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토론 때는 다른 방식으로 더 세게 클린턴을 공격할 수도 있다.” 오는 11월8일 미국 대통령 선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는 첫 텔레비전 토론을 마친 직후,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폭스 뉴스〉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CNN,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주류 언론은 지난 9월26일 1차 토론에 대해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선언했다. 수세에 몰린 트럼프는 10월9일 중·서부 지역의 워싱턴 대학에서 열리는 2차 TV 토론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트럼프의 대선 참모진은 2차 토론에 대비해서 치밀한 전략을 마련 중이다. 클린턴의 경우, 자신의 최측근을 트럼프 대역으로 세워 준비했다. 실전 연습을 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측근과 예상 답변을 숙의하는 정도로만 준비했다. 그래서 클린턴의 토론 훈련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1차 토론에서는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인신공격을 삼갔지만, 2차에서는 클린턴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적극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는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불륜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따라 2차 TV 토론은 정책 경쟁보다 최악의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행사로 전락할 수도 있다.

ⓒReuters9월26일 뉴욕 주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열린 미국 대선 1차 TV 토론 모습.
지난 1차 토론의 경우, 미국 전역에서 8400만명 정도가 시청한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인 1980년대 초 ‘공화당 레이건 후보 대 민주당 지미 카터 후보 토론’의 시청자 수(8060만명)를 뛰어넘었다. NBC 심야 뉴스 진행자 레스터 홀트의 사회로 90분간 진행된 이번 토론에서 클린턴과 트럼프 두 후보는 일자리 창출과 자유무역협정 같은 경제문제에서 테러·동맹 문제 등 주요 외교 안보 현안, 나아가 납세 및 인종차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격론을 벌였다. 클린턴은 특히 경제 이슈에서 구체적 수치까지 나열하며 시청자에게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반면 트럼프는 여러 현안에 상투적인 답변을 내놓는가 하면 여성 비하와 자신의 납세 공개 거부 등 불리한 대목이 나올 때면 특유의 신경질적인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간단히 말해 트럼프는 이번 토론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라고 혹평했다.

이 같은 토론 결과는 CNN이 토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9월26일 토론 직후 CNN·ORC 즉석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이 더 나았다’는 답변이 62%로 27%에 머문 트럼프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9월2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은 자유당 게리 존슨과 녹색당 질 스타인 후보까지 가세한 4자 대결에서 지지율 41%로 38%의 트럼프를 꺾었다. TV 토론 전의 9월25일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클린턴을 1%포인트 앞선 바 있다.

1차 토론의 승기는 클린턴이 잡은 셈이다. TV 토론 이후 클린턴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160만명 이상이 참여한 온라인 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자신을, 45%가 클린턴을 지지했다는 시사 주간지 〈타임〉의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의 핵심 참모인 피터 나바로는 의회 전문지 〈더힐(The Hill)〉과 인터뷰하면서 “트럼프가 이번 토론에서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은 자유무역협정의 폐단을 적극 제기함으로써 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 등 경합 주에서 오히려 점수를 올렸다”라고 분석했다.

ⓒAFP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인근 술집에 모인 시민들이 대선 후보들의 첫 TV 토론을 시청하고 있다.
‘타운홀 미팅’ 방식, 2차 토론은 트럼프 유리?

그렇다면 1차 토론을 근거로 클린턴의 대선 승리를 예단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CNN의 선임 정치 분석가이자 하버드 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거건은 “전통적인 토론 기준으로 보면 클린턴의 승리다. 그렇지만 클린턴이 트럼프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할 수는 없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전통적 기준으로 트럼프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1차 TV 토론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자만하다가 오히려 최종 대선에서 쓴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12년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 공화당 밋 롬니’의 첫 TV 토론 직후 여론조사를 보면, 롬니가 오바마보다 4%포인트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종 대선 결과에서는, 오바마가 롬니를 4%포인트 차이로 눌렀다.

더욱이 올해 대선의 경우, 2012년 대선에 비해 부동층이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 방송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과 트럼프 가운데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시민이 전체 유권자의 약 20%를 차지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유당 존슨 후보와 녹색당 스타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각각 9%, 3%인 데다 나머지 8%는 아직 표심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자유당 및 녹색당 지지자들이 대선 막판에 어느 쪽으로 쏠릴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클린턴이 부동층 유권자를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을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부동층 가운데 상당수가 18~29세 젊은이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나온 각종 연구 조사에 따르면, 클린턴과 트럼프 양 후보를 모두 혐오하는 계층이다. 젊은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면, 클린턴은 TV 토론에서 이기고도 본선에서는 고전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플로리다 주 전체 유권자의 25%를 차지하는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들에서도 감지된다. 흑인과 히스패닉은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집단이다. 클린턴에 대해서는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클린턴에게 플로리다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대표적 경합 주(선거인단 29명)다. 승리하려면 흑인과 히스패닉을 어떻게든 투표장으로 이끌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일 전까지 최소 두 번 플로리다를 방문할 계획을 세운 것도 그래서다.

1차 토론에서 승기를 잡은 클린턴은 노스캐롤라이나 주 등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를 경합 주를 돌면서 연일 트럼프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반면 트럼프 캠프는 2차 TV 토론에서 절호의 반전을 만들어내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사회자가 90분 내내 중재하는 1차 토론과 달리 2차 토론에서는 방청객도 후보에게 질문할 수 있다. 2차 토론은 CNN 앵커인 앤더슨 쿠퍼와 ABC 마사 래대츠 기자의 사회로 워싱턴 대학에서 청중들이 자유롭게 질문하는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된다. 트럼프 측은 상당히 고무되어 있다. 과거 10년 이상 NBC 방송의 리얼리티 쇼에서 스타 진행자로 활약하면서 타운홀 미팅 방식에 익숙한 트럼프가 클린턴을 능히 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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