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한국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확대해나갈 것입니다. 유엔과 함께 임신부터 2세까지 북한의 산모와 유아에게 영양과 보건을 지원하는 ‘모자패키지 사업’을 펼칠 것입니다. 북한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해 한반도의 통일 미래를 함께 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발언이다. 2014년 3월 박 대통령은 옛 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인 드레스덴 선언을 했다.

고작 2년 뒤, 드레스덴 선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공허한 게 드레스덴 선언뿐인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도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북정책 공약은 또 어떤가? ‘남북한 간 북핵문제 해결 위한 실질적 협의 추진’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선거 공약집 357쪽). ‘개성공단 국제화’도 담았다. 서울과 평양에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도 내걸었다(359쪽). 시베리아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연결해 복합 물류 네트워크인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로 발전시키겠다고 했다(362쪽). 이 모든 약속이 글자로만 남아 있다.

공약은 선거 때만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최근 이런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일본에, 시베리아철도를 연장해 사할린에서 홋카이도까지 잇는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제안했다.’ 어느 나라에선 글자로만 남았지만, 바다 건너 나라에서는 현실이 되고 있다.

남북관계의 파탄 책임을 북한에 돌릴 수 있다. 북한은 상수다. 상수를 관리하고 해결하는 게 리더십이다. 무능한 지도자는 위기를 만들고 유능한 지도자는 위기를 해결한다(김연철, 〈협상의 전략〉). 박근혜 대통령이 위기를 방치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남북 사이 긴장이 높아지면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한다. 북폭이니 선제타격이니 하는 말이 흘러나온다. 시곗바늘이 다시 1994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독일 드레스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소이탄 폭격을 맞았다. 불바다가 되었다. 어린이 수백명을 포함해 2만5000명가량이 숨졌다. 박 대통령이 다시 드레스덴을 찾아 2년 전 구상을 떠올린다면, 외유에 드는 세금도 아깝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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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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