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나는 캐나다에 있었다. 제2회 국제사회적경제협의회(GSEF)가 몬트리올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33명의 시장이 한입으로 “사회적 경제가 살길”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몬트리올의 추억은 두 개 화면으로 남았다.

시차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켠 CNN에서는 24시간 내내 시시콜콜한 미국 대선 얘기만 내보냈다. 특히 처음으로 트럼프가 클린턴을 앞서기 시작한 CNN의 자체 여론조사가 주 메뉴였다. 혹시나 9월6일 항저우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소식이 나올까, 멍한 상태에서도 화면을 주시했지만 단 한 컷도 나오지 않았다. 닷새째, 드디어 한국 뉴스가 첫머리를 장식했다. ‘북한 5차 핵실험(추정)’, 우리에게도 익숙한 중년 아나운서의 북한 말투가 생생했다. 멀리서 본 한반도는 전쟁 분위기가 역력했다.

몬트리올 공항의 TV 화면에 또 한 번, 한국이 잡혔다. 첫 장면부터 섬뜩했다. 휴대전화 배터리에 불이 붙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왔고, 이어서 그 화면을 촬영한 중남미 사람이 상황을 설명했다. 중간 중간 삼성 갤럭시 노트7의 성능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 뒤, 리콜 장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뉴스가 아니라 삼성의 광고였다. 캐나다에서도 처음 방송되었는지, 에어캐나다의 스튜어디스들이 웅성거렸다. “우리 크루 중 누가 갤럭시 쓰지?” 아마 한국에서는 이런 광고가 나오지 않겠지만 전 세계에 방영됐으리라. 이렇게 솔직한 광고를 하고도 삼성이 옛 위용을 자랑할 수 있을까? 한국의 내셔널 챔피언이 강력한 훅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다.

 

ⓒ시사IN 조남진9월2일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이 갤럭시 노트7 전량 리콜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까? 정부와 한국은행이 공식 전망을 내놓지 않았지만 내년 경제를 조금 앞당겨 들여다본다. 먼저 지난해 말 정부의 2016년 전망과, 요즘 나온 민간 연구소와 국회의 예측을 비교해보자.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3.1%로 전망했는데, 요즘 나온 2016년 예측(2분기의 실적치를 반영했으므로 훨씬 정확할 것이다)은 LG경제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원 2.5%, 한국경제연구원 2.3%다. 0.6∼0.8%포인트 낮다. 11조원의 대규모 추경, 떠들썩한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감안해도 그렇다는 얘기다.

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지금도 올해 2.8%를 달성할 수 있고 내년에는 3.0%로 더 좋아질 거라고 공언한다.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은 2.6%, LG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은 2.2%로 훨씬 비관적이다. 과거 민간 연구소들은 대체로 한국은행이나 KDI와 비슷한 전망치를 내놓았는데 그보다 낮은 전망을 한 것이다.

우리 수출이 비집고 들어갈 구멍은 보이지 않고…

정부는 왜 이렇게 틀리는 걸까? 지난해의 내 예측대로 설비투자였다. 정부는 4.4%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민간 연구소는 -1.7~-3.4%로 예측했다. 약 7%포인트 차이가 났고 여기서 GDP 성장률을 약 1%포인트 깎아먹었다. 정부가 2%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수출은 -7.1%(LG경제연구원), -5.2%(현대경제연구원), 1%(한국경제연구원)로 나타났다. 오직 건설투자(정부 전망 4.3%)만 민간의 전망치(6.7~7.6%)가 웃돌았다.

이례적으로 정부가 낮게 전망(2.4%)한 소비증가율은 역시 조금 더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즉 한국 경제의 양대 기관차였던 수출과 설비투자의 엔진은 꺼졌고 오직 정부가 밀어붙인 건설, 특히 주택 건설이 성장률을 2% 초반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나는 지난해 말 1.8%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올해에도 주택 건설이 이렇게 늘어나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소비가 시들해지고 유럽은 이제 본격적인 브렉시트 협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 것이다. 중국은 독야청청 6% 남짓한 성장률을 유지하겠지만 일본의 성장은 다시 0%대를 향하고 있다. 우리 수출이 비집고 들어갈 구멍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가계부채는 소비를 더욱 억누를 것이고 주택 건설이 앞으로도 계속 증가하리라고 믿는 건 무리다. 이제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갈 중화학공업에서 투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리도 없다. 결국 내년은 더 나쁜 성과를 거둘 테고 지금도 확연한 절망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질 것이다.

 

 

기자명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