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67)가 성공적으로 당내 반란을 진압했다. 코빈은 9월24일 리버풀에서 열린 당 대표 경선에서 득표율 61.8%로 경쟁자인 오웬 스미스 하원의원(38.2%)을 제압하면서 대표 자리를 굳혔다. 이 경선에는 당원과 등록 유권자 등 50만6438명이 참여했다.

당초 코빈이 노동당 대표로 선출된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혁신파인 코빈의 당내 입지는 약하기 짝이 없었다. 1990년대 이후 노동당 주류로 떠오른 ‘제3의 길’ 노선(토니 블레어 전 총리 계파)을 대다수 노동당 의원이 따르고 있었다. ‘제3의 길’ 노선의 핵심 정책은 재정 긴축, 시장 자유, 민영화 등이다. 파격적 정부 지출과 노동권 보호, 국민건강보험 사수 등을 주장하는 코빈이 달가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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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반(反)코빈파 의원들의 뺨을 때려준 것은 지난 6월23일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였다. 코빈은 유럽연합의 강력한 개혁(노동권 및 환경규제 강화, 법인세 인상, 적극적 재정정책 등)을 촉구해왔지만 잔류파였다. 유럽연합에 대한 ‘묻지 마 지지’ 성향이 아니었던 만큼 코빈의 ‘잔류’ 메시지가 강력하지 않았을 수는 있다. 국민투표 결과가 ‘탈퇴’로 나오자 노동당 주류 의원들은 ‘코빈이 브렉시트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였고 리더십도 없다’며 사임을 요구했다. 급기야 국민투표 나흘 뒤인 6월27일, 노동당 예비 내각 31명 가운데 23명이 사임하면서 코빈 퇴출을 압박했다. 이튿날(6월28일)에는 노동당 의원 230명 가운데 212명이 불신임 투표를 강행했다. 결과는 ‘사임 찬성 172표, 사임 반대 40표’였다. 톰 왓슨 부대표 등 유력 인사들은 코빈을 찾아가 사임을 종용했다.

영국의 각종 노총과 당원들은 코빈 반대 의원들을 ‘당내 폭도(mutineers)’라 부르며 격하게 비난했다. 무엇보다 진보 성향 대중의 지지가 뜨거웠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코빈이 공격받기 시작하자 13만여 명이 노동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이들은 당 대표 선거에 투표할 수 없었다. 투표 자격을 ‘지난 1월 이전의 당원’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5파운드를 내면 ‘등록 유권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규정에 따라 등록 기간 이틀 동안 무려 18만여 명이 노동당으로 몰려들었다. 지난 7월 보수당 대표 선거의 유권자가 15만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빈 열풍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다.

당 대표직 수락 연설에서 그는 “영국이 원하는 실질적인 변혁을 추진하는 한 노동당은 다음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며 당의 단결을 촉구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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