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까지 차가 막혔다. 대형 병원과 오피스텔, 주상복합 건물이 눈에 띄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서자 성당이 보였다. 대로변과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인데, 앞에 있는 공원 덕이었다. 나무 사이에 있는 표지판에 ‘삼무(三無)공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둑·대문·거지가 없다’는 뜻이다. 이 섬의 오래된 별명을 땄다. 삼무공원 근처에 있는 이 성당에서 지난 9월17일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60대 여성이었다. 범인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다. ‘묻지 마 살인’이었다(36쪽 딸린 기사 참조).

제주도민들은 이번 범죄를 어떻게 생각할까? 범죄 위협 정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게 답했다. “바오젠 거리(제주시 연동에 있는 대표적 중국인 거리) 쪽에 발길을 끊었다”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반응도 나왔다.

한 가지 공통점은 중국인 관광객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외국인 범죄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대개 “아무데서나 웃통을 벗고 쓰레기를 버리는” 중국인 관광객의 ‘에티켓’ 문제를 거쳐 경제 이야기로 끝났다. 대다수 제주도민은 중국인 관광객이 지역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민심의 풍향계인 한 택시기사는 “중국 관광객이 주는 손해가 이익보다 많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번 (살인) 사건은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제주도의 중국인 거리 ‘바오젠 거리’ 모습. 입구에는 환영 인사와 함께 “기본 질서를 지키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하겠다”라는 경고 메시지가 쓰여 있다.
제주도민들은 중국 관광객이 지역 경제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인식했다. 겉으로 드러난 경제 지표를 보면 이런 인식은 뜻밖이다. 지역내총생산(GRDP)은 2010년 10조8990억원에서 2015년 14조7550억원으로 5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원희룡 도지사는 이 수치를 임기 내 25조원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국내외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일자리도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제주는 고용률 72.2%로 1위다. 인구도 늘고 있다. 매달 순유입(전입-전출) 인구가 1000명이 넘는다. 2010년 58만명이었던 인구는 2013년 60만명을 돌파했고, 지난 5월 65만명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10년 안에 제주도 인구가 80만을 넘으리라 예측한다.

수치상 드러난 경제 활황 지표는 파란불이지만, 주민들의 삶이 드러난 지표는 빨간불이다. 제주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45만5000원으로 전국 최하위다. 1위 울산(423만원)의 60% 수준이다. 상용근로자 비율은 전국 평균보다 14% 낮고, 임시직·일용직과 자영업자, 무급 가족 종사자 비율은 높다. 일자리 질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국내외 자본의 부동산 투기가 늘면서 땅값이 크게 올랐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도내 평균임금으로는 연세(1년치 월세를 한 번에 납부하는 계약 방식)가 감당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 사업 이윤은 ‘도로 중국인에게’

무엇보다 주력 산업인 관광업의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2004년 33만명 수준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10년 만에 10배로 늘었다.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외국인 관광객 수는 큰 폭으로 늘고 있지만, 그 과실이 온전히 도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최근 들어 ‘중국인들끼리의 관광 사이클’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국제공항과 가까운 신제주 지역에는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호텔이 다수 포진해 있다. 바오젠 거리 식당·술집 다수도 중국인들이 운영한다. 바오젠거리에서 1㎞ 이내에는 대형 면세점 두 곳이 있다. 제주도 내 중국 여행사에 다니는 남효석씨는 “면세점을 비롯한 도내 대다수 쇼핑·관광 시설이 (중국) 여행사와 계약을 맺고 커미션을 지급한다”라고 귀띔했다. 숙박·식사·쇼핑 등 제주도 관광의 이윤 대부분을 중국 회사들이 챙기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연합뉴스제주도 성당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붙잡힌 중국인 첸 아무개씨(가운데).
제주도 내 관광업 관계자들은 중국인들의 제주도 여행 실태를 들려줬다. 이들은 “국내 업체들이 중국 업체에 비해 많이 뒤처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먼저 관광객 수급에서 불리하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중국 현지 업체를 통해 관광을 온다. 제주도 내 여행사들은 이렇게 모인 관광객들을 중국 업체에서 사온다. 제주도 내 중국 여행사들은 현지 업체들과의 돈독한 네트워크를 통해 더 쉽게 관광객을 유치한다. 더 큰 차이는 인건비다. 중국인이나 조선족 가이드는 한국인에 비해 인건비가 싸다.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하면 비용은 더 절감된다. 게다가 이들은 중국어와 한국어가 모두 유창하다는 장점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여행사 가운데에는 중국인 관광 부문을 없애거나 문을 닫는 곳도 많다.

제주도 사람들은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환경오염 때문이다. 유입 인구가 급증하면서 제주도의 특장점인 자연경관이 훼손되고 있다. 환경이 훼손된다면 제주의 ‘관광 붐’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도내 생활폐기물 발생량, 자동차 등록 대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에는 하수 무단 방류 문제도 터져 나왔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9월26일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197일 동안 법정 기준치를 넘어선 하수가 바다에 무단 방류됐다”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이날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제주도상하수도본부를 검찰에 고발했다.

제주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관광객 수 조절’이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지난 3월 제주환경운동연합은 “한라산국립공원 하수의 오염 상태가 심각하다. 탐방객 총량제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라고 논평을 냈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좌광일 사무처장은 “최근 제주도는 인구나 관광객을 다다익선으로 보고, 이 작은 섬이 몇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지 살피지 않았다. 도민들 사이에 ‘관광객들이 너무 늘어 생활 터전이 파괴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라고 말했다.

제주대학 탐라문화연구원의 김동현 특별연구원은 ‘국제자유도시’라는 제주도 개발 비전이 근본적 문제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제주도 주민들은 ‘육지 사람들’에게 소외됐다는 박탈감을 가져왔다. 제주특별법 속 ‘국제자유도시’라는 목표도 그렇다. 사람·자본·상품이 자유롭게 드나든다는 국제자유도시에서, 정작 지역 주민들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지고 있다. 외국인 정책 각론뿐만 아니라 제주도 개발 방향 전체를 수정해야 한다.” 외국인 범죄만 단속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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