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2일 오후 8시32분, 국내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5.8의 지진이 일어난다. 지진의 진앙으로부터 27㎞ 떨어진 곳에 월성 원자력발전소 4기와 신월성 원자력발전소 2기가 가동 중이었다.

지진 발생으로부터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원전 운영을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경주 지역 지진에 의한 원전 영향 없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한수원은 “구조물 계통 및 기기의 건전성을 확인한 결과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였다”라고 밝혔다.

같은 날 밤 11시56분. 월성 원전 4기가 순차적으로 가동을 중단한다. 지진 발생 시점에서 3시간24분 뒤였다. 한수원은 “시설 안전에는 이상 없이 정상운전 상태임을 확인”(9월13일 보도자료)하였으나, “선제적인 조치”(9월14일 설명자료)로 월성 원전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시사IN 조남진

최대 규모 지진이 발생하고, 한 시간도 안 되어 ‘원전 이상 무’ 선언이 나오고, 그로부터 두 시간여가 지나 원전을 껐다. 204분의 우여곡절 동안 실제로 벌어진 일은 무엇이었을까.

흔히 국내 원전은 규모 6.5 지진에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같은 규모 지진이라도 원전과의 거리나 지반의 특성 등에 따라 원전이 받는 충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원전은 지진의 규모가 아니라 충격이 원전에 도달했을 때 강도를 기준으로 내진 설계를 한다. 이를 최대지반가속도(PGA)라 하고, 단위로는 ‘g’를 쓴다. 월성 원전을 비롯해 가동 중인 국내 원전은 0.2g(이 값을 규모 6.5 지진에 해당한다고 간주한다)에 이상 없이 견디는 능력을 목표로 설계되어 있다. 내진 설계 기준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다.

9월12일 지진 당시 월성 원전에서 측정된 최대지반가속도는 0.0981g(1호기)와 0.0832g(2호기)였다. 내진 설계 기준 0.2g의 절반 이하여서 당장 치명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적었다. 한 시간도 못 되어 한수원이 ‘원전 이상 무’ 보도자료를 내놓은 이유다.

하지만 지진 상황에서 원전 운영자는 내진 설계 기준만 따지는 것은 아니다. 원전의 이상 여부와 관계없이, 그 값이 넘으면 일단 원전을 꺼야 하는 기준도 있다. 이것이 운전기준지진(OBE)이다. 월성 원전의 OBE는 0.1g다. 즉, 지진의 충격이 0.1g를 넘어가면, 내진 설계 범위 안쪽이라 해도 일단 원전을 끄도록 되어 있다.

지진 당시 월성 1호기 측정값인 0.0981g는 OBE(0.1g)보다도 낮다. 끄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까? 이 단계에서는 확정할 수 없었다. OBE는 자유장, 그러니까 실외 측정값을 기준으로 한다. 내진 설계가 된 원전 내부에서 지진의 충격을 재면 자유장 측정값보다 낮게 나오기 쉽다. 실제로 월성 원전 부지에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측정한 값은 OBE를 초과하는 0.12g였다. 이 결과는 한수원 공식 데이터가 아니므로 당장 원전을 끌 근거로 쓸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응답스펙트럼 값 점검’이라고 불리는 추가 검증을 통해 0.1g를 넘겼는지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KINS 규제 지침 4.18은 이렇게 쓴다. “OBE(자유장 기록을 근거로 함) 초과를 결정하는 기준은 초과판정 기준 가속도 응답스펙트럼 값 점검이다.” 이후 응답스펙트럼 값을 분석한 결과 실제로 정지 기준선을 넘긴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수치는 위험 경고

그러므로 지진 발생 시점에서 원전 관리자가 정보를 취합해 내릴 수 있는 합리적 판단은 이런 것이었다. 0.0981g라는 1호기 측정값과 0.12g라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데이터로 미루어보아, 운전 정지 기준선을 넘겼을 가능성은 꽤 높다. ‘아마도 정지 기준선을 넘겼을 것으로 보고, 확인을 위해 계산이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수원은 “지진에 의한 원전 영향 없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한다. 이 말을 ‘현재 원전 가동 상태에 이상 징후 없음’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거짓말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진실도 아니다. 원전은 운전 정지가 요구되는 지진 충격이라는 ‘영향’을 이미 받은 상태였다. 한수원은 그 가능성을 고려할 정보가 충분히 있었으므로 “영향 없어”라고 단언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보통 시민은 원전에 아무런 일도 없다는 의미로 “영향 없어”라는 말을 받아들였다가, 불과 두 시간 후에 나온 원전 가동 중단 소식을 접하고 “멀쩡하다더니 왜 갑자기 원전을 끄나”라며 혼란에 빠졌다. 한수원이 자초한 일이었다.

