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
강명관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숙종 30년(1704년) 유정기라는 양반이 아내 신태영과의 이혼을 예조에 신청했다. 남편에게는 물론이고 시부모에게도 욕설을 일삼고, 제주(祭酒)에 오물을 섞고, 밤에 홀로 바깥에 나갔다(당시 이는 ‘성적 오염’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이를 두고 무려 9년 동안 논쟁을 벌였다. 아내 신태영이 실제 그런 악행을 저질렀는지 여부, 남편 유정기가 알고 보니 첩을 정실로 들이기 위해 신태영을 법적으로 제거하고자 했다는 사실 따위는 큰 변수가 아니었다. 이미 신태영은 ‘희대의 악녀’가 되었다. 그녀를 처벌해 강상(綱常)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조선 사대부들은 기껏 잘 세워놓은 부부(夫婦) 사이 종속 관계가 흔들릴까 봐 걱정했다. 이런 식의 이혼 신청이 모두 받아들여질 경우 결과적으로 가부장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경국대전〉이니 〈대명률〉이니 법 조항을 두고 사대부들이 그들만의 갑론을박을 벌이는 동안, ‘악녀’ 신태영은 옥에 갇혀 신문을 당하면서 남성 사대부들의 기록 속에 희미하게 목소리를 남긴다. 저자 강명관은 바로 그 목소리에 주목했다.

지배층의 문서에 남겨진 피지배층의 저항은 매우 미약했지만 후대 사학자가 밑줄을 긋고 책을 쓸 만큼 강력했다. 신태영이 취한 전략은 남편의 악행을 고발하는 이른바 ‘물귀신 작전’ 같은 것이었는데, 실제로 당시 기가 막히게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혼 소송 이후 유정기의 가문은 완전히 몰락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말한다. “남성의 가부장제는 여성을 삼켰으나, 여성은 가시가 되어 목에 박혔다. 더 깊이 삼킬 수도, 쉽게 뱉을 수도 없었다. 남성에게도 그것은 불행이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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