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만여 명이 이용하는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 박연심씨(56)는 청소노동자로 이곳에서 8년을 일했다. 공항 곳곳에 박씨의 손이 닿지 않은 데가 없다. 9월5일 오후 8시30분, 박씨는 국내선 청사 1층 여자화장실 맨 끝 청소물품실에 들어갔다. 화장지와 청소도구 사이에 앉았다. 유일한 대기실은 현장으로부터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곳이 실질적인 휴게 공간이었다.

박씨가 화장실 칸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변기를 닦는 동안 이용객들이 줄을 섰다. 세면대와 바닥을 닦고 남자화장실도 똑같이 청소한다. 박씨의 얼굴이 땀으로 덮였다. 다음은 청사 내 쓰레기통 8개와 바닥의 쓰레기 분리 작업을 한다. 사람들이 앉아 있던 벤치마다 음료수 컵, 과자 봉지, 휴지, 생수통, 비닐봉투가 널려 있다. 11시간 동안 집게로 쓰레기를 줍고 집에 가면 통증 때문에 주먹을 쥘 수 없다. 100ℓ 쓰레기봉투가 한 시간 만에 꽉 찼다. 박씨는 새 봉투를 카트에 달고 화장실로 다시 들어갔다. 이렇게 화장실과 로비 공간을 하루 11시간 동안 쳇바퀴 돌듯이 계속해서 청소한다. 하루 최대 3만 보를 걷는다.

공항 청사 동편에서는 10년차 베테랑 김원순씨(60)가 같은 작업을 했다. 동편 화장실은 배관에 문제가 있어서, 화장실 변기가 안 막히면 그날은 복 받은 날이다. 김씨는 “우리도 청소하다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밥이 잘 안 넘어갈 때가 많다. 그래도 직업인이라 생각하고 더러운 부분까지 손을 집어넣어 가면서 깨끗이 닦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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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9월5일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조합 소속 청소노동자.
이들은 모두 용역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이다. 다른 비정규직들이 그렇듯 노동조건은 열악했다. 김원순씨는 “쉬는 시간에 커피 마신다고, 호떡 한 입 먹었다고, 둘이 모여서 이야기했다고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경위서 세 번 쓰면 퇴사해야 한다. 들킬까 봐 커피포트를 숨겨놓고 망을 보면서 겨우 한 잔씩 마셨다”라고 말했다.

“인간 취급을 못 받아 한이 됐다”

휴가도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딸의 결혼식에도 당일 하루만 휴가를 줘서 자비를 들여 대체인력을 투입하고서야 이틀을 더 쉬었다. 지난 3월15일 갑상선암에 걸려 수술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형진씨(59)는 2015년 10월, 일을 하다 왼쪽 다리를 다쳐 입원했다. 용역업체는 병원에 있는 유씨에게 복귀하지 않으면 퇴사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복귀했던 유씨는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병원에 다닌다. 이들의 사용주인 용역업체 지앤지(GnG) 측은 “상식적인 수준의 근태 지도가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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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9월5일 김포공항 내 한국공항공사 인근에서 ‘김포공항 비정규직 투쟁 승리 문화제’가 열렸다.
지난 3월3일 김포공항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전체 직원 158명 중 120여 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조합원들은 입을 모아 “그만큼 쌓인 게 많았다. 인간 취급을 못 받아 한이 됐다”라고 말했다. 손경희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 김포공항 지회장은 “지금까지 김포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산재 사건이 0건이다. 다치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앤지 측은 “이전 용역업체가 있을 때 벌어진 일로 알고 있다. 2016년 1월1일 우리가 들어온 뒤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지앤지는 이전 용역업체로부터 관리자를 포함한 모든 인력의 고용을 승계했다.

관리자들이 상습적으로 성추행과 폭언을 일삼았다는 고발도 제기됐다. 김포공항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8월12일 한국공항공사 정문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본부장으로 재직했던 ㄱ씨의 반복적인 성추행을 고발했다. ㄱ씨는 현재 김포공항 내 타 용역업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노조는 “현재 용역업체에도 노동자들에게 막말과 폭언을 한 관리자 2명이 남아 있다”라며 조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앤지 측은 “노동자들이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서 징계를 할 수 없다.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이 노조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사법처리 결과를 두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성추행 논란과 함께 한국공항공사 출신들의 낙하산 의혹도 불거졌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ㄱ씨는 한국공항공사 퇴직자 출신이다. 한국공항공사는 협력업체와 계약할 때 현장 대리인으로 공항 경력 10년 이상인 자를 선임하도록 했다. 또한 현장 대리인 선임 시 공사와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해 사실상 공사 퇴직자를 포함시키라는 조건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공항공사는 “의혹을 근절하기 위해 향후 공사 퇴직자 현장 대리인을 배제하겠다”라고 말했다.

하루 11시간 3만 보 걸으며 공항 청사 청소

노조 측은 궁극적으로 원청인 한국공항공사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금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한국공항공사의 책임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공사와 노조가 진실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공항공사는 8월26일 보도자료를 발표해 “김포공항 미화원의 월 급여는 205만원으로 공공기관 평균임금을 상회하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포공항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급여명세서를 공개해 초과·연장근무 3일에 1회, 종일 대직근무 2회, 야간근무 2회를 해야 겨우 월 204만7029원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포공항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공공기관 비정규직에 시중 노임단가를 적용하도록 한 정부 지침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한국공항공사는 8월16일 위탁용역 원가를 공개해 “현재 미화노동자 기본급은 시간당 시중임금(8200원)과 최저임금(6030원) 사이인 6852원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원가에 용역업체에 돌아가는 비용을 제하기 위해 낙찰률을 곱하면, 실제 노동자들이 받는 기본급은 시간당 6029원이다. 최저임금과 차이가 없다.

노조는 8월부터 정부 지침 준수, 낙하산 인사 근절, 노동환경 개선을 다양한 방식으로 요구했다. 손경희 지회장과 정진희 사무국장은 8월12일 한국공항공사와 대화를 요구하며 삭발식을 했다. 응답이 없자 8월26일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전 조합원 한시 파업을 진행했다. 파업이 진행 중인 4시간 동안 1만명 이상이 김포공항을 이용했다.

파업에도 불구하고 한국공항공사와 용역업체는 서로 책임을 미뤘다. 한국공항공사는 “노동조합의 주장은 해당 협력업체와 논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앤지 측은 “우리는 발주처(한국공항공사)와 계약한 돈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라 어차피 공사 측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파업 당일, 공사는 4시간짜리 단기 아르바이트를 직접 고용해 불법 대체인력 논란을 피했다.

손경희 지회장은 8월30일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성추행이 폭로된 뒤 국회의원들도 현장을 찾았다.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거기까지였다. 9월7일 현재까지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 중에 바뀐 것은 없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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