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6월9일 대한민국 제3대 국회가 열렸어. 이때 당선된 국회의원 가운데에는 역사적 인물이 많다. 이를테면 너도 잘 아는 ‘장군의 아들’이자 종로통 깡패 출신 김두한이 당선되어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고, 후일 한국 정치의 거목이 되지만 당시로서는 나이 서른도 채 안 된 ‘애송이’ 의원 김영삼도 국회에 입성했어. 이들을 포함한 국회의원 203명은 기운차게 의정 활동을 시작했지. 그러나 이 국회는 치욕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남게 돼.

제3대 국회가 직면한 과제는 개헌 문제였어. 당시 헌법은 대통령의 중임을 제한하고 있었는데 이승만 대통령을 등에 업은 자유당은 어떻게 해서든 이 헌법을 뜯어고치려 했고 야당 의원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야 했던 거야. 몇 달 뒤 마침내 개헌안이 표결에 부쳐지게 된다. 개헌안의 핵심은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3선 금지 조항 삭제’였지.

자유당은 자당의 의석과 기타 무소속 등을 끌어모아 의석의 3분의 2(136표)를 채웠다고 자신했는데 그만 딱 1표의 오차가 나버렸어. 재적 의원 203명, 재석 의원 202명 가운데 찬성은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 딱 1표 차이로 부결된 거야. 그런데 당일 자유당 간부회의에서 기상천외한 주장이 튀어나왔단다.

ⓒWikimedia이승만 대통령 장기 집권을 위해 사사오입 파동을 일으킨 자유당에 항의하는 야당 의원들.
계산기를 두들겨보렴.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33명이야. 그래서 3분의 2 이상이란 136표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갑자기 사사오입, 즉 5 이상은 반올림하고 그 미만은 내린다는 공식을 도입한다. 135.33333은 135가 되며 135명의 국회의원이 찬성한 개헌안은 통과된다는 주장이 나온 거야. 다음 날 “사사오입이 맞습니다. 정족수 계산에 착오를 일으켜 부결을 선포한 것이고 135는 203의 3분의 2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전일 부결 선포를 취소합니다”라고 최순주 국회부의장이 선언한 순간, 국회는 난장판이 돼버렸어. 야당 의원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자유당 의원들도 일부 반발했어. 자유당 출신 손권배 의원은 이렇게 외치며 자유당을 탈당했어. “정신병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정신병자’ 같은 짓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장본인이 누구였는지 아니? 놀랍게도 당시 대한수학회 회장 최윤식 서울대 교수였어. 이분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체계적인 수학을 도입했고 국내 최초의 수학박사 타이틀을 자랑하는 석학이기도 해.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그 수학적 해석은 엄청난 정치적 오물이 되어 출범 10년도 안 된 대한민국 정치를 쓰레기더미에 메다꽂아 버리고 말았어. 이분이 자발적으로 이 일을 한 것인지, 아니면 어느 교활한 정치인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마지못해 뒷받침했을 뿐인지 아빠는 알지 못해. 하지만 어느 쪽이든 최윤식 교수는 이 사사오입 개헌 사태의 중대한 원인 제공자이며 학자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을 대한민국 정치와 함께 쓰레기장에 투척해버렸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연합뉴스10월3일 서울대병원·서울대 의대 합동 특별조사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1905년 영토는 거대했으나 그 속은 비어 있던 대제국 러시아는 내우외환에 시달렸어. ‘황색 난쟁이’라 멸시하던 일본과의 전쟁에서 밀렸고 안으로는 사회 개혁을 외치는 러시아 민중의 항의와 봉기가 끊이지 않았으니까. 그중 유명한 사건이 바로 ‘전함 포템킨 반란 사건’이야. 러시아 흑해 함대 소속 최신 전함 포템킨 호의 수병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배를 장악한 후 혁명의 기치를 올린 거야. 그들은 총파업이 진행 중이던 오데사로 배를 몰았고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하지만 정부군의 반격이 시작되고 수많은 시민이 희생당해. 이 전함 포템킨의 이야기를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영화로 만든 것이 불멸의 흑백영화 〈전함 포템킨〉이야.