이틀 후 한수원이 내놓은 자료도 혼란을 부채질했다. 언론의 비판 보도에 대한 설명자료에서 한수원은 이런 말을 한다. “월성 1~4호기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안전운전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안전 최우선 원칙’과 ‘철저한 예방 점검’ 차원에서 절차서에 따라 수동으로 정지한 선제적인 조치입니다.” 이 문장은 ‘꼭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자세로 적극적·예방적 조치를 취했다’는 인상을 준다.

사실은 미묘하게 다르다. 원전 가동 중단은 절차에 규정된 대로였으므로 한수원이 다른 판단을 내릴 여지가 없었다. 응답스펙트럼 값 점검 결과 중단 기준선을 넘긴 것이 확인되었고, 이후 한수원은 “절차서에 따라” 가동 중단 프로세스를 밟았다. 이 절차 자체의 성격이 ‘선제적’이라고 논평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규정된 절차에 따른 원전 중단을 두고 ‘선제적 조치’라고 부른 것은 아주 쉽게 오독을 유도했다.

국회에서는 한수원이 측정·계산값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은 응답스펙트럼 측정값이 원전 정지 기준값을 넘겼는데도 한수원이 이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며 “민감한 수치를 의도적으로 감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아주 본질적인 문제 제기는 아니었다. 한수원은 지진의 충격이 “정지 기준인 지진분석값 0.1g를 초과”하였다고 밝힌 바 있는데, 정지 기준을 넘겼다는 사실은 ‘응답스펙트럼 측정값이 기준을 넘겼다’는 사실을 포괄하는 정보다. 구체적 수치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민감한 정보를 은폐했다고 보기에는 무리였다.
 

ⓒYTN 화면 갈무리9월12일 지진이 일어나고 3시간24분 뒤에 한국수력원자력은 월성 원전 4기의 가동을 순차적으로 중단시켰다. 원전 가동 중단 소식을 전하는 방송 뉴스 장면.

그러나 이 장면에서 한수원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한수원이었다. 9월22일 국회 현안보고 자리에서 신용현 의원은 “(응답스펙트럼 측정값이 원전 정지 기준값을 초과하였으므로) 한수원이 밝힌 예방 점검 차원의 선제적 조치라는 입장이 거짓으로 밝혀졌다”라고 질타했다. 한수원이 원전 정지 결정을 선제적·예방적 조치인 양 홍보한 탓에, 마치 데이터를 은폐한 모양새로 몰리는 부메랑을 맞았다.

고삐 풀린 복잡성은 사고를 일으킬 토양

일련의 혼란은 지진 이후 내내 한수원을 괴롭혔다. “즉시 원전을 정지했어야 하는데 3시간 넘게 늑장 대응을 했다”라는 의혹도 언론에 등장했다. 한수원은 여기서도 억울한 대목이 있다. 지진 직후 원전을 정지할 근거는 분명하지 않았다. 만약 월성 1호기 내부 측정값이 0.1g를 넘겼다면 곧바로 원전을 끌 근거가 있다. 하지만 0.0981g였으므로 응답스펙트럼 계산을 거쳐야 한다. KINS 규제 지침을 보면 데이터 처리와 계산에 4시간까지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과값을 확인하고 원전을 끄는 데까지 3시간24분이 걸렸다. 비상 상황에서 신속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규정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한수원은 ‘이상 무 선언’에서 ‘원전 중단’으로 곧바로 넘어가는 정보의 널뛰기를 연출했다.

