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태생의 정치학자 후안 린츠는 ‘권위주의’라는 개념을 정치학에 도입한 선구자다. 정치체제를 민주주의 아니면 전체주의로만 구분하던 1960년대에 린츠는 비(非)민주적이면서도 전체주의와는 구분되는 통치 형태로 권위주의를 제안했다.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의 핵심 차이를 린츠는 이렇게 설명한다. “권위주의는 전체주의처럼 이데올로기에 의거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쥔 사람들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가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여당 인사들도 통치행위의 합리적 맥락을 설명하기 점점 더 어려워한다. 9월25일 청와대는, 전날 국회가 의결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결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결의안을 수용하지 않은 사례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연합뉴스

청와대의 강경 기조는 새누리당으로 옮아갔다. 해임결의안 여파로 새누리당은 국정감사 보이콧에 나섰고, 이정현 대표는 9월29일 현재까지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여야의 극한 대립과 화해 협력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야 새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이 대립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다. 집권당이 국회를 파행으로 끌고 가 얻을 실익도, 해임건의안을 묵살하는 헌정사 초유의 선택으로 박 대통령이 얻을 실익도 설명이 쉽지 않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두고 ‘통치의 합리성’이 사라졌다고 평가한다. 통치의 합리성이란 그 통치가 반드시 선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이데올로기에 헌신하거나, 권력을 강화하거나, 정권 재창출을 노리거나, 목표가 무엇이든 권력자가 제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통치한다면 통치의 합리성이 있다고 본다. 이럴 때는 통치행위와 목표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통치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통치’는 다르다. 이때 통치는 외부의 목표에 구속받는 대신 권력자의 심기에 따라 작동한다. 그래서 권위주의로 미끄러지는 정권에서는 통치의 합리성이 갈수록 사라진다.

겉으로만 보면, 임기 전반기나 지금이나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체로 합의점을 찾기보다는 대결로 이끌어가고, 달래기보다는 도발하고, 타협하기보다는 고립시켜 제거하는 쪽을 택한다. 임기 전반기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로 흔들어 사퇴시키며 검찰을 길들인 수법은, 임기 후반기 송희영 주필을 호화 접대 의혹으로 낙마시키며 〈조선일보〉를 길들인 수법과 판박이다.
 

ⓒ연합뉴스박근혜 정부는 핵심 포스트를 황교안 총리 등 법조인으로 채웠다.

하지만 통치 스타일의 공통점을 넘어서는 차이가 존재한다. 임기 전반기만 해도, 찬반을 떠나 통치행위의 목표가 존재했다. 임기 첫해의 전교조 때리기, 임기 전반기를 끌어온 통합진보당 때리기, 노동개혁과 임금피크 정국을 이끌어왔던 정규직 노조 때리기 등은 하나의 일관된 전략 프로세스였다.

첫째, 지지 기반이 상대적으로 좁아야 한다. 둘째, 대상의 전투력과 결집력이 높을수록 좋다. 지지 기반이 좁은 조직이 결집력과 전투 의지만 강할 경우 확산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셋째, 중산층이나 온건파가 공포를 느끼고 이탈하는 전장을 정교하게 고른다. 북한 문제, 노동 문제, 폭력 집회는 중산층과 온건파를 밀어내기 쉬운 이슈다. 이 세 요소가 합쳐지면, ‘똘똘 뭉친 소수 반대파 대 방관하는 다수파’ 구도가 등장한다. 정부는 소수의 반대파를 도발해 뭉치게 하고, 최대한 강경한 선택을 하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형성된 강경 반대파는,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할 중산층 온건파를 밀어내는 효과를 낸다. 결국 반대 여론은 고립되고, 헌법재판소 담장과 경찰 차벽 아래에서 산화해버리는 경로를 탄다.

나름 ‘합리적’이던 박 대통령의 통치가…

이런 통치 스타일이 국가이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떠나서, 적어도 ‘반대파를 고립시킨다’는 통치의 목표만은 뚜렷했다. 전반기에 박근혜 정권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부터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까지 반대파를 향한 도발을 되풀이해 보여주었는데, 통치행위와 목표가 논리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이 통치 꾸러미들은 ‘합리적’이었다.
 

ⓒ시사IN 이명익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해 ‘법률관계’를 운운했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 통치’는 결국 임기응변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이슈를 동원해 지지율을 반짝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지지층이 이반하는 대세를 되돌리지 못했다. 어느 정권이나 받아들게 되는 근본 숙제인 먹고사는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면서, 다수파를 유지하기는커녕 ‘콘크리트’라고까지 불리던 지지율 30% 선마저 붕괴 위기다. 이 위기는 올해 4월 총선 참패로 돌아왔다.