전함 포템킨의 반란은 치밀한 계획하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어. 발단은 반란 전날 보급된 고기 때문이었다. 보급 당일 날이 어두워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고기는 이튿날 그 썩은 냄새와 드글거리는 구더기로 병사들을 경악시켰어. “구더기가 우글우글한 고기가 보급품으로 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선내를 뒤덮었어. 병사들의 동요를 감지한 함장 골리코프는 군의관 스미르노프에게 고기에 대한 검사를 명령했다. 그런데 이 의사 스미르노프의 대답은 병사들에게는 분통 터지는 것이었어. “괜찮습니다. 식초로 구더기를 씻어낸 뒤에 먹으면 아무런 해가 없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이 고기로 끓인 수프 먹기를 거부했고 이에 분개한 장교들이 명령 불복종으로 몇 명을 총살하겠다고 위협하면서 포템킨 호의 선상 반란은 폭발하고 말았어. 여러 장교들이 죽었지만 가장 처참하게 살해된 것은 당연히 스미르노프였어. 썩은 고기가 입에 물린 채 사살돼 바다에 버려졌으니까.

당시 어느 나라든 해군의 경우는 특히 보급품에 문제가 많았어. 항해를 하다 보면 보급품이 떨어지기 일쑤고 상한 고기를 억지로 먹어야 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단다. 즉 “식초로 구더기를 씻어내고 먹는” 일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어. 하지만 스미르노프는 문제의 고기가 오랜 항해 도중 썩은 게 아니라 전날 보급된 물품이었음을 모른 척했고, 자신이 불량 판정을 내릴 경우 돌아올 상관들의 노여움과 자신의 불이익을 기민하게 파악했지. 고기만큼이나 썩어 있던 제정러시아 해군의 부패상 때문에 고통받던 병사들의 분노와 고통을 간단히 무시했고 말이야. 그게 그가 죽어야 했던 이유지.

“내 사망진단서는 그에게 받지 않겠다”

백남기 농민의 사인(死因)을 두고 엄청난 파장이 일었던 건 너도 알 거야. 애초에 물대포를 머리에 맞고 의식불명이 된 사람의 죽음의 원인이 ‘심폐 정지’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솔직히 아빠는 ‘전문적 견지’에서 보면 그럴 수 있는 건가 싶었어. 그러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이 사망진단서에 외인사(外因死)가 분명한데도 사망의 종류를 병사(病死)라 쓰라고 배우지 않았다고 항의하고, 현직 의사들이 화답하면서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라는 전문가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심지어 이 사망진단서를 토의하기 위한 서울대병원·서울대 의대 합동 특별조사위원회(특위)에서조차 이 주치의는 “가족들이 치료를 거절해서 죽었으니 병사”라는, 최윤식의 사사오입설보다도, 썩은 고기를 먹어도 해가 되지 않는다는 스미르노프의 주장보다도 근거가 빈약한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고 해. 동료 의사로부터 “내 사망진단서는 그에게 받지 않겠다”라는 타박까지 들으면서, 멀쩡했던 사람이 죽은 이유를 가해자 아닌 가족에게 돌리는 억지를 동원하면서까지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빠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사사오입은 최윤식이 수학자로서의 긍지를 담은 주장이 아니었고, “구더기 걷어내고 먹으면 된다”던 스미르노프가 전문가로서 그의 양심을 지킨 행위는 절대로 아니었으며, 오늘날 백남기 농민의 죽음 앞에 던져진 병사라는 선고 역시 전문가의 양심과 명예 따위와는 천만 배 거리가 멀다는 점이야. 이 암담함 속에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의 성명서 중 한 구절은 한 줄기 가을바람으로 아빠의 끓는 속을 식혀주는구나. “전문가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굽은 것은 펴야 하고 뒤틀린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게 세상의 전문가들이 할 일이고, 그래서 우리는 전문가를 대우하는 것이지. 세상에는 청출어람(靑出於藍)만 있는 게 아니구나. 이건 적출어람(赤出於藍)이다. 어찌 저런 황무지 같은 스승에게서 어찌 이리 알토란 같은 제자들이 솟아날 수 있었을까.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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