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 사건부터 조희팔 추적 보도,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등 굵직한 특종을 여러 차례 터뜨린 탐사 보도 전문기자가 현대사 인물을 만난다. ‘정희상의 인사이드’ 인터뷰는 격주로 게재한다. 독자와 함께 인터뷰이를 만나는 이벤트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81·사진)의 출생지는 중국이다. 1936년 중국 상하이시 장락로 682롱(弄) 7호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상지인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다. 그의 출생지 자체가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압축한다. 우당 이회영 선생이 그의 할아버지다. 우당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여섯 형제와 함께 당시 40만원(현재 가치 600억원 상당)에 달하는 전 재산을 처분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우당은 영화 〈암살〉에도 등장하는,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던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이 전 원장은 광복 이듬해 귀국해 경기중·고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65년 현직 군인 신분으로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 중앙정보학교 공채 정규과정 1기로 입교했다. 중정에 몸담으며 박정희 정권의 공작 정치 뒤안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민정당 창당 멤버로 전격 발탁되었다. 제13·14·15대 국회의원 및 집권 민정당 사무총장과 부총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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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이후 김대중 대통령과 손잡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성사시키면서 정치 역정에 대반전을 꾀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초대 국정원장으로 옛 친정에 복귀했다.

국정원장을 마지막으로 2001년 정계를 떠난 이 전 원장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와 하버드 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수학한 뒤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사업과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에 전념해왔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준비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이 전 원장과의 인터뷰를 ‘건국절 논란’과 ‘국정원 개혁’ 주제로 나눠 2회에 걸쳐 연재한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건국 68주년’이라고 언급해 건국절 논란이 불거졌다.

건국절 제정 주장은 우리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도 그 숨은 뜻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감옥에서 돌아가셨다고 써주는 대로 읽고 있는 수준 아닌가. 뉴라이트가 ‘건국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건국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 대통령은 정부 수립 후 “새로 탄생된 이 민국의 연원은 기미년(1919년)부터 기산한다”라고 천명했다. 1948년 발행된 우리나라 관보 1호에도 ‘대한민국 30년’으로 기재했다. 그런데 뉴라이트 쪽이 그런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자꾸 팔고 있다. 박 대통령이 생각 없이 그걸 받아들여 사달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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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지난 2월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국절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이종찬 전 국정원장(왼쪽에서 두 번째).
새누리당은 건국절을 법제화하겠다고 하는데?

1948년에 건국을 했다고 하면 그 전에 나라가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당장 독도는 누구 것이 되나. 위안부 문제도 나라가 없었으니까 일본 마음대로 처리할 수도 있다는 것인가. 건국절을 법제화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정상적 역사가 다 깨진다. 정부가 뉴라이트 쪽의 건국절을 수용하면 우리는 민족사의 정통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지난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하며 국정교과서에 8월15일 ‘건국’으로 기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총리가 헌법 정신을 잘 모르고 한 말이다. 그 말은 우리의 정통성을 낮추자는 것이다.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함’으로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기미년(1919년)에 세웠고, 이걸 광복 후 정부 수립으로 재건했다는 뜻이다. 제헌헌법을 만든 분들의 생각도 분명했다. 나라는 있었다. 다만 대한제국 왕정이 끊어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초대 내각 이인 법무부 장관의 국회 발언록에도 이렇게 나온다. 제헌 의원들이 “정부 수립 전 우리의 국적은 어딥니까”라고 물으니 이 법무부 장관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국적은 당연히 대한민국이죠. 일제 치하에 정부가 없었다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었습니까? 나라는 있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자격으로 활동하지 않았나?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기원을 상하이 임정으로 본 견해는 정부 수립 전부터 일관되었다. 그는 임시정부 수립 후 초대 대한민국 집정관 총재직을 맡았다. 한성 임시정부 초기에는 대통령이라는 말을 못 지어서 집정관 총재라고 칭했다. 영어로는 집정관 총재를 ‘The presi-dent of Republic of Korea’로 표기했으니 임정 대통령이다. 이승만은 미국으로 건너가 ‘1919년에 선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Elected President)’이라는 명함으로 활동했다. 그는 미국 조야(朝野)에 “미국은 1882년에 체결된 조·미 통상조약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미국이 “을사조약 때문에 외교권이 없지 않으냐”라고 묵살하자 “무슨 소리냐 그건 일본이 강탈해간 거다.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맞섰다. 또 영국 국왕에게까지 “황제 폐하! 이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올시다”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내 독립을 호소했다. 1943년 12월1일 연합국 측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총리, 중화민국의 장제스 군사위원회 위원장이 발표한 카이로 선언에서 독립을 약속한 나라는 인도도 아일랜드도 아닌, 대한민국밖에 없었다. 그래서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 기념일에 이 대통령이 “동양의 오랜 국가인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나라가 쭉 있었는데 일제가 강탈해간 것을 1948년에 정부 수립으로 회복했다는 것이 이 대통령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뉴라이트는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면서 건국절을 주장하는데?

