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거부서쥘리앵 프레비외 지음, 정흥섭 옮김, 클 펴냄회사에 입사 지원서가 아닌 입사 거부서를 보낸 예술가가 있다. 그는 한 회사와의 채용 과정에서 면접관의 짓궂은 질문과 거만한 태도에 화가 나 입사 거부서를 쓰며 자신만의 복수를 감행한다.프랑스의 젊은 예술가인 저자는 회사가 낸 채용 공고에 담긴 문장이나 단어의 뜻을 따져가며 그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지적하는 편지를 보낸다. ‘친구 같은 회사’에서 불법적으로 쏟아낸 오염 폐수가 인간에게 얼마만큼 치명적인지를 따지고, ‘능수능란한, 독립적인, 의욕적인, 조직 관리가 능한,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력자’를 뽑는 회사에,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책은 7년간 회사 1000여 곳에 보낸 편지와 그에 대한 회사의 답장을 모았다.

살아 있는 것의 경제학우석훈 지음, 새로운현재 펴냄울창한 숲은 보기에 아름다울지언정 위태롭다. 키 큰 나무가 너무 들어차면 하늘이 막힌다. 그 아래 햇빛을 받지 못한 어린 나무들은 말라죽고 병충해에도 취약해진다. 저자는 지금의 한국 경제가 이처럼 클라이맥스를 지나 늙어가는 숲과 같다고 진단한다. 해법은? 간벌을 하든, 산불을 지르든 어린 나무들의 숨통을 터주는 수밖에 없다. 〈88만원 세대〉를 쓴 지 10년, 저자는 더 이상 함부로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사이 아버지가 된 그가 긴급히 호소하는 것은 에너지·농업 등 공공경제 부문과 청년 노동의 결합, 그리고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다. 이것이 왜 미래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해법인지 설명하는 저자의 관점이 독특하다.

빙하는 움직인다송민순 지음, 창비 펴냄한국에서 공직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쓴 기록물은 드물다. ‘비핵화와 통일 외교의 현장’이라는 부제를 단 전직 외교통상부 장관이 쓴 책이라 눈에 띈다. 송 전 장관은 직업 외교관으로서 30여 년간 한반도 국제정치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주역인 그는 당시 상황을 세밀하게 기록했다. 협상과 외교의 살아 있는 실무 사례를 배울 수 있다.송 전 장관은 이 책에서 북핵 협상을 우리 시각으로 기술했다. 저자는 ‘시간과 시간 사이를 엮어 미래로 가는 지혜를 찾는 것’이라고 책을 펴낸 이유를 밝혔다. 그는 또 ‘제재는 게으른 사람의 외교정책 수단이다. 교류와 접촉 등의 노력으로 한반도의 빙하는 움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승효상 지음, 돌베개 펴냄화려한 건물 숲이 아닌, 좁고 낡은 골목에서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다. 건축가 승효상 또한 도시건축론을 펼치며 도시민의 삶이 담긴 공간에 주목한다. ‘건축에서 공간이 본질인 것처럼 도시에서도 좀 더 중요한 것은 결코 몇 낱 기념비적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로 둘러싸인 공공영역’이라고 지적한다. 보이지 않는 건축을 뜻하는 말이다.〈경향신문〉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을 모아 다듬었지만, 원로 건축가의 책은 낱개의 칼럼으로 보던 때와는 또 다른 미덕을 자랑한다. ‘인간은 건축 안에 살 수밖에 없기에 건축은 삶을 조직하는 일이다’라는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사는 ‘지금 현재’ 내 곁을 돌아보게 된다.

니나 내나이동은·정이용 지음, 애니북스 펴냄‘나’와 타인 사이에는 숨 쉴 거리와 공간이 필요한 법. 그러나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가족의 이름으로’ 그 거리와 공간을 침범하기 일쑤다. 이 사람들과 대체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까.〈니나 내나〉가 그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환절기〉 〈당신의 부탁〉에 이은 이동은·정이용 작가의 세 번째 그래픽노블이다. 이번에도 ‘가족물’이다. 다른 남자와 눈 맞아 도망간 엄마에게 17년 만에 엽서가 도착한다. 엄마는 몸만 가지 않았다. 동생의 사망 보험금도 함께 들고 갔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엄마를 찾으러 삼 남매가 길을 나선다. 이 강제 가족 여행기를 따라가다 보면 남이지만 또 결국 ‘나’이기 때문에 미워할 수만은 없는 가족의 맨얼굴을 만나게 된다.

크로스 토크 (전 2권)코니 윌리스 지음, 최세진 옮김 아작 펴냄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서, 우리는 때로 답답하다. 그럴 때 ‘EED 수술(텔레파시를 가능하게 하는 뇌수술)’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로맨틱 SF 소설 〈크로스 토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연인 브리디와 트렌트가 EED 수술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소설 속에서 세기의 연인들이 앞다퉈 효과를 간증하는 이 수술은, 연인 간의 정서적 소통을 강화해준다.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알면 소통할 수 있는 걸까. 소설 속 브리디의 괴짜 친구 C. B. 슈워츠가 브리디에게 한 말을 다시 새겨보자. ‘히틀러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생각을 알게 된다고 해서 네가 그 인간을 그전보다 좋아하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