총선 결과는 박근혜 정권이 소수파 정권으로 전락했다고 알려주었다. 이 변화된 구도에서, 집권 전반기의 핵심 전략이었던 도발 통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도발 통치는 상대가 강경한 소수파로 고립되도록 이끄는데, 변화된 구도에서는 박근혜 정권이 오히려 고립되기가 훨씬 쉬워졌다. 통치의 합리성이 유지되었다면, 통치 스타일이 바뀌어야 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유지된 것은 통치의 합리성이 아니라 통치 스타일이었다. 박 대통령이 대결적 통치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점점 뚜렷해졌다. 징후는 총선 이전부터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 정국을 달궜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밀어붙이기는 강경파를 고립시킨다는 도발 통치 원리와는 거리가 멀었고,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통치’에 가까웠다.

통치의 합리성이 사라지면 통치자가 유권자의 요구에 구속받지 않게 되고, 이 방향으로 멀리 갈수록 통치 동력은 고갈된다. 이럴 때 권위주의적 통치자가 유권자의 요구를 우회하는 대표 경로가 ‘법’이다. 원론상 법치주의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통치자를 구속하는 원리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통치자의 기분이 아니라 법에 따라 작동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래서 ‘권력자의 멘탈리티에 따라 작동’하는 권위주의 체제는 법치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권위주의 성향이 강해질수록 법치주의라는 말에는 기묘한 의미 역전이 일어난다. 충분히 권위주의적인 체제에서는, 법치주의란 “권력자도 법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에서 “시민이 법을 잘 지켜야 한다”로 의미가 바뀐다. 법치주의가 말하는 ‘법의 지배’는 ‘법을 이용한 지배’로 변질된다. 이제 ‘법’은 통치의 무기가 된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핵심 포스트를 법조인으로 채웠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현재는 국무총리),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표적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불거진 위기 국면에서 정권을 육탄 방어하고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를 주도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 후 총리로 영전했다.

법이 통치의 무기가 되는 전형적인 장면이 여럿 등장했다. 정부 비판에 대해 정부 인사들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거는 소송이 일종의 통치전략이 되었다. 2014년 11월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을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8명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민변 변호사들은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서 박 대통령 조문 장면이 사전에 연출되었다는 의혹을 보도한 CBS와 〈한겨레〉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지난해 11월, 시위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었다가 지난 9월25일 사망한 백남기 농민 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는 통치의 압축판이다. 백씨가 물대포를 맞았던 집회는 2015년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였다. 노동개혁 추진과 임금피크제 도입 등으로 궁지에 몰린 민주노총이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는 과정부터가 박근혜식 도발 통치의 결과물이었다. 집회 하루 전인 11월13일에는 ‘분노한 강경파’인 집회 주최 측을 향해 정부 5개 부처 장관이 “불법 시위 엄단”을 요지로 하는 경고 담화를 발표했다.

〈조선일보〉가 꾸짖은 대통령의 ‘비(非)법치’

법이 통치의 도구가 되는 국가에서는 법이 권력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도 즐겨 쓰인다. 백씨 사건의 책임자인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11월23일 국회에 출석해 사과를 요구받고 이렇게 말했다. “사실관계와 법률관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사과를 한다는 것은…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 책임성에 구속받지 않는 국가는, 국가가 결과에 대해 짊어져야 할 ‘최종적 책임’과 좁은 의미의 ‘형사적 책임’을 뒤섞어버린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법무부 장관이던 시절, 국회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질의를 받을 때 그의 전매특허는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답변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묵살한 것도 법으로 보면 대통령의 권리에 속한다. 헌법은 국회가 해임건의안을 의결할 수 있다고 할 뿐 대통령이 수용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법 형식논리와 법치주의 원리가 어떻게 다른지는 〈조선일보〉 사설이 명쾌하게 쓰고 있다.

“법의 형식논리만 따진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매사에 ‘법대로’를 내세웠던 군사정권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더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은 법이 허용하느냐를 넘어서서 그 권한 행사가 나라의 정상적 운영에 보탬이 되느냐를 포괄적으로 판단해야 할 더 중대한 책임이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법을 이용한 통치일지는 몰라도 법의 정신을 살린 법치(法治)적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사설의 주제는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이 아니다. 13년 전인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 특검법안’에 헌법이 보장한 거부권을 행사하자, 그해 11월26일자에 나온 사설이다. ‘법을 이용한 통치’와 ‘법치’를 구분하는 분별력은 박근혜 정부 들어 더 중요한 자질이 되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