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SBS 〈인생은 아름다워〉(2010)에서 묘사된 태섭(송창의)의 커밍아웃 과정을 보자. 태섭은 3대가 모여 사는 제주도 양씨 일가의 장손이다. 사진작가인 애인 경수(이상우)와 조심스레 사랑을 키워가던 어느 날 태섭은 이복동생 초롱(남규리)에게 경수와 포옹하고 있는 모습을 들키게 된다. 초롱은 모두에게 비밀로 해주겠다 약속했지만, 태섭은 더 이상 거짓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가정 내 실권자인 새어머니 민재(김해숙)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민재는 충격에 휩싸이지만 이내 태섭을 받아들이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걸 도와주기로 한다.
김수현은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배척받는 존재 중 하나인 성 소수자가, 가장 보수적인 가족 형태인 가부장제 대가족의 논리를 빌려 수용되는 희한한 광경을 그려낸다. 민재는 남편 병태(김영철)를 설득한 뒤 태섭을 포용할 것을 결의하고, 병태가 태섭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부모를 제외한 가족 전체를 소집해 이 사실을 공표하며 ‘우리 가족이니 집안에서만은 곁눈질받지 않고 지내게 하고 싶다’며 그게 불편한 사람은 집에서 나가라고 통보한다. ‘생래적인 거부감’을 호소하는 태섭의 자형 수일(이민우)도 결국 그 서슬에 눌린다. 민재는 가부장제에서 도덕적·경제적 중심 구실을 하는 가장 내외의 권위로, 당사자가 직접 커밍아웃하며 겪을 가족 구성원의 반감을 진압한다.
다른 드라마의 사례도 살펴보자. KBS 〈부모님 전상서〉(2005) 속 자폐 아동 준(유승호)은 가정불화의 원인처럼 묘사된다. 아버지 창수(허준호)는 준이에게 정을 붙이지 못한 채 밖으로 나돌다가 불륜을 저지르고, 말 못할 마음고생을 하던 어머니 성실(김희애)은 이혼을 통보한 뒤 준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간다. 헌신적으로 준이를 돌보는 데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성실이나, 그로 인해 붕괴되는 가정의 묘사 등은 작품 초반 적잖은 비난을 샀다. 2005년 4월 발표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방송에서의 장애인 차별 실태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는 이 작품이 장애 아동을 가정의 평화를 깨는 갈등 원인 제공자로 그려 편견을 강화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혼 후 준이를 돌보던 성실이 직장을 구하느라 더 이상 24시간 아들 옆에 붙어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대뜸 “모자란 자식 남한테 어떻게 맡기고…, 모자란 자식의 부모는 부모도 모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성실의 선택을 비난하는 시어머니(나문희)나, “저 녀석만 아니면…”이라며 딸의 고생을 안타까워하는 성실의 친정어머니(김해숙)의 대사에서 장애인을 감당해야 할 짐 정도로 여기는 한국 사회의 편견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동성애와 장애를 받아들이는 가족 모습 묘사
그러나 이로부터 겨우 3개월 뒤 같은 단체에서 발표한 ‘드라마 속 장애인 인권인식 조사 사례 발표’의 결과는 눈여겨볼 만하다. ‘장애인의 긍정적인 인식 변화에 도움을 준 드라마’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부모님 전상서〉를 50% 내외 지지율로 첫손에 꼽은 것이다. 창수와 창수의 친할머니가 이혼 후 늦게나마 준이를 아들로, 손자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노력하기 시작하면서 준이의 자폐 증세가 조금씩 개선되는 모습이 작품 속에서 묘사된 이후의 결과다. 〈부모님 전상서〉는 장애를 가정 불화의 요인으로 만드는 제1원인은 장애인을 제 일원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체제에 있음을 암시하며, 체제가 먼저 장애인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주장은 준이의 행보에서 더 직접 드러나는데, 엄마 성실이 취직을 하면서 자연스레 준이를 돌볼 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준이는 집과 장애인 교육시설을 오가게 된다. 좀처럼 세상에 마음을 열지 않는 것 같았던 준이는 교육시설에서 요리사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을 키우게 된다. 김수현은 이러한 변화를 통해 장애는 짐이 아니며, 적절한 노력과 배려가 투입되면 장애인 또한 비장애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노력과 배려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가족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전 사회가 지고 있음을 분명히 해둔다.
김수현은 보수적인 당대의 현실을 전복시키거나 새로운 질서를 쓰자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그 폐쇄성과 경직성을 극복하고 폭을 넓혀 더 다양한 가치들을 긍정할 것을 당부한다. 가부장제를 옹호하고 수호하는 것과, 가부장제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인식하되 그 안에서 더 정의로운 체제로 발전하기를 당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후자가, 김수현이 지난 40여 년간 한국의 가족을 바라보고 근심하며 노력해온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