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몰락 1·2〉켄 폴릿 지음
남명성 옮김문학동네 펴냄
그런 책이 있다. 언젠가 보리라 하고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막상 읽기는 망설여지는 책. 〈거인들의 몰락〉이 그랬다. 분량 때문이다. 1권이 680쪽, 2권이 640쪽이다. 두께가 이 정도로 끝났으면 ‘한번 읽어보지 뭐’ 했을 텐데. 역사소설 작가 켄 폴릿이 쓴 대하소설 ‘20세기 3부작’ 중 1부작이라는 게 이 책의 함정이다. 3부작의 역사적 배경은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 유럽을 휩쓸기 시작한 1911년부터 베를린장벽이 무너져 독일이 통일되는 1989년까지 이어진다. 2부 〈세계의 겨울〉 1·2가 각각 664쪽, 584쪽. 3부 〈영원의 끝〉 1·2는 각각 736쪽, 824쪽이다. 3부작 다 합하면 4128쪽이니, 서가에 꽂아놓고 흐뭇해하면서도 ‘저거 언제 읽지’ 하고 있었다.

분량 때문에 주저하다가도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한 것은 이 책이 1차 세계대전 때부터 독일 통일 때까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피와 살을 가진 캐릭터들이 당대 역사를 어떻게 관통했는지 좇다 보면 근·현대사에 대해 좀 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랄까. 기자 출신인 저자가 글을 쓴 뒤, 세부 전공이 다른 역사학자 여덟 명의 감수를 거쳤다고 하니 더욱 신뢰가 갔다. 드디어 추석 연휴에 펼쳐 들었다.

잉글랜드, 웨일스, 독일, 러시아, 미국에 사는 다섯 가족의 삶이 얽히고설킨다. 영국 탄광에서의 소년 노동, 여성참정권 운동, 솜 강 전투 같은 1차 세계대전의 비참함 등 당대의 풍경이 역사적 사실과 어우러진다. 실존인물과 소설 속 허구인물이 절묘하게 만난다. 책을 읽다가 인물에 대해 더 궁금해져 중간중간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같은 인물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곤 했다. 등장하는 가족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교차하는 장면이 언뜻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읽는 재미’ 또한 분명하다. ‘장대한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권한다. 참고로 〈거인들의 몰락〉은 미국 ABC 방송사에서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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