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필사’라는 말만큼 그에게 적확한 직함이 있을까. 윤태영씨(노무현사료연구센터장)는 참여정부 때 대변인·부속실장·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정리해왔다. 대통령은 수시로 그를 불러 구술했다. ‘그때 내 생각이 이랬구나 알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두자’고 노 전 대통령은 말했다. 모든 자리에 배석해 말을 적었다. 처음에는 손으로 쓰다가 손가락에 ‘펜 혹’이 생길 정도가 되자, 노트북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업무 노트 100여 권, 수첩 500여 권, 1400여 개 한글 파일이 쌓였다. 윤 센터장은 이 자료를 정리 중이다. 수기를 디지털 파일로 옮기는 작업이 70~80%가량 진척되었다.

최근 그가 〈대통령의 말하기〉(위즈덤하우스)를 펴냈다. 곁에서 지켜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철학을 담았다. 화술에 대한 책이기도 하고, 정치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일화가 풍부하고, 말은 구체적이다. 책을 읽다 보면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7년이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음성이 겹쳐진다. 8월31일 노무현재단에서 저자 윤태영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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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책을 쓴 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과 글’과는 떨어트려서 생각할 수 없는 분이다. 나보고 당신의 말에 대해 정리해보라고 수시로 말했다. ‘노무현의 말’ ‘노무현 어록집’ 형태로 출간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출판사에서 자기 계발서 형태로 쓸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자기 계발서 형식이 꺼려지기도 했는데, 사람들에게 더 효율적으로 대통령의 말과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형식일 수 있겠다 싶었다. 노 대통령을 오해하는 분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싶어서 이 형식을 선택했다.

책을 읽어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과 글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구나 싶었다.

2005년 12월 아세안+3 다자정상회의 때 대통령의 넥타이에 철제 클립이 낀 적이 있다. 참고자료를 클립에 끼워 안주머니에 넣었는데, 정상회담 자리에 앉기 전까지 무슨 말을 할까 궁리하고 살펴보고서 안주머니에 넣다가 철제 클립이 빠져서 넥타이에 낀 거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상회담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다. 이렇게 끝까지 궁리를 하니까 애드리브도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연구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게 말과 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도자와 말(글)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다.

노 전 대통령의 ‘말과 지도자’관은 무엇인가?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통치한다’가 그의 지론이었다. 대통령은 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통치에 이용하지 않았다. 일반인들은 그래도 여전히 대통령의 권력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권력기관을 놓고 난 대통령이 가질 힘의 근거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인사권과 ‘여론의 힘’ 정도인데, 임기 말이 되면 인사권에도 시비가 걸린다. 결국 정치적 상대방을 설득하고 토론하는 게 유일한 해결 방법이라고 본 것이다. 대통령이 보기에, 여러 사람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합의해가는 게 민주주의의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오류를 줄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장관이나 참모들에게 지시할 때도 합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본 이가 노무현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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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재단 제공윤태영씨(오른쪽 두 번째)는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지 정치를 싫어하고 금기에 끊임없이 도전했다”라고 말했다.
말과 글에 관심이 무척 컸는데도 역설적으로 그 어떤 대통령보다 ‘설화’를 많이 겪었다.

대통령은 금기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3당 합당 때 ‘이의 있습니다’ 하면서 안 따라갔던 것처럼, 지역구도 정치 등 금기의 영역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대통령은 권위가 있어야 하고 이러이러해야 해’ 하는 통념도 뛰어넘고 싶어 했다. 권위와 무게를 내려놓고 가까운 곳에 있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다. ‘친구 같은 대통령’은 사실 후보 때 공약이기도 했다. 경호상 문제로 일정 부분 포기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대통령다움’에 대한 통념을 깨보자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나는’이라는 표현을 안 쓰고 ‘저는’이라고 쓴다든가, 서민 말투와 유머를 쓴다든가 일부러 그런 시도를 많이 했는데, 재임 기간 내내 시달렸다. 미국 대통령이 소탈한 모습을 보이면 굉장히 칭찬하고 부러워하면서 한국 대통령이 그러면 문제가 많은 것처럼 대하더라. 대통령답지 않은 품격의 언어라고 했다. 그것 때문에 당한 상처와 피해가 워낙 커서 임기 말에는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재미있는 말이었는데, 신문 지면의 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반전화법을 썼던 내용들이 부각돼(책에서는 ‘단장취의(斷章取義)’라고 썼다) 시비가 생기고 하니까 생방송을 좋아했다.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국회 연설, 신년 연설, 광복절 경축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생방송으로 토론 제안이 들어오면, 대통령은 100% 오케이였다.

