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한 편의 보고서에서 시작되었다. 변호사 3명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브라질 연방 하원의장 에두아르두 쿠냐의 서랍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는 집권 노동자당과 연립한 우파 정당 브라질민주행동당(PMDB) 소속으로 스위스 은행에 비밀 계좌를 갖고 있다는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연방 하원 윤리위원회가 자신을 조사하겠다고 하자, 윤리위에 속해 있는 노동자당(PT) 소속 의원들의 조사를 막지 않으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협박했다. 브라질 정계에서 정직하기로 소문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거절했다. 그때가 2015년 말이었다.

‘탄핵 기관차’의 전원에 불이 들어왔다. 탄핵 기관차를 출발시키는 데 들어갈 연료는 차고 넘쳤다. 무엇보다 경제가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천연자원, 농산물과 축산물 수출 호황 시기가 끝났다. 원자재 가격의 절정기였던 2011년 이래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다가 2014~2016년에 성장률이 무려 9.7%가량 급락했다.정부의 도덕적 권위도 땅에 떨어졌다. 브라질 공기업 페트로브라스가 정치인들에게 뇌물과 리베이트를 제공한 대형 부패 사건이 발생했는데, 집권 노동자당 정치인들이 연루되었다. 페트로브라스 게이트에 무려 70명이 넘는 여야 주요 정치인, 기업가, 로비스트가 연루되었고, 세계 사법사상 가장 많은 정치인들의 수감으로 끝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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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이 9월6일 관저를 떠나면서 지지자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거리에서는 연일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부패 사건의 수사 속도에 맞추어 시위 군중의 규모가 증가했다. 가장 절정이던 2015년 3월 한 달 동안 무려 300만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국민들은 정부는 물론 정치인 전체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우파 시민단체들은 대중 시위를 정부 공격 무대로 적극 활용했다. ‘대통령 탄핵’ 구호뿐 아니라 ‘군부 즉각 개입’을 주장하는 피켓도 등장했다.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노동자당의 전통적 지지층도 무너졌다. 2005년 의원 매수 스캔들에 이은 대형 부패 스캔들, 긴축정책을 선호하는 재무장관 임명과 복지재정 확대 공약 불이행 등에 실망한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지지를 철회했다. 대통령 지지율은 10%대로 추락했고, 탄핵 찬성률은 60%대로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언론이 공표하는 탄핵 찬성률이란 것이 실질적인 축출이 아니라 반대 의사 표시에 가깝다고 지적했지만, 브라질 언론은 이를 무시했다.

하원의장 에두아르두 쿠냐는 이 모든 조건을 활용했다. 서랍 속의 보고서는 브라질 하원과 상원의원 손으로 넘어갔다. ‘콩가루 의회’라 불리는 브라질 연방 의회에는 무려 30여 개 정당이 난립한다. 정당 10여 개가 연합하지 않고서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룰라(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예수 그리스도가 브라질 대통령이라면 가롯 유다와도 연합해야 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상황이 바로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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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한 에두아르두 쿠냐 브라질 연방 하원의장.
호세프 행정부도 쿠냐 하원의장이 속한 브라질민주행동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집권 노동자당은 원내 제2당이었고, 브라질민주행동당이 상하 양원에서 원내 제1당이었다. 즉 쿠냐의 탄핵 추진은 연정 붕괴로 이어질 공산이 크고, 연정 붕괴는 곧 탄핵 가결로 귀결될 확률이 높았다.호세프 대통령은 부패한 하원의장의 협박이 자신에 대한 탄핵으로 이어질 것을 예측했을까? 그녀는 콩가루 정당 사이를 관직과 돈으로 결집시키는 합종연횡이 판치는 브라질 정치와는 매우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노련한 정치가보다는 유능한 관료에 가까웠다. 2010년과 2014년 두 번에 걸친 대선 출전이 선출직 경력의 전부였다. 호세프 대통령은 상하 양원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정당 간의 합종연횡을 “정치적·사법적 연극”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일축해버렸다.

“브라질 우파는 좌파를 선거로 교체하지 않았다”

부패한 하원의장이 깔아놓은 레일 위로 탄핵 기관차는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먼저 탄핵 기관차에 연료를 듬뿍 실어준 것은 페트로브라스 게이트 수사팀이었다. 1985년 민주화 이래 막강한 독립성을 누려온 사법 권력은 지난 3월4일 노동자당의 창설자이자 호세프 대통령의 멘토인 전임 룰라 대통령을 강제 구인했다. 새벽부터 무려 200여 명의 연방 경찰을 동원해 룰라를 압송한 것은 일종의 미디어쇼로 간주되었다.

3월29일 그간 호세프 대통령의 그늘에 숨어 있던 인물이 전면에 등장했다. 쿠냐 하원의장, 상원의장 헤난 칼례이루스와 함께 브라질민주행동당에 속한 부통령 미셰우 테메르였다. 대통령직 승계 1순위 인사이자 노회한 헌법학자인 그는 연정 탈퇴를 선언했다. 대통령은 그를 ‘탄핵의 연출자’ ‘배신자’라고 비난했다.우파 정치가 3인방은 행정부, 연방 상원과 하원에서 탄핵 정지 작업을 모두 완료했다. 집권 노동자당은 사면초가 상태가 되었다. 4월 연방 하원이 탄핵을 가결하고, 5월에는 상원이 탄핵 절차의 지속을 승인했다. 리우 올림픽이 끝나고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를 앞둔 8월31일, 상원이 최종 표결로 호세프 대통령을 탄핵했다. 뇌물수수에서 살인까지 각종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약 60%의 하원의원과 약 50%의 상원의원이 그 어떤 부패 정치인 리스트에도 오른 바 없는 대통령을 탄핵했다. 호세프는 ‘의회 쿠데타’에 맞서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브라질 우파는 좌파를 선거로 교체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선거가 아니라 초단기 권력투쟁으로 13년간 브라질 정치를 좌우해온 정당과 대통령을 쫓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약 9개월이었다.

마침내 탄핵 기관차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이 기관차에 오른 이들, 철길 주변에서 박수 치고 환호하던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그 기관차가 싣고 있던 보고서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두 가지 내용이다. 첫째, 호세프 대통령은 의회 동의 없이 국영은행에서 대출금을 빌려 연방 정부 재정으로 사용했다. 둘째, 호세프 대통령은 국영은행에서 빌린 돈을 제때 상환하지 않았다. 이것이 과연 체제 전복 행위와 같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에나 적용해야 하는 탄핵 사유에 해당할까?

기자명 박정훈 (중남미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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