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1일 오후 4시30분,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301호. ‘최경환 인턴 불법 청탁 의혹’ 등과 관련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박철규 전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과 권태형 전 중진공 운영지원실장이 출석했다. 이날은 각자가 증인석에 앉았다. 박철규 전 이사장이 먼저 피고인석에서 증인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이 신문을 시작했다.

2013년 중진공 공채 당시 최경환 의원실 인턴 출신 황 아무개씨 채용과 관련해, 합격 발표 전날인 8월1일 박 전 이사장이 최 의원을 만난 사실을 물었다. 박 전 이사장이 직접 국회로 찾아가 최 의원에게 황씨의 불합격 소식을 전한 날이다. 최경환 의원실 인턴 출신인 황씨는 중진공 서류전형에서 2299등을 했지만 실무자들의 서류 조작으로 1200등으로 올랐다가 176등까지 되었다. 그마저도 1차 합격자 커트라인인 170등에 미치지 못해 실무자들이 1차 합격자 인원을 조정하며 최종 면접까지 겨우 올라갔다. 면접 점수도 낮아서 외부 심사위원의 반발로 불합격 결정이 난 상태였다(〈시사IN〉 제427호 ‘2299등이 정규직 되는 법’ 기사 참조).

ⓒ연합뉴스최경환 의원이 직접 인턴 취업을 청탁했다는 법정 진술이 나왔지만 재판부는 증인 신청을 기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황씨는 합격했다. 박 전 이사장이 최 의원을 만나 청탁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그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이를 부인했다. 만난 건 사실이지만, 황씨의 불합격 여부는 말도 못 꺼내고 국회를 나온 뒤 자신이 알아서 합격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한 검찰의 법정 신문이었다.

수사와 공판을 맡은 강선주 검사가 물었다. “최경환 의원을 만나서 황씨의 불합격 사실을 말했나요?” 박철규 전 이사장은 앞선 대답 때와 달리 잠시 망설였다. 2~3초 정도 있다가 그는 “예, 인사드리고 말씀드렸다”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박 전 이사장이 검찰 조사 때 한 진술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진술이 바뀌자 강 검사는 똑같은 질문을 한 번 더 던졌다. “불합격 사실을 말씀드렸나요?” 박 전 이사장은 이번에는 좀 더 길게 대답했다. “(최 의원에게) 사실을 말씀드렸다. ‘황이 2차 면접까지 올라왔는데, 외부 인원(면접 위원)이 강하게 반발을 합니다. 저희도 여러 가지 검토를 했지만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 불합격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다.”

강 검사는 박 전 이사장에게 “검찰 진술에서는 ‘(국회 가서) 최경환 의원에게 그런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고 나왔다’고 했죠? 그때는 왜 그렇게 말했나요?”라며 기존 검찰 진술을 상기시켰다. 박 전 이사장은 “그 당시 심신이 많이 다쳤고, 다리도 목발을 짚고, 여러 가지로 지친 상태였다.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뭐가 바뀐다고 생각 (안) 한 것도 사실이다. 청탁한 사람은 처벌받는 것도 아니고”라고 대답했다.

이어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증언했다. “(그 말을 들은 최경환 의원은)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내가) 결혼도 시킨 아인데 그냥 (합격)해, 성실하고 괜찮은 아이니깐 믿고 써봐’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불합격시켜야 할) 사정을 말씀드렸다. 외부 위원의 문제(제기)가 있어서 나중에 의원님께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내년에 다시 응시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래도 (최 의원은) ‘그냥 합격시키라’고 했고, (국회를 나와) 권태형 실장을 불러서 ‘최경환 의원이 결혼시킨 아이라는데 어쩔 수 없지 않냐. 그냥 해’라고 했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어진 권태형 피고인의 황희석 변호사 신문에서도 박철규 전 이사장은 똑같은 대답을 했다. “재판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고, 양심상 정리하고 가야 할 문제라고 여겼다. 특히 증인석에 앉아 있기 때문에, 인생을 정리한다는 과정에서 말씀드렸다.”

새로운 증거 나와 재수사 불가피할 듯

박 전 이사장의 법정 폭로는 검찰의 부실 수사 논란 등 여러 파장을 낳았다.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재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법정 진술이 나온 다음 날인 9월22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기가 막힌다. 검찰이 이런 식으로 수사해도 되는 것인가. 꼭 다시 수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도 “검찰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황제 조사를 한 끝에 면죄부를 줬다가 재판 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져 (검찰이) 망신을 당했다”라고 주장했다.

의혹이 불거진 당시에도 최경환 의원의 청탁이 있었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나왔다. 권태형 전 실장은 박 전 이사장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중진공 전 아무개 처장과 최경환 의원실 정 아무개 비서관이 말을 맞췄다는 내부 증언도 나온 바 있다. 당시 〈시사IN〉이 입수한 음성 녹취에 따르면, 중진공 전 처장은 “(검찰에) 들어가기 전에 (최경환) 부총리실하고 사전에 다 조율하고 들어갔다. 최경환 의원실 정 비서관이 ‘(검찰) 가서 절대로 채널을 (서울이 아닌) 지역구 그쪽으로만 해주십시오. 이쪽도 가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라고 했다”라면서 말 맞추기 정황을 전했다(〈시사IN〉 제432호 ‘실세 한 사람을 위한 중진공의 마음’ 기사 참조). 중진공 전 처장은 “내가 최경환 의원실 비서관한테 듣기로는, 검찰 쪽에다가 어느 정도 선을 대놓고 있는 거 같아. 크게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거 같은데”라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검찰은 최경환 의원을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최 의원을 서면조사만 했다. 최 의원은 서면조사에서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서면조사만 한 뒤 최 의원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박 전 이사장의 법정 폭로는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증언이기도 하다. 박철규 전 이사장의 법정 증언 후, 권태형 전 실장의 변호인은 최경환 의원을 재판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최경환 의원이 직접 청탁했는지가 이 재판의 쟁점도 아니고, 기소가 된 게 아니기 때문에 증인으로 부르기 적절하지 않다”라며 증인 신청을 기각했다. 권 전 실장 쪽 황희석 변호사는 “전체적으로 청탁을 주도한 것이 최경환 의원이라면, 검찰은 당연히 그를 공범으로 기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정에서 검찰은 “잘 봐달라는 취지만으로는 공범으로 기소가…(어렵다). 이 경우는 처음 나온 진술이라 검찰도…”라며 말을 흐렸다.

재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검찰도 법정 폭로 다음 날 관련 사건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검찰이 불기소했더라도, 새 증거가 나오면 수사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다음 재판은 10월26일에 열린다. 임채운 현 중진공 이사장 등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임 이사장은 검찰 조사를 앞둔 권태형 전 실장에게 “최(경환) 부총리가 살아야, 너도 (산다). 최경환이는 실세야, 살아 있어”와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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