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기막힌 노릇이다. 아버지는 6·25 때 징집돼 생사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고 6년 넘게 군에서 복무했다. 나는 3년 가깝게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리가 왕왕 울리는 서부전선 철책 근처에서 근무했다. 첫째 아들은 공군에 지원해 2년간 백령도에서 제대하는 순간까지 북쪽에서 포탄이 날아올까 봐 전전긍긍했다. 둘째 녀석도 나이가 차서 입대를 앞둔 형편이다. 우리 3대가 군에 바치는 세월이 13년이 넘는 셈이다. 신의주 출신인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끝내 북에 남겨놓은 친지들 얼굴 한번 못 보고 돌아가신 지 오래다.

제국의 귀족도 아닌 주제에 대를 이어 병역 의무를 지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은 끝나지 않았던가. 젊었을 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언제 적화 야욕에 불타는 북한이 도발해올지 모르는 비상 상황이라며, 국민 모두 딴생각 말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하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다. 지금은 아들 녀석들이, 화내기도 지친 아버지 곁에서 그 대통령의 딸이 그 집안 특유의 말투로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걸 들으며 진절머리를 낸다. 식민 지배 전과도, 전쟁 책임도 없는 나라의 국민이 어쩌다 이런 고통을 겪게 되었을까.

ⓒ한성원 그림
우리 사회에서 잘못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마는 그중에서도 대북정책은 최악이다. 역사와 전통이 유구한 ‘뻘짓’의 긴 행진이다. 우리가 6·25 끝난 뒤 60년 넘게 국방비·정보비·공작비에 쏟아부은 돈이 대체 얼마일까. 아마도 웬만한 나라를 살리고도 남을 만한 돈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킬 비용을 줄이고 노후의 안락을 희생하고 퍼부은 돈이다. 부끄럽게도 자폐아나 미숙아, 그리고 노인과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가 살기에 힘든 환경을 애써 외면하면서, 복지를 사치인 줄로만 알고 살았던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동안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개가(잘나가는 집 자식 상당수를 빼고)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군에서 청춘을 보내야만 했다. 자, 그 결과를 한번 보자.

박근혜 대통령이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한반도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북한은 5차 핵실험을 마쳤고, 수차례 잠수함 발사를 포함한 장거리·탄도미사일 요격 실험을 마쳤다. 민간 분야라고 형편이 나을 게 없다. 어렵게 개시했던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고 개성공단은 문을 닫았다. 이제 서로 재해를 입어도 구호품 한 상자 보내지 않는다. 문화·학술 교류도 모두 끊겼다. 남과 북의 정권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들던 이산가족 상봉 카드도 빛이 바랬다. 오래지 않아 실향민은 모두 자연사하고 말 것이다. 이 지구상 어디에 가족과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 못하는 곳이 또 있을까. IS가 점령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도 힘들지만 가족끼리 통화는 가능하다.

그동안 통일정책에서는 이른바 포용론과 호혜론이 팽팽히 맞서왔다. 쉽게 말해 상대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게 옳으냐 아니냐는 논란이다. 햇볕론과 퍼주기의 싸움이다. 학자나 전문가끼리도 양쪽은 포용을 모르는 다툼을 벌여왔다. 하지만 이제 흰 고양이도 검은 고양이도 쥐를 잡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역대 정권의 지도자들과 대북정책 담당자들은 적어도 이산가족에게는 백배사죄해야 옳다.

정권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얻은 게 아주 없지는 않다. 먼저 냉탕이든 온탕이든 상대가 예측하기 쉽게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과 북이 접촉하는 횟수가 잦고 시간이 길어야 분위기가 좋아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대화가 멈추면 총성이 울리기 마련이다. 대북관계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른 끝에 건진 소중한 경험이라면 그것이 거의 전부이다.

