과 까불이 캐릭터와는 달리 음악은 정말 좋네요!”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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