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드라마’라는 단어를 들을 때 누구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가? 누군가는 서영명(SBS 〈이 여자가 사는 법〉, MBC 〈밥 줘〉 등)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문영남(KBS 〈소문난 칠공주〉, SBS 〈조강지처 클럽〉)을 떠올리겠지만, 그럼에도 이 장르를 상징하는 지배적인 이름은 역시 임성한이다. 1998년 MBC 〈보고 또 보고〉로 스타 작가 반열에 들어선 뒤 2015년 MBC 〈압구정 백야〉로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17년간 임성한은 매번 허를 찌르는 소재를 들고 와 보는 이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겹사돈(〈보고 또 보고〉), 4명의 여자에게서 나온 6명의 이복 남매(〈온달 왕자들〉), 가정을 버리고 간 부모에게 복수를 꾀하는 딸(〈인어 아가씨〉 〈압구정 백야〉), 무녀(〈왕꽃 선녀님〉, 이상 MBC), 자신이 낳은 뒤 떠나버린 친딸을 자신이 키운 의붓아들과 결혼시키려는 어머니(〈하늘이시여〉), 21세기를 배경으로 한 기생 이야기(〈신기생뎐〉, 이상 SBS) 등 귀를 의심케 하는 소재 선정과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도발적인 서사 전개로 임성한은 ‘욕하면서도 보는 드라마’라는 막장 드라마의 장르적 설정을 완성했다.

임성한 작가는 〈보고 또 보고〉(왼쪽)와 〈온달 왕자들〉(오른쪽) 등 드라마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끌어내렸다. 그의 작품에서 아버지는 무능하거나 무책임하거나 부재중이다.
그의 작품이 처음부터 막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방영 당시 각종 언론에서 관련 민법 조항들을 검토할 정도로 논란이 됐던 소재지만, 〈보고 또 보고〉의 겹사돈 설정은 주인공들이 행복을 향해 가는 것을 다소 지연시키는 장애물 정도로 활용되었을 뿐 특별히 반인륜적이거나 패륜적인 설정은 아니었다. 〈온달 왕자들〉 또한 어쨌거나 이복남매 여섯 명이 난관을 헤쳐 나가며 행복해지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었기에 큰 논란이나 저항 없이 방영되었다. 임성한의 후기작들을 ‘막장’이라는 키워드로 묶는 것은 가능하지만, 전기작들까지 같은 키워드로 함께 묶는 건 다소 억울한 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보고 또 보고〉에서 〈압구정 백야〉까지 임성한의 세계를 관통하는 단일한 키워드를 하나 꼽자면, ‘아버지의 소멸’일 것이다.

임성한 작가
기존 홈드라마에서 가부장이 가족 내 경제적·도덕적 중심으로 기능했던 것과 달리, 임성한 드라마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희미하기 그지없다.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보고 또 보고〉의 두 아버지를 보자. 정 사장(정욱)은 매번 사업에 실패하는 탓에 복덕방을 운영하는 아내 배정자 여사(김창숙)에게 가족의 생계와 가정의 실권을 맡겼다. 사돈집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독립하고 싶었던 박기풍(허준호)은 아버지(이순재)가 아니라 가정 내의 실권자인 할머니(사미자)의 손을 빌려 오피스텔을 얻는다. 〈온달 왕자들〉의 여재만 사장(변희봉)은 어떤가? 병적인 여성편력으로 배다른 남매 여섯을 남겨두고는 회사가 부도나자 빚만 남긴 채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버린다. ‘나쁜 가부장’ 서사의 끝을 보여준 〈인어 아가씨〉쯤 가면 아버지는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 은진섭(박근형)은 아내 한경혜(정영숙)의 친구인 탤런트 심수정(한혜숙)과 불륜을 저지르고, 그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가정을 버리고 떠난다. 이혼의 충격이었는지 당시 경혜의 뱃속에 있던 세영은 자폐 증세를 가지고 태어났고, 열세 살 무렵 행방불명되었다가 시신으로 돌아온다. 경혜는 그 충격으로 눈이 멀고, 또 다른 딸 은아리영(장서희)은 이 모든 것을 진섭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복수를 감행한다. 〈왕꽃 선녀님〉의 문희강(한진희)은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고,
(맨 위부터)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MBC 〈인어 아가씨〉, SBS 〈하늘이시여〉, MBC 〈왕꽃 선녀님〉, MBC 〈압구정 백야〉의 한 장면.
〈하늘이시여〉의 이홍파(임채무) 또한 어머니의 반대를 꺾지 못해 연인 지영선(한혜숙)이 임신 중인 것도 모른 채 연인을 포기한다. 임성한의 세계에서 아버지들은 무능하거나 무책임하거나 부재중이다.

