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요동쳤다. 지진이었다. 긴급팀이 소집되었다. 관저는 곧바로 매뉴얼대로 가동되었다. 각 부처에서 파견된 국장급들은 관저 지하에 있는 위기관리센터로 이동했다. 국회에 있던 총리도 위기관리센터로 이동했다.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첨단 시설을 갖춘 위기관리센터도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순간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원래 보안상 위기관리센터에서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다. 대신 유선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휴대전화를 회선 코드에 꽂으면 휴대전화로 걸려온 전화를 각 담당자가 자기 자리에서 유선전화로 받을 수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휴대전화가 안 터져요”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선이 폭주 상태입니다.” 매뉴얼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일본 총리관저는 이렇게 우왕좌왕했다. 지진 발생 전부터 재난문자가 배포되는, 시스템의 나라가 무너졌다. 당시 컨트롤타워의 혼동상을 〈아사히 신문〉 기무라 히데아키 기자는 〈관저의 100시간〉에 담았다.

이 책을 보며 내용과 무관하게 저널리스트로서 일본이 부러웠다. 기무라 히데아키 기자의 취재를 거부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간 나오토 총리를 비롯해 당시 위기 대응 결정권자들은 자신의 메모까지 보여주며 취재에 응했다. “고통스러운 재해였지만 거기서 끄집어내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후손에게 전해질 것이다”라며 기자와 주요 취재원이 이심전심으로 통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이번에도 ‘먹통 컨트롤타워’를 경험했다. 국민안전처 장관은 국회에서 “매뉴얼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자랑했다. ‘국가지진화산센터 운영 매뉴얼’에 따르면 심야 시간에 지진이 발생하면 환경부 장관에게는 다음 날 아침에 전화 보고하라는 문구도 있었다. 핵발전소가 즐비한 울산·양산 단층이 활성 단층이라는 정부 용역 보고서는 은폐되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재난 대응 과정을 되돌아보는 취재에 응할까? 정부·여당의 세월호 특조위 고사작전만 봐도 하나 마나 한 질문이다.

지난 한 주 청와대 밑에 깔린 활성 단층도 요동쳤다. 언젠가는 청와대가 흔들릴 정도로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시사IN〉 레이더에도 잡혔다. 2014년 9월 아시안게임 취재에 나선 조남진 사진기자는 온종일 승마 경기장만 지켰다. 조 기자의 아시안게임 취재는 ‘최순실 취재’였다. 그녀의 딸 정 아무개양이 국가대표로 승마 단체전에 출전했다. 최씨가 잠깐 모습을 비친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다. 그 사진을 이번 호에야 공개한다. ‘최순실 게이트’는 대지진의 전조 현상이다. 아직 본진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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