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형법은 살인을 모살(謀殺·murder)과 고살(故殺·manslaughter)로 나눈다. 내 너를 죽이고야 말리라는 마음을 먹고 살해를 하면, 즉 범행(犯行·actus reus) 당시 범의(犯意·mens rea)가 있으면 모살이고, 그런 마음이 없이 사람을 죽게 한 경우가 고살이다. 한국 형법의 죄명과 비교한다면 각각 살인과 과실치사에 해당한다고 대략 설명할 수 있다.

법정에서는 당연히 죽이고자 하여 죽이는 모살죄를 더 중하게 벌한다. 잔혹하게 죽여도 죄는 더 무거워진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는 결과는 다 같지만 그렇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보자. 자다가 얼결에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 것이, 죽을 때까지 고통받으며 살려달라고 빌다가 그다음에는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다 죽는 것과 같을 리 없지 않나.

2014년 12월8일 영국 북동부 지역의 하틀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그 방식이 매우 잔혹했다. 소녀 둘이 성인 여성을 죽였다. 오로지 재미를 위한 살인이었다. 시체의 상처는 100군데가 넘었다. 전기 주전자, 텔레비전, 프린터, 커피 테이블, 거기에 더해 삽이며 못이 박혀 있는 나무 막대기 등이 폭행 도구로 사용되었다. 엉망으로 부서진 집의 온 사방에 피가 튀어 있었다. 피해자는 숨이 끊어지기까지 정신적·육체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학대는 8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초저녁부터 피해자를 때리기 시작한 소녀들은 밤 11시쯤 잠시 ‘휴식을 취하러’ 친구 집에 갔다가 새벽 2시쯤 돌아왔다. 소녀들은 계속 폭행을 하다가 새벽 4시쯤 999(한국으로 치면 119)에 전화를 걸었는데, 경찰차로 집에 데려다 달라고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Cleveland Police/PA열세 살과 열네 살 소녀에 의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 영국 하틀풀 시의 범죄 현장을 경찰들이 둘러보고 있다.

가해자들은 사건 당시 열세 살과 열네 살이었다. 이들의 이름은 18세가 될 때까지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구별하기 쉽게 이들을 그저 ‘소녀 13’ ‘소녀 14’라고 하자. 소녀 14의 가정환경은 ‘영국식 문제 가정의 표본’이라 부를 수 있다. 자녀들의 아버지는 모두 달랐고 엄마가 애인에게 맞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사건 당일 엄마를 만나러 갔다가 “당장 꺼지고 나가서 죽어” 하는 폭언을 들었다. 소녀 13은 이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매우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가정이었다. 둘은 따로 있으면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같이 있으면 문제를 일으켰다. 둘을 떼어놓으려는 시도는 계속 실패로 돌아갔다.

둘 다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소녀 13은 자기는 폭행을 하지도 소녀 14의 행위를 부추기지도 않았다고 우겼다. 피해자에게는 영원과도 같이 길었을 그 밤에 소녀 13은 휴대전화에만 정신을 팔고 있었다고 변호인은 주장했다. 소녀 13은 실제로 내내 휴대전화를 쓰고 있기는 했다. 소녀 13은 사건 당일 밤 9시쯤 얼굴에 멍이 든 채 웅크리고 있는 피해자를 배경으로 본인들의 셀피(셀카)를 찍어 소셜 미디어인 스냅챗에 올렸다. 소녀 13은 집에 가는 길에도 경찰차의 뒷좌석에서 본인들의 셀피를 찍어 포스팅했다.
 

ⓒSWNS피해자 앤절라 라이트슨(왼쪽)은 알코올의존증으로 인한 저체중이었다. 위 사진들은 범죄 현장 모습.

피해자의 인적 사항은 낱낱이 밝혀졌다. 앤절라 라이트슨. 서른아홉 살이었다. 162.5㎝의 키에 약 38㎏. 알코올의존증으로 인한 저체중이었고 나이보다 훌쩍 늙어 보였다. 역시 문제 있는 가정 출신이었고 복지시설과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자랐다. 어려서부터 알코올과 약물과 폭력에 노출되었고 자해를 했다. 수십 번 투옥되었다. 차라리 감옥에 있는 것이 더 편안하겠지만, 감옥은 싫다는 사람을 잡아두는 곳이지 있고 싶다는 사람을 살게 해주는 곳은 아니다. 여자는 술에 취하면 싸움을 했고 같이 있기 힘든 사람이 되었으나 술에 취해 있지 않은 때가 별로 없었다.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어 했지만 함께 지내는 방법을 몰랐다. 미성년자들의 주류나 담배를 대신 사다 주는 심부름을 했는데 그녀를 때려죽인 소녀들도 여자에게 술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현관문 잠금장치는 늘 풀려 있었고 아이들은 아무 때나 그녀의 집에 들어와서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했다. 앤절라가 같이 낀다는 것이 묵계였다.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가까이 흐른 지난 4월에야 선고가 났다. 소녀들에게는 모살죄가 인정되었다. 둘 다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최소 15년을 복역하면 가석방될 수 있으니 이들은 서른 살 남짓이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 앤절라가 죽을 때보다도 적은 나이다. 출옥하면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새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구조화된 가난 속에서 범죄에 노출되는 아이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를 꿈꾸겠으나 그들의 인생이 앤절라의 그것과 많이 다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미 앤절라의 인생과 소녀들의 인생은 같은 멜로디의 약간만 다른 변주처럼 들린다. 소녀들도 이미 과다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 참이었다.

앤절라와 소녀들이 살고 있던 도시 하틀풀은 알코올 관련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사건이 벌어진 거리의 상당수 집들은 사람이 살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들 중 4분의 1 이상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로 분류된다. 남자와 여자 모두 술을 마시며 시간을 때운다. 이들의 아이들이 그 부모나 주변의 어른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확률은, 즉 성실하게 학교를 다녀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따서 멀쩡한 직업을 갖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갈 확률은 극히 낮다. 이것이 가장 잘사는 선진국 중 하나의, 가장 못사는 도시 중 한 곳의, 가장 열악한 계층이 처한 현실이다. 탈출은 매우 어렵다. 지극히 안정되었다고 일컬어지는 복지사회의 한 단면인 것이다.

앤절라 라이트슨의 죽음은 살인자가 어린 소녀들이라는 점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게다가 저 잔혹성과 그 와중에 셀피를 찍는 행태 역시 기성세대를 놀라게 했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흔한 살인 사건 중 하나처럼 보였을 것이다. 혼자 사는 추레한 알코올중독 여성. 희생자가 되기로 예정된 자의 죽음. 그러나 한편 살인자들은 이미 피해자와 사뭇 닮아 보인다. 그 모습은 그들이 속한 계층에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의 한 전형이기도 하다. 벗어날 수 없는 매우 좋지 않은 루프(loop)가 거의 닫혀가고 있는 것이다.

기자명 런던·김세정 (영국 GRM Law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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