반동적인 ‘임성한 월드’를 구축하다

여기서 임성한이 스타덤에 오른 〈보고 또 보고〉가 방영된 1998년이란 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격적인 IMF 구제금융 체제에 돌입하며 많은 아버지들이 직장을 잃었다. 다닐 회사가 아예 사라져버린 이들도 있었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대규모 정리해고를 감행했다. 가장의 경제활동에 기대 지탱되던 전통적인 가족 구조가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가장에게 교육과 복지, 경제정책에 대한 발언권을 부여하고 가족 전체의 가치관을 가풍이란 이름으로 통제할 절대 권력을 쥐여준 가부장제의 종언을 의미했다. 살아남기 위해 맞벌이가 필수인 상황에서 여성들의 경제활동 진출은 적극 장려되기 시작했고, 생계를 위해 다양한 갈등을 봉합하고 살던 가족들은 봉합의 유일한 핑계인 생계 문제가 파탄에 이르자 뒤돌아보지 않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아버지의 희생과 부성애를 강조한 소설 〈아버지〉(김정현 지음, 1996)나 〈가시고기〉(조창인 지음, 2000) 등이 불티나게 팔린 것은 의미심장한 현상이다. 이런 책의 주요 구매자인 중년 남성들은 극중 시한부 인생임을 숨긴 채 가족들의 외면과 냉대를 견뎌내는 정수(〈아버지〉)나 아들에게 모든 걸 바치고 장렬히 산화하는 호연(〈가시고기〉) 같은 희생적이고 신화적인 아버지상에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가족 내에서 자신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만과 공포를 달랬다. 반면 젊은 세대들은 현실 세계에서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는 아버지와의 소통을 이러한 소설을 통해 대리 충족했다. 모두가 현실 세계에서는 사라져가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 또는 존경할 만한 아버지상을 가상의 세계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책임한 아버지를 가정 내 불행과 파탄을 불러오는 장본인으로 지목하는 임성한의 드라마는 분명 도발적인 면이 있었다.

남들이 애써 전통적인 가정상을 복원하려는 헌신적인 아버지를 그리려고 할 때, 임성한은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책임 추궁을 작품 속에 일관되게 녹여내어 보는 이들을 충격으로 몰고 갔다. 임성한의 작품이 ‘욕하면서도 보는’ 드라마가 되어 다채널 시대에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은 사실 여기에 있었다. 무책임한 가부장을 악의 근원으로 설정해 권위로부터 끌어내려 패대기치는 서사 전개는 내심 사람들 마음속에 근지러운 구석을 긁어주는 힘이 있었다.

임성한의 세계가 진정 문제적인 이유는 그녀가 가부장의 권위를 패대기친다는 점에 있지 않다. 임성한의 세계는 이른바 정상 가족 모델이 빚어내는 수많은 문제를 전시해두고는, 아무것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백마 타고 등장한 선량한 가부장의 힘으로 행복해지는 결말을 그린다. 바로 이런 점에서 문제적이다. ‘나쁜’ 가부장이 남긴 상처를 극복한 주인공은 ‘착한’ 가부장의 그늘 아래 들어가 시댁 식구들에게 어필하면서 어르신들의 마음에 드는 흡족한 며느리상으로 인정받음으로써 행복을 쟁취한다. 명백한 구조의 한계를 졸지에 개인 성향의 문제로 치환한 채 더 보수적인 세계관으로 마무리 짓는 ‘임성한 월드’는 반동적이었고, 그 반동의 힘으로 중년 이상의 시청자들을 설득했다.

기자명 이승한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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