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같다’는 말은 대개 ‘과장이 심하다’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볶음밥 한 숟가락을 먹었더니 천상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테니스 선수가 강서브를 날리자 공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운석이 되어서 공룡을 멸종시키는 등.

그러나 방금 든 예시처럼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왜곡된 표현만이 만화적 과장은 아니다. 생략과 단순화 또한 만화적 과장이다. 생략과 단순화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장면, 예를 들면 암에 걸려 죽어가는 젊은이가 임종을 앞두고 연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조차 간결한 그림과 관조적인 연출로 전달할 수 있다. 표현은 단순하지만 등장인물의 감정은 함축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또한 만화적 연출이다.

〈삼국지〉를 만화로 만든다면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번쩍이는 갑옷과 칼날로 무장하고 일기토(말 탄 무사의 일대일 승부를 뜻하는 일본어식 표현)를 벌이는 장수들. 수천, 수만의 군사들이 벌이는 치열한 백병전. 군주가 사는 화려한 궁궐.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을 배제하고, 단순한 그림과 연출로 〈삼국지〉의 세계를 그려내는 만화가 있다. 바로 김달 작가의 〈여자 제갈량〉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작품은 〈삼국지〉에 나오는 이름난 책사인 제갈량·순욱·곽가·사마의·가후 등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너무 만화 같은 상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평범한 고등학생이 타임슬립해 〈삼국지〉 시대의 군웅이 되는 만화나 유비·관우·조조 같은 모든 주요 인물이 여자로 나오는 만화들에 비하면 그다지 유별난 설정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삼국지〉의 시대는 남자보다 여자에게 제약이 많았던 때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 책사들도 그와 같은 제약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들이 순욱에게 ‘왕을 만들 만한 재주를 가졌다’고 말하자 곽가는 차갑게 내뱉는다. “그 얼마나 우스운 말입니까! 사내로 태어났다면 그 자신이 황제가 되었을 것을!” 여자 책사들이 세상에 맞서는 방식은 다양하다. 순욱은 남장을 하고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감추며 살아간다. 스스로 단명할 운명임을 알고 있는 곽가는 적들을 가차 없이 짓밟으며 이 세계를 멸망시킬 것처럼 행동한다. 주인공 제갈량은 초야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한다.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이면서 이 작품의 1부 연재가 끝났다.


〈여자 제갈량〉 김달 글·그림, 레진코믹스 펴냄
‘고통은 모두 평범하며 어느 것도 특별하지 않다’

보통 〈삼국지〉는 난세를 호령한 영웅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그런데 〈여자 제갈량〉은 영웅보다는 난세를 살아간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무리 이름 높은 군주일지라도 전쟁터에서는 내일 살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시대였다. 그 밑에서 싸우는 병졸, 전쟁에 휘말린 민초들의 삶은 더 말할 필요 없다.

작가는 황제에서 노비까지 한 사람씩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추미인은 책사 가후로부터 적장 조조를 유혹하라고 강요당한다. 명문가의 자제인 원소는 그의 어머니가 노비인지라 친족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그를 차마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어머니가 남몰래 건네준 떡을 먹지 않고 강에 던져버린다.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같은 비중으로 어느 하나 더 무겁거나 더 가볍게 그려지지 않는다.

김달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단순한 그림체와 담담한 연출을 통해 전달한다. 마치 이들이 겪는 고통은 모두 평범하며 어느 것도 특별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여자 제갈량〉은 영웅이 아닌 인간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기자명 박해성 (만화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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