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 갈 때쯤이면 지치곤 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힘을 주셔서 연말까지 힘내서 일한다.”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의 말이 그의 위상을 드러낸다. 2007년부터 8차례 진행한 조사에서 손석희 사장은 줄곧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1위’로 꼽혔다. 2007년 첫 조사에서 22%를 기록한 손석희 사장의 신뢰도는 JTBC로 옮겨 앵커로 복귀한 이후인 2013년 31.9%로 껑충 뛰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36.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9월2일 서울 상암동 JTBC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온 손 사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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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손석희 사장은 “뉴미디어 교과서는 수도 없이 바뀐다. 저널리즘의 본령에 대한 교과서는 바뀐 바 없다”라고 말했다.


8차례 연속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으로 꼽혔다.

오래 잘 버텼기 때문이 아닐까? 대부분 내 나이 정도 되면 현업에서 떠난다. 버티기 위해서는 노력도 필요하다. ‘노력을 좀 많이 하는구나’라고 사람들이 생각해주는 것 같다.

JTBC 〈뉴스룸〉도 3년째 KBS 〈뉴스9〉와 함께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혔다.

개인보다 JTBC 뉴스가 인정받은 게 기쁘다.

앵커의 신뢰도가 이어진 게 아닐까?

앵커가 순전히 앵커 역할로만 뉴스에 기여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구성원들의 힘과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뉴스룸〉만의 차별성이 있다면?

인터넷이나 SNS에서 낮에 본 뉴스보다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없는가를 늘 생각했다. 탐사 취재뿐 아니라 인터뷰도 더 들어갈 수 없나 고민한다. 이건 앵커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런 걸 흔들리지 않고 추구해온 게 나름 평가받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앵커 브리핑’이 SNS에서 종종 화제가 된다.

뉴스가 인문학일 수 있다는 걸 구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JTBC 뉴스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인본주의’다. 그걸 하나로 결집해서 내놓는 게 앵커 브리핑이다.

다른 언론사 뉴스에 인본주의가 부족한가?

다른 언론사 보도에 대해 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JTBC 뉴스는 인본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가장 극적으로 구현된 게 본의 아니게 세월호 참사 보도였다.

최근 화제가 된 앵커 브리핑은 ‘루쉰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편이었다(중국 작가 위화의 산문집 구절을 인용해 “훗날 ‘JTBC 뉴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믿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좋겠다”라고 한 7월25일자 앵커 브리핑).

논란이 좀 있었다.

JTBC 페이스북에서 3500회 이상 공유됐다.

‘이게 우리만의 고민일까’라는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 욕심이었다.

브리핑에서 저널리즘을 고민할 기회를 두 번 가졌다고 했다. 그중 한 번은 사드 오역이었다.

할 말이 없는 실수였다(〈뉴스룸〉 7월13일자 ‘탐사 플러스’는 괌 사드 기지와 관련해 미군 기관지 〈성조(Stars and Stripes)〉를 인용해 “발전기의 굉음이 작은 마을 전체를 덮어버릴 정도”라며 “이 지역에서 살 수 있는 건 두 마리 돼지뿐”이라고 보도했지만 오역으로 드러나 정정했다).

다른 하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성매매 의혹 보도였다. “무엇이 저널리즘의 본령에 맞느냐를 놓고 고민할 수 있는 자유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진영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입니다”라고 말했는데?

당시 JTBC가 보도하느냐 마느냐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그런 현상이 왜 생겼는지 개인적으로는 이해한다.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또 다른 컨텍스트(맥락)를 생각할 필요 없이,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JTBC는 저널리즘의 본령에 의해서만 보도 가치를 판단하면 된다. 인용 보도하긴 했지만 한 번 냈다. 일단 그 이슈가 크게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보도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만 보지 않더라. 저널리즘 본령에 의해 뉴스 가치를 명쾌하게 판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그 무엇이 있더라. 그걸 얘기하고 싶었다.

그 무엇이 ‘진영 논리’라는 건가?

진영 논리일 수도, 대중의 관심일 수도 있다. 시민사회, 정치권력, 자본권력일 수도 있다. 저널리즘이 따로 떨어져 나와 존재할 순 없지만,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판단을 매우 상식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실제로 보도 여부에 대한 압박을 느꼈나?

저널리스트들은 늘 느낀다. 느낄 거 아닌가? 누가 게이트키퍼냐 하는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다. 게이트키퍼는 부장이나 사장일 수도 있지만 그 사회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분열이 심하다. 우리 사회만큼 복잡다단한 게이트키퍼도 드물다. 그런 데서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나?

언론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다. 뉴스가, 저널리즘이 어떤 구실을 해야 하나?

뉴미디어 교과서는 수도 없이 바뀐다. 저널리즘의 본령에 대한 교과서는 바뀐 바 없다. 수정·증보는 했을지 몰라도 판 자체가 바뀐 적은 없다. 그걸 간과하면, 디지털이고 뉴미디어고 뿌리가 없어진다. 나는 1984년에 입사했다. TV가 흑백에서 컬러 방송을 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삶의 대부분을 아날로그 시대에 보냈다. 아마 그래서 더 이런 얘길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디지털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포털에 가장 먼저 메인 뉴스 생방송을 볼 수 있게 했고, 디지털 뉴스룸 팀도 있다. 〈뉴스룸〉의 콘텐츠도 다 디지털에 적합한 코너들이다. 그러나 저널리즘 본령에 대한 천착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

예전에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라도 더 전달하려 경쟁했다면, 지금은 사안을 어떤 관점으로 전달할지가 중요해졌다는 논쟁도 있다.

미첼 스티븐스 뉴욕 대학 교수가 쓴 〈비욘드 뉴스:지혜의 저널리즘〉이라는 책이 그걸 설파했다. 어쩌면 내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JTBC 기자들에게 〈비욘드 뉴스〉를 소개하려고 요약본도 만들어두었다. 나도 〈뉴스9〉와 〈뉴스룸〉을 거쳐오면서 뉴스 철학이 좀 바뀌었다.

JTBC로 옮길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나?

그랬다고 봐야 한다. 이미 〈시선집중〉(MBC 라디오)에서도 상당 부분 관점을 중시하는 뉴스를 구현했으니까 여기 와서 특별히 새롭게 한 건 아니다.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뿐 아니라 ‘어젠다 키핑’(의제 유지)도 강조했다.

과거에 미디어 영향력이 막강했을 때는 어젠다 세팅 한두 번으로도 사회 변화가 일어났다. 요즘엔 뉴스 생명력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게 JTBC가 미디어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세월호 참사, 국정원 사건, 4대강 보도도 그런 맥락이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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