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몹시 추웠다. 영하 6℃. 공기가 그리 차가우니 강물은 말할 것도 없다. 제정신이 아닌 다음에야 한겨울 혹한에 강으로 뛰어들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날, 설리(톰 행크스)가 제정신으로 뛰어들었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었다. 무려 154명을 데리고 함께 겨울 강물에 뛰어든 남자. 영화 〈설리〉는 2009년 1월15일 오후 3시31분, 뉴욕 허드슨 강에서 일어난 이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다.

그가 강으로 뛰어들기 6분 전, 설리는 막 뉴욕 하늘로 솟아오른 참이었다. 승객 150명과 자신을 포함해 승무원 5명이 탄 US에어웨이 1549편 여객기를, 몇 시간 뒤 샬럿더글러스 국제공항 활주로에 안전하게 내려놓을 책임이 그에게 있었다. 설리는 기장이었다. 언제부터 기장이었는지 잘 기억도 못할 만큼 아주 오래 전부터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총 비행시간이 무려 2만 시간. 그가 ‘베테랑’이라 불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륙 2분 만에 새 떼와 부딪쳤을 때, 설리의 비행기는 고작 지상 859m 상공에 떠 있었다. 양쪽 엔진이 모두 멈춰 추진력을 잃어버린 기체 아래로 뉴욕 시내 빽빽한 빌딩 숲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공항으로 회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불시착할 공터도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가 점점 내려갔다. 9·11 테러의 악몽이 아직 가시지 않은 뉴욕 시민들 머리 위로 거대한 여객기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로 그 순간, 뉴욕과 뉴저지 사이를 가르는 허드슨 강이 눈에 들어왔다. 설리가 마이크를 켰다. “승객 여러분, 충돌에 대비하십시오.”

그날따라 정말 추웠다. 강 위에 미끄러지듯 내려앉은 비행기가 다행히 부표처럼 뜬 채로 잠시 버티는 동안, 서둘러 빠져나온 승객들이 차마 물속으로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추웠다. 가라앉기 시작한 비행기 양 날개에 촘촘히 선 채로 발만 동동 구를 때, 때마침 주변을 지나던 배들이 앞다투어 달려왔다. 155명 전원을 무사히 구조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24분. 사람들은 설리를 ‘영웅’으로 치켜세웠고, 그날 일을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 불렀다.

여기까지는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영화 〈설리〉는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건의 이면과 이후를 파고든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 ‘영웅’에게 닥친 뜻밖의 위기, 새로운 의혹에 휩싸인 그날의 진실을 차근차근 복기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노련한 손끝에서 ‘허드슨 강의 기적’은 세밀하게 분해되었다가 꼼꼼하게 재조립된다. 그리하여 텔레비전 뉴스 속 평면의 ‘사건’이 마침내 관객 마음속 입체의 ‘사연’으로 다시 저장되는 영화 〈설리〉.

사고의 이면과 이후를 파고드는 감독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들이 놓치지 않은 24분의 골든타임, 그들에겐 끝까지 오보가 되지 않은 “전원 구조”라는 속보, 그들은 매우 당연하게 이어가는 집요한 사후 조사와 치밀한 청문회까지 뭐 하나 부럽지 않은 순간이 없다. 가장 아프게 한 장면은 혹여 남아 있는 승객이 없는지 확인하려고 설리 기장이 통로 끝에서 끝까지 두 번 왕복하는 장면이다. 가라앉는 비행기 안을 구석구석 살피며 최후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자신이 몰던 비행기에서 맨 마지막으로 빠져나오는 사람이 설리 기장이다.

영웅은, 남들이 하지 못할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다. 설리는 슈퍼히어로가 아니었다. 프로페셔널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거창한 ‘희생정신’이 아니라 마땅한 ‘직업의식’ 덕분에 그는 영웅이 되었다. 기적을 만들었다. 우리는 갖지 못한 영웅, 우리에겐 허락되지 않은 기적이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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