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재미있고 아름다운, ‘버스 기다리는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누군가는 버스 기다리는 이야기가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라이 료지의 〈버스를 타고〉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갈 거예요.” 소년은 사막의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늘은 드넓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지만 버스는 오지 않습니다. 지루해진 소년은 라디오를 켭니다. 처음 듣는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룸룸파룸 룸파룸. 하지만 버스는 오지 않습니다.

트럭이 부르릉 지나갑니다. 룸룸파룸 룸파룸 버스는 안 옵니다. 말을 탄 사람이 따각따각 지나갑니다. 룸룸파룸 룸파룸 버스는 안 옵니다…. 도대체 버스는 언제 오는 걸까요?
〈버스를 타고〉는 정말 신기한 그림책입니다. 아라이 료지의 글과 그림을 함께 보는 순간 독자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집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자기도 모르게 ‘룸룸파룸 룸파룸 버스는 안 와요’를 소리 내어 따라 읽게 됩니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누구든 자신도 모르게 아라이 료지의 천진난만한 마법에 퐁당 빠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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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아라이 료지 지음, 김난주 옮김, 보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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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먼 길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누군가는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갑니다. 누군가는 소를 끌고 갑니다. 그리고 날아다니는 새조차 걸어서 갑니다. 너무나 다양하고 재미있고 아름답습니다. 구경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러다 문득 그것이 진짜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버스를 타고〉를 볼 때마다 제 마음은 설렙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버스는 안 오는데 오히려 신이 납니다. 룸룸파룸 룸파룸 버스는 안 오지만 누군가 지나갑니다. 버스는 안 탔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나고 재미있습니다. 룸룸파룸 룸파룸 버스는 안 오는데 마음은 점점 더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정말 멋진 일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문득 먼 길을 가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또는 살아가기 위해, 정해진 방법이나 필수조건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을 타든 버스를 타든, 걸어서 가든 날아서 가든, 내 마음대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굳이 말을 타지 않아도 되고, 굳이 버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아라이 료지 덕분에 저는 버스 정류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냥 버스 기다리는 이야기를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보여주었고, 길은 저 스스로 찾게 해주었습니다. 아라이 료지는 예술가이자 현자입니다.

좋아하는 그림책은 많아도 이유는 제각각입니다. 예컨대 유타 바우어의 〈고함쟁이 엄마〉를 볼 때마다 저는 웁니다. 아기 펭귄의 상처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마크와 로완 서머셋의 〈똑똑해지는 약〉을 볼 때마다 저는 깔깔댑니다. 양과 칠면조의 만담에 홀딱 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라이 료지의 〈버스를 타고〉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소년이 찾은 자유를 함께 느끼기 때문입니다.

기자명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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