내가 최근 박진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을 만나 모든 사정을 설명했다. 더 이상 건국절 문제로 이승만 대통령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굉장히 실리적인 사람이었다. 이 대통령이 정부 수립 연차를 기미년에서 기산해 ‘대한민국 30년’으로 한 뜻은 통일된 나라를 만들 때를 내다본 거 아니겠나. 기미년에 어디 남북한이 따로 있었는가. 

건국절 제정론자들은 영토·주권·국민 등 국가의 3요소를 갖추지 못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국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뉴라이트 쪽 인사를 만났더니 그런 주장을 하더라. 내가 “집에 도둑이 들어와서 집을 강탈해갔는데, 그럼 원래 그 집과 물건이 도둑의 소유냐 그 집주인의 소유냐”라고 예를 들어 반박했다. 그에 대해 답변을 못하더라.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정부가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뉴라이트가 건국일이라고 보는 1948년 8·15 행사 때도 플래카드에 엄연히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이라고 나온다. 대한민국 정부 회복을 축하하는 자리이지 건국 축하식이 결코 아니었다는 의미다.

건국절 법제화를 반대하는 쪽 논리의 허점은 없는가?

건국절 반대 논리 역시 대개 임시정부를 왜 무시하느냐는 식으로 불만스럽다는 주장을 펴는 선에서 끝난다. 임시정부가 무시당하면 왜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는지 그 이유까지 근거를 들고 조목조목 반박해야 한다. 몇몇 뜻있는 인사와 함께 지난해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를 결성했는데 이 위원회를 통해서라도 그 근거 논리를 모으고 제시할 예정이다. 보고서 등 근거 자료가 정말 셀 수도 없이 많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개헌 때 현행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 법통 계승’ 문구를 넣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안다.

앞서 말했지만 제헌헌법 전문에는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이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잇는다는 대목이 들어가 있다. 이것이 유지되다가 5·16 쿠데타 이후 ‘3·1 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 의거와 5·16 혁명의 이념에 입각’으로 헌법 전문이 바뀌었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탄생했느냐는 부분에 대해 아주 모호하게 바꾼 것이다. 박정희 정권 내내 이렇게 유지되다가 5공화국 헌법 전문에는 4·19와 5·16 부분을 뺀 ‘3·1 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만 남았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학도병 탈출 1호 독립군이었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이 직접 나를 불렀다. 김 전 총장이 ‘이번 기회에 임정의 법통을 잇는다는 내용을 헌법 전문에 꼭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당시 이강훈 광복회장 등 독립운동 원로들의 조언을 받아 내가 개헌 소위원회 여당(민정당) 간사인 현경대 의원을 찾아가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현행 헌법 전문대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이라고 정확하게 들어갔다.

역대 군사정권에서 제헌헌법 전문의 임시정부 대목을 삭제한 배경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제헌헌법의 정신은 제2공화국 장면 내각까지는 살아 있었다. 5·16 쿠데타 이후 바뀐 배경에는 당시만 해도 암암리에 상하이 임시정부 세력을 배척하려는 친일 세력의 영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이후 노골적으로 임시정부 법통을 무시하는 건국절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건국절을 막는 일이라면 전국 어디든 가서 강연할 생각이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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