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에서 쌀농사를 짓는 유 아무개씨는 풍년이 걱정이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쌀값 때문이다. 2015년 9월 산지 쌀값이 15만9605원이었는데 올해 9월5일 기준으로 13만7152원이다(정곡 80㎏ 기준). 전년 대비 14.3% 하락했다. 본격적인 수확기(10월)가 되면 쌀값이 더 떨어지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는 태풍과 병충해가 없어서 풍년이 예상되는데 농가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유씨는 “풍년을 바라지 않는다. 주변 농가들은 이러다 쌀값이 10만원대까지 추락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쌀값이 비상이다. 2013년 7월에 80㎏ 한 가마당 17만6788원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5월에 16만원대, 2015년 4월에 15만원대, 2015년 11월에 14만원대로 떨어지다가 올해 9월에 13만원대로 쌀값이 추락했다. 수확기를 앞둔 8, 9월의 하락폭이 더 두드러졌다(위 〈표〉 참조). 쌀값이 폭락하자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 주요 정당은 대책을 마련한다며 농가를 찾느라 부산하다. 지난 9월23일에는 국회에서 ‘쌀 대란 해소대책 마련 토론회’(박완주 의원실 주최)가 열리기도 했다.

 

 


쌀값 폭락과 관련해 정부는 ‘과잉 생산-소비 감소’를 근본 원인으로 보고 있다. 통계를 살펴보면 최근 10년 동안 벼 재배 면적은 연평균 2.0% 감소해왔다. 2013년 벼 재배 면적이 83만2625㏊였는데 올해는 77만8734㏊ 수준이다. 쌀 재배 면적이 줄었는데도 2013년 423만t, 2014년 424만t, 2015년 432만t으로 쌀 생산량은 늘어났다. 날씨가 좋았고 농사 기술이 향상돼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올해도 지난해처럼 풍년이 예상된다. 반면 매년 1인당 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아래 〈표〉 참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에서 2014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쌀 공급과잉 물량은 36만t 수준이다. 쌀 생산은 많은데 소비가 감소하는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이 문제라는 것이다.
 

 


쌀 과잉 재고는 예견된 문제였다. 쌀 소비량이 줄고 있는데 2004년 쌀 관세화 유예 협상에 따라 수입쌀이 매년 40만t가량 국내로 유입되었다. 국내 쌀 재고량 가운데 24%가 수입쌀이다(8월 기준). 수입쌀이 재고 증가의 한 요인인 것이다. 여기에 2002년에서 2007년까지 연 30만~40만t가량이던 대북 지원이 중단된 것도 영향을 끼쳐 쌀 재고량이 급증했다. 7월 기준으로 정부가 보유한 쌀 재고량을 보면 2014년 85만t, 2015년 139만t, 2016년 175만t으로 급증했다(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국내 쌀 적정 재고량은 80만t 수준이다).

 

 

 

쌀 과잉 재고 문제는 지난해에도 논란이 되었다. 2015년 9월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최로 ‘늘어나는 쌀 재고,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때도 쌀 재고량이 많으면 정부 방출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산지 거래가 위축되고 쌀값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정용·가공용·사료용·사회복지용 등 여러 용도로 쌀 재고를 소진하는 방안이 나왔으나 비용 문제 등으로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대북 지원이 단기적 쌀 재고 처리에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북핵 문제와 정부의 대북 지원 불가 방침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토론회 말미에 한 토론자는 이렇게 말했다. “작황으로 볼 때 내년에도 이런 토론회가 개최될까 봐 심히 염려스럽다.”

쌀 과잉 재고 문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정부는 올해 1월 쌀 특별재고관리대책을 발표했다. 가공용·복지용·사료용 쌀 공급을 늘려 쌀 재고량 190만t(지난해 말 기준)을 134만t으로 56만t가량 감소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8월 말 쌀 재고량은 175만t(국산 133t, 수입쌀 42t) 수준으로 정부의 쌀 재고 관리 대책은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장경호 소장은 “정부가 쌀 재고를 56만t 줄이겠다고 발표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그게 가능할지 의아했다. 결국 실효성 없는 대책으로 판명 났다”라고 말했다.

“쌀값 폭락은 정부 재고 관리 실패가 부른 참사”

이처럼 쌀 재고 관리 정책이 실패해 쌀값이 하락했는데 정부는 ‘쌀 생산 증가-소비 감소’를 주요 원인으로 돌리고 있다. 쌀값 하락 책임을 농민·소비자 탓으로만 돌린다는 것이 농민단체 등의 주장이다. 9월23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김호 교수(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는 “쌀 소비량 감소는 연간 8만~9만t으로, 쌀 재고량 증가의 주된 원인이 쌀 소비량의 감소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정부가 재고 관리 대책을 실효성 있게 적시에 시행했다면 쌀 재고 과잉 문제가 이 지경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장경호 소장은 “올해의 쌀값 폭락은 정부의 재고 관리 실패가 불러온 참사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을 일부 해제하는 방안을 폭락하는 쌀값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도 농업진흥지역을 순차적으로 줄여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쌀 생산을 축소해 쌀 과잉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호 교수는 국회 토론회에서 “쌀은 주식일 뿐만 아니라 쌀 농업은 식량 안보·환경 보전 등 공익적·다원적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국제 곡물 수급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과잉과 부족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식량 안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농지의 보전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농지 자체의 감축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장경호 소장도 “정부가 쌀 수급 조절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 없이 흉년에는 증산을 독려하고 풍년에는 재배 면적을 줄이는 땜질식 처방만 한다”라고 비판했다. 풍년과 흉년이 반복되는데 적정 규모의 재배 면적을 유지하지 않으면 자급률 등 식량 안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설명이다. 2011년만 해도 기상 악화로 쌀 생산량이 31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그 전해에 104.5%였던 쌀 자급률이 83.1%까지 내려갔다.

 

ⓒ오마이뉴스2015년 12월5일 제2차 민중총궐기에 참석한 농민과 시민들이 쌀값 공약을 지키라며 행진을 하고 있다.

 


쌀값이 하락하면서 농민들의 쌀 농업에 대한 불안감도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쌀 고정·변동직불금 제도로 쌀 농가의 소득을 보전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5년마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목표 가격(2013년산부터 2017년산까지의 목표 가격은 80㎏당 18만8000원)을 설정하고 시장가격과 목표 가격 차이의 85%를 직불금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85% 보장 수준인 데다 목표 가격에 농가의 생산비 증가, 물가 상승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농가 소득 보전에 한계가 있다는 반론이다. 게다가 쌀값이 더 하락하게 되면 직불금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추후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농민이 행복한 새누리당 진심. 쌀값 인상 17만원을 21만원대로’라는 내용의 선거 현수막을 내건 바 있다. 지난해 백남기씨가 상경 시위에 나선 것도 쌀값 폭락 때문이었다. 백씨는 21만원 쌀값 공약을 지키라며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18대 대통령 선거 농업 관련 공약에 쌀값 21만원을 약속하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진심’과 ‘약속’을 따지는 동안 쌀값은 17만원대에서 13만원대로 추락했고 백남기씨는 숨졌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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