지진부터 원전 가동 중단까지 204분의 우여곡절을 되짚어보면, 한수원이 중대한 규정 위반이나 치명적인 정보 은폐를 했다는 비판은 과도해 보인다. 절차는 규정을 벗어나지 않았고, 정보는 판단에 필요한 만큼은 공개되었다. 오히려 주목할 대목은 자기 신뢰를 손상시킬 정도로 안전을 과하게 단언하는 한수원 특유의 태도였다. 과거에도 원전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한수원은 “안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라고 되풀이했다. 호언장담과 단호한 확신이 조건반사처럼 등장했다. 원전에 대한 여론의 불신과 불안감을 어떻게든 줄여보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하지만 원전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다. 원전 관리자가 아무리 자신감을 과시해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원전을 잘 모르는 보통 시민이 막연히 느끼는 불안의 근거를 날카롭게 제시한 연구자가 미국 예일 대학 사회학과 명예교수 찰스 페로다. 그는 최악의 원전 사고 중 하나인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조사와 재발 방지 프로젝트를 지휘했고,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하여 위험 연구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책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를 썼다.

책에서 페로 교수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긴밀하게 연계된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예상 못한 방식으로 두 가지 이상의 장애가 상호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다. 물론 시스템은 경보와 사고 방지 절차를 추가해 대응한다. 하지만 추가된 사고 방어 체계가 다시 시스템의 복잡성을 높이고, 이는 다시 사고 위험을 높인다. 복잡하고 긴밀히 연계된 시스템에서는 속성상 사고 발생이 정상적이며 불가피하다. 페로 교수가 꼽는 ‘복잡하고 긴밀히 연계된 시스템’의 최고봉이 원전이다.

 

ⓒ연합뉴스2013년 5월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본부에서 열린 지진 상황 대비 방사능방재 훈련에서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복잡한 시스템은 인간의 통제 능력 한계를 벗어나고, 고삐 풀린 복잡성은 그 자체로 사고를 일으킬 토양이 된다. 원전을 불안해하는 시민은, “핵심 문제는 복잡성 그 자체다”라는 페로 교수의 통찰을 의식적으로든 직관적으로든 이해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위험과 사고야말로 정상(normal)이 된다.

보통의 경우라면, 책임자의 자신감과 확신은 지켜보는 시민의 근심을 덜어준다. 하지만 복잡하고 긴밀한 시스템의 책임자가 확신에 차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제 책임자의 확신은 그가 복잡성과 불확실성이라는 시스템의 숙명을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신호가 된다. 책임자의 과신과 시민의 불신이 맞물려 상승한다. 이럴 때는 오히려 근본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가 더 신뢰를 줄 수 있지만, 복잡하고 긴밀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위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것을 대단히 두려워한다.

기상청도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지진 다음 날인 9월13일 고윤화 기상청장은 “규모 6.5 이상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라고 브리핑했다. 한반도에서 규모 6.5 이상 지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진은 현대 과학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자연재해다. 한반도 지진 잠재력의 최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리는 주제로, 근본적인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점이 원전과 닮았다. 확신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과신은 신뢰보다는 불신을 키웠다.

원전 관리자의 확신에 무작정 기대는 태도는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대안으로 제안된 해법 중의 하나는, ‘진흥 프로세스’와 ‘안전 규제 프로세스’를 분리해서 서로가 서로를 껄끄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면 운영 책임자의 확신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가스 산업의 한국가스공사와 한국가스안전공사, 전력 산업의 한국전력과 한국전기안전공사의 관계가 좋은 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이 모델을 따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장관급으로 독립해 2011년 10월 출범했다. 원래 구상대로라면 원자력 진흥 담당인 한수원과 안전 규제 담당인 원안위가 상호 견제하며 굴러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원안위 설치법에 깊숙이 관여한 한 야당 정책통의 설명은 이렇다. “이런 상호 견제 관계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안전 규제 블록의 힘을 키워 진흥 쪽과 체급을 맞춰줘야 한다. 감리 산업과 같은 자체 산업을 쥐여주고 자체 전문가 집단을 키워서, 안전 규제 블록이 자기 이해관계를 따라 굴러가도록 만들어야 제대로 긴장이 형성된다. 그런데 원안위가 박근혜 정부 들어 총리실 소속 차관급으로 격하되면서 일이 꼬였다.”

차관급으로 격하된 이후 원안위는, 한수원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대등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심지어 원안위는 국무총리실 산하인데, 국무총리는 당연직 원자력진흥위원장이다. 지진 이후 언론 대응이나 국회 업무보고의 풍경을 보면 안전 논의도 한수원이 주도하고 원안위는 한수원의 정보를 받아 전달하는 무력한 모습이 자주 연출되었다. ‘진흥’과 ‘안전 규제’의 균형 모델은 아직 갈 길이 먼 목표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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