‘(노 전) 대통령은 메시지를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때 이라크 파병에 동의를 구하는 게 핵심 메시지였다. 그런데 그즈음 KBS 서동구 사장 임명 논란이 있었다. 국회 연설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청와대 춘추관에 가서 그 문제를 한참 설명했다. 그랬더니 국회 연설보다 KBS 문제가 주로 보도되었다. 그런 경우가 많았다. 왜 그랬냐면, 시간이 당신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그래서 잘못된 정보는 그때그때 바로잡는 게 낫다고 보았다. 대통령이 사안에 대해 직접 해명을 하면 논란의 당사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지지율이 확실히 떨어지더라. 대통령도 자신이 나서면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사실이 아닌 것은 곧바로 정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대통령이 어젠다를 제기해 사람들이 그 의제에 관심을 가지게 될 수만 있다면 유불리를 따지거나 셈하지 않았다. 또 지지율은 대통령의 어젠다보다는 한 번의 이미지로 상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통령은 그런 이미지 정치를 싫어했다.

요즘 ‘일문일답’을 회피하는 정치인이 많은데.

노무현 대통령은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보다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것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문일답이 더 효율적이라고 여겼다. 난처한 현안이 생겼을 때 참모로서 ‘일문일답하지 마시죠’라고 말린 적도 있는데 그러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의아하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참여정부 때 대변인·부속실장·연설기획비서관을 했다.

처음엔 왜 대변인을 시켰나 의아했다. 문희상 비서실장을 통해 들었는데 ‘윤태영이면 됐지, 뭐’라고 했단다.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신뢰였던 것 같다. 그러다 부속실장을 했는데, 대통령의 말을 기록하는 일과 대통령의 사적 일정까지 함께 관리해야 했다. 두 가지 일이 벅차다고 하니 분리해준다면서 연설기획비서관 직책을 따로 만들었다. 대통령의 말을 기록하는 일을 전담하게 했다. 대통령은 ‘말과 글 비서관’이라고 이름 짓자고 했다. 멋보다는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품이 드러난다. 내가 이상하다고 반대해서 연설기획비서관으로 정해졌다.

그중 무슨 일이 가장 힘들었나?

대변인이 제일 힘들었다. 그때 개방형 브리핑룸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청와대 취재 시스템이 많이 바뀌어 언론에서 날이 많이 서 있었다. 대통령의 서민적 표현에 대한 시비도 많았다. 대통령의 철학은 ‘언론과 유착하지 말자’였다. 대통령 말 중에 ‘안방이 단결하면 머슴이 괴롭다’는 표현이 있다. 힘을 가진 청와대·검찰·언론이 담합하면 결국 힘들어지는 것은 서민들이라는 뜻이다. 그 유착관계를 청산하고 긴장관계로 가자, 그래야 우리도 제대로 견제를 받고, 그렇게 조심하고 긴장해야 임기 말에 걸어 나올 수 있는 정부가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기존 언론사 처지에서는 불만스러울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이나 글을 잘 쓴다고 칭찬했던 사람이 있었나?

유시민 전 장관이 글을 잘 쓴다고 여러 번 말했다.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의 글을 좋아했다. 홍보수석으로 모시고 싶어 했다. (말을 잘하는) ‘김대중파’와 (글을 잘 쓰는) ‘리영희파’ 중 누가 세상에 더 기여할까 하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리영희 교수의 책을 본 이후 인권변호사가 되었기 때문에 글이 사람의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말을 잘하는 편에 속하는데, 글도 잘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2009년 초에 봉하에 사람들이 오면 ‘올해는 꼭 책을 쓰겠다. 책으로 일가를 이루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잘 안 쓰거나 싫어하는 표현이 있었나?

당신이 쓰지 않는 말은 정확히 집어낸다. 2004년 로스앤젤레스 연설 때는 ‘이것은 제가 쓴 표현이 아닙니다’라고 현장에서 말한 적도 있다. 정치 일반을 경멸하는 표현을 싫어했다. 누군가에게 출마를 권하는데 ‘제가 정치, 그런 걸 왜 합니까’ 하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임기 말에 ‘정치하지 말라’는 글을 남겼는데, 그 내용은 정치인들이 이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변호하는 뜻이었다. 대선 후보 시절에도 마지막 TV 광고에 ‘정치가 썩었다고 등을 돌리지 마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썩었다고 생각할수록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제대로 된 정치가 된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마 권유를 하지 않았나?

