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9월19일, 치과 의사인 머글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녀는 열두 살 생일을 18일 앞둔 1991년 9월1일 호그와트에 입학했다. 인종 불명, 덥수룩한 갈색 머리, 갈색 눈, 직접 교정을 해주고 싶어 하는 부모를 배려해 마법으로 고치지 않고 남겨둔 큰 앞니를 지녔다. 깐깐하고 융통성 없는 성격 탓에 학우들에게 잘난 척한다고 배척받던 시기도 있었으나, 시험 10주 전부터 공부를 하는 압도적인 학습량과 학년 수석이라는 결과로 그것이 ‘척’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녀의 이름은 허마이오니 진 그레인저, 우리에게는 헤르미온느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인물이다.

마법사 세계에 연이 없던 그녀는 남다른 노력을 필요로 했다. 대부분의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런던 어딘가에 있다는 다이애건 앨리의 입구는 머글인 부모에게 보이지 않았으므로, 해마다 교과서와 학용품을 사러 갈 때 동행하더라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입학식 날은 더했다. 단 한 대뿐인 호그와트 급행열차 탑승구인 9와 4분의 3 승강장은 담벼락이었고, 그녀가 돌진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들어가줄 부모가 그녀에겐 없었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그들은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학교생활을 도움받기는 어려웠다. 환경

ⓒ이우일 그림
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오로지 책에 열중했다. 교복을 미리 입고, 예언자 일보를 구독하며, 구입한 교과서를 전부 예습해 홀로 학교에 적응할 준비를 해나갔다.

노력을 인정받는 길은 요원했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손을 들고 대답하려 하자 스네이프 교수는 그녀에게 잘난 척을 한다고 비꼬았고, 론 위즐리에게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마법을 제대로 구사하는 법을 가르치며 열성을 보여준 대가로 돌아온 것은 ‘그 애는 악몽’이라는 뒷담화였다. 4대 기숙사 중 한 곳은 머글 태생을 차별했으며 순수 혈통들은 툭하면 ‘잡종’이라는 혐오 발언을 면전에 던졌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가 생긴 건 타고난 성품 덕이었다. 그녀는 첫 만남부터 두꺼비를 잃어버린 친구 네빌 롱바텀을 위해 이리저리 뛰었으며, 마법약 수업에서 늘 실수를 하는 네빌을 기꺼이 도왔다. 해리와 론이 벌점을 받게 되자 자신의 잘못을 밝혀 비난의 화살을 피하게 했으며, 종종 그들의 숙제도 대신 해주며 친구들을 배려하기 위해 애썼다. 그들과의 친분은 그녀를 볼드모트와 맞서야 하는 운명으로 접어들게 했다.

허마이오니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3학년 때는 최대 5시간까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모래시계를 사용해 대부분의 수업을 다 참석하며 지적 면모를 키워가더니, 4학년에는 집 요정들의 노예 노동에 저항하며 ‘집 요정 해방전선’을 만들었다. 잡종이라고 차별받은 경험이 작용한 것인지, 타고난 성품이 그녀의 세계관에 영향을 준 것인지는 모른다. 행동의 동기가 어디에 있었든 그녀는 마법사에게 봉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집 요정의 인권 존중과 처우 개선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활동을 고작 열네 살에 시작했고, 호그와트를 졸업한 후에도 이를 지속하기 위해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에 취직했다.

“내가 잡종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5학년이던 1995년, 볼드모트의 귀환을 마법부가 은폐하며 학생들에게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교과서 베껴 쓰기로 가르치던 그때, 그녀는 해리에게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며 덤블도어의 군대(D.A) 창설에 불을 지폈다. D.A는 볼드모트와 대적해 싸우는 학생 모임으로, 훗날 볼드모트와 죽음을 먹는 자들의 공격에 맞서 호그와트를 지켜냈다. 열다섯 살에 D.A의 핵심 멤버가 된 그녀는 죽음을 먹는 자들의 공격을 당해 오랫동안 병을 앓았지만 용기를 꺾지 않았고, 이듬해 교장 덤블도어의 죽음을 마주하고는 사랑하던 학교를 떠나 볼드모트 소멸에 앞장섰다. 목숨을 담보할 수 없기에 부모에게서 자신에 관한 기억을 지우고, 오랜 투쟁에 지쳐 흔들리는 연인 론을 떠나보내고(그는 금방 다시 돌아왔다),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붙잡혀 머글이라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며 ‘잡종’이라는 흉터를 새기게 되었을 때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내가 잡종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고, 볼드모트 소멸 후 마법부 장관이 된 킹슬리 샤클볼트가 순수 혈통 우대법을 없애도록 도왔다.

학교에서의 배움과 성장기의 경험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 앞장선 허마이오니는 초고속 승진을 해 현재 마법 법률 강제집행부 차관으로 일한다. 여전히 집 요정 해방전선 활동을 하며, 차관으로서 순수 혈통 근절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마법부 장관으로 임명될 예정이다. 입법·행정·사법부의 권한을 대부분 갖고 있는 막중한 자리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앞으로도 ‘잡종’이라는 흉터를 지우지 않고 살아갈 예정이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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