그런 잣대로 보자면 박근혜 정부는 역대 정권 중에서도 최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발표한 대선 공약에서 북한과의 협상 다각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관계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누가 보더라도 포용 쪽으로 기운 정책이었다. 독일을 순방 중이던 2014년 3월에는 독일을 롤모델로 삼아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을 담은 일명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군인과 주민을 향해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호혜론을 넘어 흡수통일론으로 급속히 엎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북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흥분했는데, 북에서는 적어도 박 대통령이 임기 중에 자신들과는 진솔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책의 근본을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대화 가능성마저 닫아건 꼴이다. 역대 정권 중 정책 방향을 가장 자주 바꾸고 대북 협상 창구를 폐쇄해 1994년 전쟁 직전의 위기를 초래했던 김영삼 정부보다도 거친 행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관료들의 언행도 가볍기 이를 데 없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이 정부의 군 관계자들은 공공연하게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거론했다. 거기에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과 지도부를 겨냥한 이른바 ‘참수 공격’ 훈련을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이에 맞서는 북한의 언사도 험악해져만 간다. 북한의 관영 매체는 올해 3월에 지도자가 청와대를 공격하는 시뮬레이션을 참관하고 나오는 영상을 내보냈다. 지난달 북한 군부는 서울을 재로 만들고, 도발 기지인 괌을 지구 표면에서 쓸어버리겠다고 으르렁댔다. 과거에도 서로를 향해 과격한 말이 오간 적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구체적이었던 적은 없다. 서로 사용하는 어휘만 보면 이미 준전시 상황이다. 지난주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민주당 에드 마키 상원의원은 “만약 북한 군부가 남한이 자기네 지도부를 죽이기 위한 선제공격을 할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면 김정은에게 핵무기 통제권을 넘기라고 압력을 가할 우려가 있다. 그들은 핵을 쓰지 않으면 잃을 수도 있다(use or lost)는 쓸데없는 강박관념에 몰릴 수 있다”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한반도에서 대북정책이 번번이 힘을 쓰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한반도의 평화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각자 정권의 안보라는 불순한 목적에 매달리는 경향이 짙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모두 남북의 긴장 관계를 국내 정치의 돌파구로 삼으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쪽에는 다른 사정도 있지 않은가 싶어서 걱정스럽다. 어떤 이유에서건 지도부가 곧 북한이 무너지리라는 확신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실익도 없는 말을 그토록 경솔하게 내뱉는 이유를 찾기 힘들다. 굳이 전문가의 눈을 빌리지 않더라도 3대 세습을 강행한 북한 정권은 여러모로 위태로워 보인다. 그렇더라도 북한이 무너질 날이 가까웠다고 속단하기는 어렵다. 예전에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모두 빗나가지 않았던가. 한국 정부는 워싱턴의 전문가들 의견대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

당장 내일 북한 체제가 해체된다 하더라도 모두 자유의 품안에 안기라든가, 통일은 대박이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월 부록에서 ‘만약 북한 체제가 갑자기 무너진다면’이라는 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일단 총을 가진 자들이 음식과 권위를 장악할 것이다. 싸움이 벌어지면 피란민은 지뢰가 많고 벽이 높은 휴전선 쪽보다는 중국과의 국경 쪽으로 몰릴 것이다. 정치범 수만명을 감시하는 경비병의 총구가 내부로 향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체제의 범죄 흔적을 지우라는 명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한국은 강하게 개입하기를 원할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증오하는 미국인의 얼굴을 뒤에 숨기고 일단 변방의 핵시설을 확보한 뒤 추이를 지켜볼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처럼 북한을 한국과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견제할 완충장치로 삼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심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 일가에서 누구를 대리인으로 삼을지, 그동안 중국이 보호해온 북한의 군과 당 출신 망명객 중 누구를 중용해야 할지 계산이 복잡할 것이다. 혹시 감옥에 가거나 특권을 잃을지 몰라 불안에 빠진, 70만에 달하는 군의 움직임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들은 외부에서 간섭이 들어오는 걸 극도로 경계해 내란이나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우리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국경지대가 난민촌화되는 걸 꺼리고, 한국이 적대국이 되리라는 우려를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한국 중심의 통일을 용인하리라고 보지만 지나친 낙관일 수 있다.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병사 수십만명을 잃은 핵심 이해 당사국이다.

대북정책은 방향이 아니라 깊이의 문제다

독일의 예에 비춰볼 때 통일이 과연 한국이나 북한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냐는 의문도 가질 수 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서독은 통일을 꿈도 꾸지 않았다. 콜 정부 수뇌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 내부에서는 장벽이 무너지는 데 5~10년은 더 걸릴 줄 알았다. 동독 사람들도 어렴풋하게 연방제 정도를 머릿속에 그렸다. 2차 세계대전 연합국 4개국 지도자 중 영국의 대처, 프랑스의 미테랑,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을 반대했다. 미국의 조지 부시만이 찬성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그들을 두 번이나 두들겨 팼는데 또 돌아오는군, 하며 투덜댔다.

하지만 역사는 독일의 통일을 원했다. 동독인이 하루에도 수천명씩 서독으로 향하면서 강대국들은 중부 유럽의 불안정화를 우려했다. 통일 독일의 중립화, 곧 핀란드화를 주장했던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마지막으로 의견을 굽히면서 통독은 급물살을 탔다. 서독은 D마르크와 동독 돈을 1대1로 교환해주는 관대한 조치를 내렸다. 동독을 재건하느라 서독의 국가 부채는 급속도로 늘었다. 북한은 과거 동독보다 훨씬 사정이 열악해 한국이 서독 같은 조처를 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대북정책에서 필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깊이가 아닐까. 그동안 노선을 놓고는 신물 나게 싸워오지 않았던가.

참고한 활자: 〈이코노미스트〉 〈워싱턴 포스트〉 〈인디펜던트〉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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