2006년에 먼저 청와대를 나왔다. 나오고 나서 주변에서 ‘대변인도 했으니 2008년 총선에 출마해야지’라며 권했다. 주변에서 물으면 ‘어, 출마할까요?’라고 몇 번 대답했는데, 그게 대통령 귀에 들어갔다. 나를 부르더니 ‘정치한다며?’ 묻더라. ‘네, 그런 생각도 조금 있습니다’ 했더니 딱 잘라서 ‘하지 말라’고 했다. 내 캐릭터도 감안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퇴임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펴내는 일을 함께하자고 했다. 2008년 12월에 양정철 전 비서관과 함께 봉하로 내려갔다. 겨울 내내 구술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그게 〈진보의 미래〉라는 책이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마지막 작업이다.

인터넷에 남아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 동영상이 지금도 화제가 되는데.

일명 ‘독도 연설’이라고 알려진 연설은 꽤 힘이 있게 잘 정리된 연설이다. 전시작전권 환수와 관련해 말했던 ‘민주평통 연설’도 재미있다. 대선 후보 수락 연설로 잘못 알려진, 〈노무현이 만난 링컨〉 출판기념회에서 한 연설도 기억에 남는다. 600년 기회주의 역사를 청산하자고 했던 그 연설이다. 사실 후보 수락 연설은 유시민 전 장관과 내가 함께 준비했는데, 일반인들은 잘 모르실 거다. 미국은 후보 수락 연설을 듣기 위해 전당대회를 하루 더 하는 것 같던데, 우리는 후보가 확정되면 그날 바로 연설을 한다. 투표의 뒤끝이라 분위기가 소란해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이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는 듯하다. 후보 수락 연설이 대선 공식 출사표이고, 정강·정책 등 자신의 정견이 다 들어가 모든 사람이 주목하는 연설인데, 우리도 전당대회를 하루 더 하더라도 후보 수락 연설을 듣는 날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

다른 대통령의 말이나 연설은 어떤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에 두세 차례 잘못된 정보가 들어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금 시스템이 어떤지 알아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대통령에게 틀린 정보가 입력되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끊임없이 검증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 때 특히나 연설은 여러 사람이 보고 검증을 했다. 그러면서 지나친 표현이나 잘못된 정보가 걸러지는데, 지금은 그런 시스템이 없나 싶다. 있다면 두 번 세 번 틀릴 수가 있을까?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연설문을 썼다던데.

후보 수락 연설을 써달라는 부탁이 왔다. 초안을 썼는데,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함, 결과의 정의라는 국정운영 원칙’을 추가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내가 보기에 문재인 전 대표에게는 어떤 ‘쿨함’이 있다. 그 쿨함이 공정함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문장의 임팩트가 떨어지는 것 같아 문장을 바꾸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로 바꾸었다. 이 문구가 TV 광고에 쓰여서 사람들 기억에 남은 듯하다.

2009년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때 그가 한명숙 총리의 조사 원고를 쓰게 되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대통령 곁을 지켰던 그는 ‘정치하지 말라’던 대통령의 말을 떠올렸다.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 조사에 많은 이가 눈물지었다. 경황없이 일을 치르고 난 후 윤태영 전 대변인은 꽤 오랜 기간 마음의 병을 앓았다. 한동안 사람들과 만남조차 끊고 침잠의 시기를 겪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몸과 마음이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들었다.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2년 후에 뇌출혈이 왔다. 내 관리를 잘 못했다. 주량이 약한 편인데, 술을 많이 마셨다.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이번 책(〈대통령의 말하기〉)이 그 전 책 〈기록〉(책담 펴냄)보다 톤이 더 밝다. 며칠 전 봉하에서 강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내가 웃으면서 강연하는 걸 처음 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 내가 극복이 되고 있나 보다, 그런 생각을 조금 한다. 어쩌면 나는 대통령의 말과 글 속에 여전히 살고 있다. 7년 동안 대통령의 말과 글 속에 파묻혀 있어서 한편으로는 부재를 못 느끼기도 했다. ‘벗어나야지’ 하고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메신저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내게 정치하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달라고 했다. 내 이야기보다 대통령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먼저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 다른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나?

200자 원고지 1000장짜리 ‘팩션’ 한 편을 써놓은 게 있긴 하다. 대통령과 그 시대를 살아온 386 세대의 이야기이다. 허구도 들어가긴 하는데 읽어보면 당시를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다. 아프고 나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글을 썼다. 그 원고 일부는 〈기록〉에 실었고, 나머지는 〈바보, 산을 옮기다〉(문학동네 펴냄)에 들어갔다. 다큐멘터리 형식은 아무래도 무거우니까, 소설 형태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서 팩션 형식으로 글을 쓰기는 했는데 출판 여부는 생각해보고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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