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라디오를 켰다. 내 첫 ‘최애’였던 토니 오빠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간만의 기회였다. 회사 창립 20주년을 맞아 하와이로 떠난 안 이사님(강타)을 대신해 마이크를 잡은 오빠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하고 달콤했다. 게스트로는 몇 년 전 덕력 내공을 뽐낸 덕에 과거 흰 풍선 좀 흔들던 사람들에게 단숨에 호감을 산, 레이디 제인이 나와 있었다. 오빠랑 ‘짝’이라는 듀엣곡도 부르고 사적인 친분도 있어서 같이 라디오에도 나오고…. 그야말로 ‘성공한 덕후’인 그녀를 보며 다시 소녀 팬이 된 양 깊은 부러움과 약간의 질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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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그림
H.O.T.는 1996년 9월7일,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통해 데뷔했다. 20여 년간 건재할 아이돌의 역사의 중요한 첫 페이지가 열린 시점이자, 흔한 TV키드가 ‘입덕’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다섯 명의 오빠들은 멋있으면서 귀엽기까지 했고 노래도 좋았다. 지금 보면 벌칙 같다는 소리가 나올 만한 멜빵바지에 털모자, 털장갑이 그때는 귀여움을 배가해주는 특급 아이템이었고, 많아야 열아홉밖에 되지 않은 솜털 뽀송했던 오빠들은 그 복장을 조금의 모자람도 없이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야말로 대단했다. 내놓는 노래마다 대박을 쳤다. 캔디, 늑대와 양, 행복, We are the future, 열 맞춰, 빛, 아이야, 투지, 환희, Outside Castle…. 각 멤버에게 이미지와 캐릭터를 부여하는 영리한 전략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획사들이 아이돌을 만들 때 고려하는 기본 요소다.

자작곡을 내고 앨범을 올 프로듀싱해서 음악적인 성장을 대중으로 하여금 확인시키는 것 역시, 이미 한참 전에 H.O.T.가 했던 일이다. 팬픽과 팬 아트, 팬 앨범 등 2차 창작물을 만들고, 오빠들 기를 살려주는 ‘서포트’뿐 아니라 자발적인 봉사활동과 기부를 한 것도 H.O.T. 팬덤이 시초였다. H.O.T. 데뷔일에는 기념일을 축하하는 흰 종이가 나붙었고, 단지 오빠들 생일(3월14일, 4월5일, 5월8일, 6월7일, 음력 10월10일)이라는 이유로 흰색 박하사탕을 받은 소녀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오빠들, 20주년 기념 공연 어떻게 한 번 안 될까?

영광의 순간은 유한하기에 빛나는 걸까. 당연하게도, 당대 최고의 아이돌로 군림했던 H.O.T.에게도 끝은 있었다. “항상 저희를 믿어주는 여러분들이 있고 우리 멤버들이 있는 한 저희 H.O.T.는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리더 오빠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냉정한 ‘계약’ 관계로 맺어진 어른들의 세계에 무지했던 소녀 팬들은 아마 H.O.T. 덕분에 ‘해체’라는 말을 확실하게 배웠을 것이다. 세 멤버(우혁·토니·재원)의 해체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난 9월1일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H.O.T.는 10~50대 세대별 남녀 총 2000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빅뱅에 이어 최고의 남성 아이돌 2위로 꼽혔다. 그들의 데뷔곡 ‘캔디’(1996)는 빅뱅의 ‘거짓말’(2006)에 이어 남자 아이돌 최고의 노래 2위에 선정됐다. 순위권에서 H.O.T.보다 오래된 그룹은 없었고, 캔디보다 오래된 노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았던 오빠들은 추억 속의 인물이 되었으나, 뜨거웠던 마음만은 꺼지지 않았다. 아무 걱정 없이 흰 풍선을 흔들던 지난 세기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올해 꼭 20주년을 맞은 H.O.T.가 공연을 한다면 그게 소극장이든, 잠실 주경기장이든 발 벗고 뛰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추억은 힘이 없다고? 아니, 가슴속에 고이 간직한 소중한 추억은 이토록 힘이 세다. 그래서 말인데 오빠들, 20주년 기념 공연 한 번만 해주면 안 될까요?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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