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는 7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북쪽 산간 지역에는 계곡을 따라 사과 농사를 짓고, 남쪽 평지에는 참외 농사를 짓는다. 주민 대부분은 자식들을 도시로 떠나보낸 뒤 홀로 남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이 시골 마을이 최첨단 요격 미사일 체계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최적지’로 발표되었다.

지난 9월30일 국방부는 소성리 달마산에 위치한 롯데스카이힐 성주CC 골프장(이하 롯데 골프장)을 사드 배치 예정지로 최종 발표했다. 7월13일 성주군 성주읍 성산포대를 최적지라고 발표한 지 79일 만에 국방부 스스로 말을 뒤집었다. 발표 다음 날인 10월1일 롯데 골프장으로 가는 도로를 경찰버스 두 대가 지키고 있었다. 경찰은 “성산포대 쪽에 있다가 사드 예정지가 변경되어 어젯밤 롯데 골프장으로 왔다. 주민들이 단체로 항의하거나 우발적인 상황에 대비해 경비를 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골프장으로 올라가는 길, 들머리에 있는 소성편의점은 ‘사드 반대’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었다. 편의점 앞에 서 있던 주민들은 “이제 여기 못 산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드 반대를 뜻하는 파란 리본을 가슴에 단 할머니는 “사람 사는 데다 갖다놓으면 어카노”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언론은 롯데 골프장 주변에 민가가 적어 부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시사IN 조남진9월30일 국방부가 사드 배치 부지를 김천시 인접 지역인 롯데스카이힐 성주CC 골프장으로 확정하자 김천 주민들이 철회 촉구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국방부가 최종 부지 선정을 발표했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오락가락하는 행보 때문이다. 성산포대를 최적지라고 처음 발표할 때만 해도 국방부는 ‘변경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성주 주민들이 반발하자 대통령이 나섰다. 지난 8월4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경북 지역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성주군 내에서 새로운 지역을 검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곧 ‘제3후보지’ 선정에 착수했다. 성주군 내 염속봉산·까치산 등이 후보지로 거론됐지만, 롯데 골프장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일찌감치 흘러나왔다.

9월30일 국방부 관계자는 경상북도와 성주군을 찾아 사드 예정지를 롯데 골프장으로 확정한 배경과 경과를 설명했다. 김천시에도 황희종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이 파견됐지만 박보생 김천시장이 면담을 거부해 만나지 못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김천시민 70여 명은 황희종 기조실장이 머무른 부시장실 앞을 한동안 지키기도 했다.

롯데 골프장은 행정구역상 성주군에 속한다. 하지만 사드 기지가 배치될 경우 레이더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지역은 김천시다. 롯데 골프장은 북쪽으로 김천시 농소면과 마주하고 있으며 직선 7㎞ 거리에 1만4000여 명이 사는 김천혁신도시가 있다. 성주읍내와는 15㎞ 떨어져 있다.
 

ⓒ시사IN 조남진미군기지를 반대하는 일본 오키나와 변호사들이 사드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김천시민들은 지난 8월22일 김천시 농소면에서 처음 촛불을 든 이후 김천역으로 장소를 옮겨 40여 일째 촛불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10월2일 찾은 김천역 광장에는 사드 배치 반대 천막이 차려져 있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혁신도시 주민들이 많이 참여해서인지 한편에는 놀이방도 마련되었다. 혁신도시에서는 김천역 촛불집회에 가는 버스 두 대가 매일 밤 운행된다.

시민 1000여 명이 길쭉한 김천역 광장을 가득 메웠다. 앞쪽에는 농소면 주민이, 뒤쪽에는 가족 단위로 나온 혁신도시 주민이 주로 앉았다. 10월5일에는 김천시민 800여 명이 상경해 서울 보신각 앞에서 롯데 골프장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성주에서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10월1일 성주군청 앞에서는 81일째 촛불이 타올랐다. 주민 400여 명이 참석했다. 김충환 사드배치반대 성주투쟁위 공동위원장은 “어제 할머니 한 분이 말씀하시길 ‘발표했다고? 거도 성주라메? 계속 싸워야지’ 이렇게 딱 세 마디를 하셨다. 머리 싸매고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날 촛불집회에는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일본 오키나와의 변호사(자유법조단 오키나와 지부) 42명도 참석했다. 자유법조단 오키나와 지부 소속 변호사들은 동북아평화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길에 성주를 찾았다. 나카야마 지부장은 “71년 동안 미군기지에 의해 피해를 받아온 오키나와에 사는 사람으로서 당부드리고 싶다. 기지는 한번 만들어지면 확장되거나 확대될 뿐이지 축소되는 일은 절대 없다. 오키나와에서는 미군기지를 ‘흉악한 기지’라고 부른다.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기지는 한번 만들면 확대될 뿐 축소되지 않아”
사드 기지 배치 후보지가 최종 발표되면서 반대 지형도 바뀌었다. 김항곤 성주군수는 롯데 골프장 사드 배치 찬성으로 돌아섰다. 성주군은 그간 촛불집회 장소로 사용된 군청 앞마당 사용을 불허했다. 성주 주민들은 10월7일부터 군청 맞은편 옛 성주경찰서 부지에서 사드 배치 반대 촛불을 들고 있다.

인접한 김천시가 성주군보다 더 분주하다. 박보생 김천시장이 반대 전선에 합류했다. 또 혁신도시와 농소면 주민, 원불교, 전농 김천농민회, 화물연대, 전교조 등 시민사회단체가 주축이 된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가 꾸려졌다. 김천 시의원들이 중심이 된 성주 롯데 골프장 사드배치반대 김천투쟁위원회도 있다. 김천시민대책위는 김천역 앞 촛불집회를 진행하는 등 사실상 김천시 사드 반대 움직임을 이끌고 있다. 10월11일에는 원불교와 연합해 서울 보신각 앞에서 1만명이 모이는 상경 집회를 연다.

원불교 교단도 대대적인 사드 배치 반대에 나섰다. 롯데 골프장 인근에 원불교 성지인 정산 송규 종사의 생가 터가 있기 때문이다(위 상자 기사 참조). 정산 종사는 원불교 2대 종법사로 ‘원불교’라는 교명을 짓고 교단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원불교 성주성지수호 비상대책위원회는 9월3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기한 연좌 농성에 들어갔다.

부지를 최종 확정한 국방부는 사드 배치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롯데 골프장은 진입로가 갖추어져 있고 면적도 넓어서(178만㎡) 사드 레이더와 포대를 배치하는 데 별다른 추가 공사가 필요하지 않다. 롯데 골프장을 소유한 롯데그룹은 9월30일 “국가 안보의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정부 결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경기도 국유지와 롯데 골프장을 맞바꾸는 방식(대토)으로 부지를 확보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10월6일 국방부는 대토가 아닌 매각 방식으로 롯데 골프장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 당국은 텍사스 주 포트블리스에서 운용 중인 사드 4개 포대 중 1개를 이동 배치할 계획이라고 한국에 알렸다. 괌 사드 포대 운용 요원들이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순환 근무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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