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역설법’을 기억한다. 모순된 표현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기법이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9월12일 경주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5.1의 지진이 계기였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나 ‘찬란한 슬픔’은 내진 설계가 안 된 지진대피소, 지진 직후 홈페이지가 막힌 국민안전처에 비하면 애교였다. 국정교과서가 도입되면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역설법의 예시가 풍부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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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의 역설은 시적 표현을 극대화했지만, 현실 속의 역설은 불안을 극대화했다. 국민안전처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계정에는 “국민안전처가 아니고 국민불안처다” “(11시53분에 지진이 났는데) 12시17분에 재난 경보 문자가 왔다. 더 센 지진이 오면 죽고 나서 문자를 받으란 말이냐” 등의 댓글이 쇄도했다.

국민안전처가 재난 경보 문자는 느리게 보냈지만, 발 빠르게 대처한 일도 있다. 유언비어 대책이다. 지진 하루 뒤인 9월13일 국민안전처는 페이스북에 “SNS에 떠도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란다”라는 내용을 올렸다. 여당도 가세했다.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은 9월18일 당정 간담회에서 “(지진 관련) 유언비어를 끈질기게 공안적으로 추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당 정우택 의원은 SNS에 “이번 경주 내륙 지진이 혹시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것은 아닌지 정말 걱정스럽다”라는 글을 남겼다. 정 의원은 공안사범일까?

추석 때 KTX 이용객들은 책자 하나를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향 가는 길, 2016 추석〉이라는 책자를 제작해 KTX 등 열차 좌석에 비치했다. 책에는 ‘살맛 나는 대한민국 이유 있었네’라는 제목으로 “박근혜 정부가 앓던 이 뺀 것처럼 해결한 성과”에 대한 글이 실렸다. 그중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에 대해서는 “이번 합의문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확하게 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살맛 나는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디에?’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9월22일 노인의 날을 맞아 노인 227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연 오찬(사진)에서 “요즘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 절망과 좌절의 풍조가 번져가고 있어서 걱정이 된다. 세계가 부러워하고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참모습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어르신들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시길 당부드린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게는, 외환위기 때인 1999년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운 청년실업률 9.3%(8월)가 보이지 않나 보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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