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러쿵저러쿵 평론가들이 늘어놓는 얘기를. 아주 가끔은,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이블 데드〉(2013)를 만든 감독 페데 알바레즈가 그랬다. ‘자네 영화에는 피가 너무 많이 나오네.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잔재주도 너무 많이 부리고, 전체적인 만듦새가 나쁘진 않지만 그래봐야 창작물이 아니라 유명한 원작의 리메이크에 불과하지 않은가….’ 역시나 이러쿵저러쿵 트집 잡는 평론가들이 많았지만, 그는 공연히 되트집을 잡는 대신 곰곰이 되새겨보기로 마음먹었다.

피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다음 영화에선 피를 조금만 보여주지. 오싹오싹 ‘무서운 영화’가 아니라 깜짝깜짝 ‘놀라는 영화’였을 뿐이라고? 좋아, 다음 영화에선 제대로 오금이 저리게 만들어주겠어. 그나마 내 〈이블 데드〉가 괜찮았던 건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1981)가 워낙 좋아서다? 두고 봐, 다음 영화는 반드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선택할 테야! 다짐하고 또 다짐한 뒤 내놓은 페데 알바레즈 감독의 바로 그 ‘다음 영화’ 〈맨 인 더 다크〉의 얘기는 이렇다.


머니(다니엘 소바토)는 껄렁껄렁하다. 손에 돈 좀 쥘 수 있다면 좀도둑질도 마다하지 않는 청년이다. 머니 친구 로키(제인 레비)에겐 돌봐야 할 동생이 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어린 여동생을 키우려니 하루하루가 녹록하지 않은 여자다. 머니와 로키의 친구 알렉스(딜런 미네트)가 두 사람과 자주 어울려 다닌다. 셋은 그동안 소소한 빈집털이로 용돈 좀 벌었다. 그러나 이 지긋지긋한 디트로이트를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새 출발을 하고픈 로키를 위해 어서 목돈을 마련해야 할 때. 마침 솔깃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자동차 사고로 딸을 잃은 뒤 거액의 보상금을 받은 퇴역 군인이 외딴 집에 혼자 산다는 이야기, 그 많은 돈을 은행이 아니라 자기 집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 집주인이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은 마당에 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다. 머니 말마따나 “앞 못 보는 노인이 혼자 사는 집을 터는 건 거저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느 불 꺼진 밤, 손쉬운 성공을 확신하며 남자의 집에 숨어든 세 사람. 아뿔싸, 그들이 틀렸다.

세 젊은이가 맞는 생애 가장 끔찍한 밤

시각을 잃은 대신 나머지 감각이 남보다 예리해진 남자였다. 군대에서 무시무시한 생존 기술을 익힌 노인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비를 모르는 냉혈한. 이제부터 세 젊은이는 그들 생애 가장 끔찍한 밤을 맞을 것이다.

〈맨 인 더 다크〉는 흔해빠진 ‘피칠갑’ 살인마 영화가 아니다. ‘넘치는 피’가 아니라 ‘사라진 빛’으로 관객의 숨통을 조이는, 보기 드물게 ‘쫄깃한’ 스릴러다. 어둠 속에서 상대의 숨소리만으로 위치를 간파해내는 노인을 피해 그들이 입을 틀어막고 숨을 참을 때, 관객도 덩달아 숨을 멈추고 침만 삼키게 되는 공포 영화다. 어린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밑바닥 삶을 탈출하고픈 주인공 로키의 편에 섰던 관객이, 나름의 아픈 사연 때문에 악에 받쳐 돌진하는 노인 또한 안쓰러워하게 만드는 아주 영리하고 입체적인 드라마이기도 하다.

식상할 대로 식상해진 스릴러 장르에서도 여전히 창의적인 신작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멋지게 증명해 보인 영화 〈맨 인 더 다크〉. 시나리오, 연기, 연출, 촬영, 조명, 미술, 음향. 뭐 하나 허투루 매만진 구석이 없다. 남의 오래전 영화를 리메이크하며 데뷔한 신인 감독이, 자신의 두 번째 영화를 남들이 앞다투어 리메이크하고 싶어 할 수작으로 만들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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