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대부분을 경상북도 성주에서 보냈다. 출장 간 횟수를 세어보니 다섯 번이었다. 7월12일 성주군 성산포대가 사드 기지로 확정됐다는 보도가 난 이후 2주를 빼고는 매주 성주에 간 셈이다. 2주 중 한 주는 휴가였고, 나머지 한 주는 청와대에 상소문을 올리러 서울 온 유림 어르신들을 취재했다. 〈시사IN〉 교육생 후배는 8주 교육 기간이 끝나는 날 수줍게 말했다. “이제 참외를 보면 선배가 생각날 것 같아요.”

성주는 후보군 중 한 곳이라는 보도가 나오긴 했지만 유력하지 않았다. 당시 〈시사IN〉 편집국 반응은 딱 이랬다. “성주? 참외 농사를 짓는 성주?” 또 하나 아는 게 있다면 전통적인 새누리당 강세 지역이라는 것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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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끝날 싸움이라 예상했다. 첫날부터 단식에 돌입한 김항곤 성주 군수는 사드 자체는 찬성이라며 “이북 놈들이 칼로 찌르는데 방패 없이 이불로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항변했다. 군청 앞마당에 모여 촛불을 든 주민은 100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한 참외 농부는 “정부에서 하는 일에 이유가 있지 않겠나. 전자파 안전성이라도 입증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성주 취재 둘째 날, 데스크에 “촛불이 금세 꺼질 것 같다”라고 보고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예상은 빗나갔다. 군청 앞 촛불집회 참가자가 1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매일 밤 주민들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농민가’ 등 투쟁가를 하나씩 배워나갔다. 눈이 어두운 할머니들은 촛불 빛에 의지에 A4 용지에 적힌 가사를 따라 불렀다. 새 나라의 어린이라면 잠자리에 들 시간,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사람들 사이를 쏘다녔다. 취재 셋째 날, 데스크에 문자로 한 보고는 “대한민국 어디라도 사드 배치 반대 구호가 나옴”이었다.

참외 농부를 다시 본 건, 8월26일자 연합뉴스 보도사진에서였다. 그는 ‘사드 배치 찬성하는 새누리당 탈당’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8월22일 김항곤 군수는 ‘제3후보지’ 검토를 공식 요청했지만, 나흘 뒤 성주 주민 1151명은 새누리당 경북도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성주 투쟁의 앞날은 알 수 없다. 반대 운동이 한 달 이상 지속되자 정부가 들고 나온 ‘제3후보지’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촛불집회 참가 인원도 꽤 줄었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성주에는 오늘 밤에도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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