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대학에서 공간 연출을 전공한 동기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졸업 후 3년 동안 휴일도 없이 일하느라 지친 터였다. 이희정씨(27·오른쪽)는 연극판에서, 김도경씨(27·왼쪽)는 영화판에서 각각 굴러다니고 있었다. 문득 돌아본 카페 밖 8월의 초록이 눈부셨고, 풍경은 새삼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는 왜 햇볕도 못 쬐고 일할까.” “계절 가는 것도 모르고 일만 했네… 서울이 이렇게 예뻤나.”

대화는 ‘작고 예쁜 걸 만들고 싶다’라는 데까지 이어졌다. 브랜드 ‘스포이드(www.spuiiit.com)’의 시작이었다. 포토샵에서 스포이드 모양의 아이콘을 선택하면 사진이나 그림의 색상이 그대로 추출되는 것처럼, 일상의 패턴을 추출해 인테리어 소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때마침 서울시 사회적 경제 아이디어 대회 ‘위키 서울’ 공모전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아이디어에 실행금 500만원이 지원되면서 둘의 동업도 자연스럽게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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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소품 이름에 ‘북촌로11가길’ ‘서순라길’ ‘아리랑로19다길’

너무 빠르게 변하는 한국의 ‘지금’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익숙해서 놓치기 쉽고 가볍게 여겨지기 쉬운 고유한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 디자인 연구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외국 풍경만 좋아하는 게 아쉽기도 했다. ‘북유럽풍’ 일색인 인테리어 소품 시장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다. “굳이 먼 나라에서 온 거 말고, 우리 주변에도 예쁜 게 많은데 그걸 잘 활용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작업은 크게 거리의 무늬를 발견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후 추리는 과정을 거쳐 직물 위에 프린트(제작)하는 세 단계로 이뤄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쿠션·코스터·손수건·에코백 같은 소품에는 ‘북촌로11가길’ ‘서순라길’ ‘아리랑로19다길’ 등의 이름을 붙였다. 거리의 풍경을 집안에 들이는 셈이다. 주소를 상품 이름으로 달아둔 건 장소를 기록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지만, 구매자가 공간의 분위기를 상상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마음이 더 내킨다면 골목을 직접 방문해 무늬를 찾아보는 재미도 덤으로 느끼기를 바랐다. 지난여름에는 서울을 벗어나 강릉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어떤 고객은 외국인 친구를 위한 물건을 사기도 하고, 임직원 선물로 컵받침을 대량 구매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각종 지원금에 기대고 있지만 두 사람은 당장 매출을 늘리기보다는 상품을 다양화하는 것이 목표다. 패턴이 쌓이고 상품이 다양화되면 판매도 점차 순조로워지리라 기대한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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